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낙농가와 유업체가 2027~2028년 적용될 원유(原乳) 구매물량 조정을 놓고 벌여온 협상이 석 달째 평행선을 달리는 중이다.
3년간 원유 가격이 동결된 상태에서 ‘남는 우유의 부담을 누가 짊어질 것인가’를 두고 대치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시장 수요의 변화를 제때 반영하지 못한 제도적 허점과 모호한 산정 규정이 수급 불균형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2년 치 적용 물량 협상…“어느 때보다 신중”
16일 유통·낙농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첫 회의를 연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는 당초 목표했던 8월 말을 넘어 현재까지 원유 구매물량 조정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한 달 안팎에 타결되던 협상이 수차례 회의에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협상이 유난히 길어지는 데는 향후 2년간 적용할 물량을 한꺼번에 확정짓는 협상인 만큼 양측 모두 사활을 걸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향후 2년 동안 적용될 원유 물량을 결정하는 자리인 만큼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 난항을 겪고 있다”며 “협상 내용은 비공개가 원칙이라 구체적 수치를 밝히긴 어렵지만,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논의를 이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갈등의 핵심으로는 ‘과잉 물량을 계산할 기준점’이 거론된다.
유업계는 현행 제도상 음용유용 기준물량인 194만1000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수요(약 179만7000톤)보다 과잉 공급되는 14만4000톤을 감안해 음용유 구매량을 최소 1만4000톤에서 최대 4만3000톤까지 줄이고, 이를 싼 값의 가공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낙농가는 유업체가 지난해 실제로 사간 실제 구매량 189만톤을 기준점으로 내세운다. 189만톤을 기준으로 삼으면 과잉물량이 9만3000톤으로 줄어들어 농가의 감축 부담이 완화된다.
어느 수치를 기준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최종 감축 물량 격차는 최대 1만5000톤까지 벌어진다. 이는 900mL 우유 기준으로 약 1667만개, 하루 평균 4만6000개 분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양측의 해석 차이가 벌어진 데는 2023년부터 시행된 ‘용도별 차등가격제’ 규정의 모호함에 있다. 규정상 과잉물량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구매량’의 정의가 명확히 명시돼 있지 않은 탓에, 농가는 과거 실적 전례를, 유업계는 조항상 기준 물량을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실정이다.

◇ 흰우유 소비 절벽…“분유 만들어 팔아도 적자”
원유 수급 불균형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은 흰우유 소비 감소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2.9㎏으로 전년 대비 9.5% 감소하며 4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과 1인 가구 증가, 대체 음료 범람에 더해 미국·유럽산 유제품이 무관세로 들어오면서 국산 원유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현행 구조에서는 소비가 줄더라도 기업은 정해진 물량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유업체들은 남는 원유를 울며 겨자 먹기로 분유나 치즈로 가공해 처분 중이지만, 국산 원유는 생산비 자체가 높아 가공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실정이다.
유업체 관계자는 “손님은 안 오는데 재료는 계속 사 오라는 격”이라며 “탈지분유로 만들어 팔아도 제조원가가 판매가보다 비싸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기형적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 가공유 전환 시 ℓ당 202원 하락…농가 수입에 직결
낙농가 역시 물러설 자리가 없다. 음용유용 원유는 ℓ당 1084원이지만 가공유용으로 전환되면 882원으로 낮아진다. 용도가 변경되면 농가 수취가격은 ℓ당 202원 깎인다. 올해는 원유가격마저 3년 연속 동결된 상태에서 물량 감축안만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농가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원유가격은 지난 5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라 동결이 결정되면서, 2025년부터 내년까지 3년 연속 묶이게 됐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낙농가는 고정비가 생산비의 약 30%를 차지한다. 2021~2025년 평균 생산비가 ℓ당 171원 상승한 반면 원유가격에 반영된 인상폭은 88원에 그쳤다. 비용 상승분의 절반 가까이를 농가가 떠안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50마리 미만 소규모 농가는 같은 기간 생산비가 ℓ당 280원 증가해, 지난해 생산비(1252원)가 음용유용 원유가격(1249원)을 웃도는 역마진 구조에 진입했다. 최근 5년간 전체 농가의 약 13%에 해당하는 830여 농가가 폐업했고, 농가당 평균 부채는 5억원을 넘어섰다.

◇ 내년 1월 시행 차질 없지만…타결 시점은 ‘안개 속’
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조정된 물량이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당초 8월 말까지 소위원회 합의안이 마련되면 낙농진흥회 이사회 의결 등 후속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시행하는 일정이 예상됐다. 협상이 지연되면서 후속 절차가 촉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낙농진흥회 측은 “연내 타결만 되면 내년 1월 새 물량을 적용하는 데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도 수급 완화를 위해 2027년 예산안에 용도별 차등가격제 지원 예산을 전년 431억원보다 대폭 늘린 760억원을 편성했다. 남는 원유를 분유로 가공할 수 있도록 공공 분유 제조시설 예산 9억원도 신규 반영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구매물량 자체는 낙농진흥회를 중심으로 생산자와 유업체가 직접 타결해야 하는 구조로, 정부는 완만한 합의를 위한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2024년 협상에서는 음용유용 원유 9000톤을 줄이고 가공유용을 9000톤 늘리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찾았다. 올해는 유업계와 낙농가 모두 경영 여건이 크게 악화한 가운데, 물량 규모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협상 타결 향방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회 관계자는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히 커 최종 타결 시점이 언제가 될 지 현재로서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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