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정원 아래 내 사랑과 나 만났네/ 그녀는 작고 눈처럼 하얀 발로/ 수양버들 정원을 지나갔지/ 나무에 잎사귀가 자라는 것처럼/ 쉽게 사랑하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지/ 그러나 나는 어리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네// 강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 서 있었네/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는/ 눈처럼 흰 손을 얹었지/ 강둑 위에 풀이 자라는 것처럼/ 인생을 쉽게 살라고 그녀는 말했지/ 그러나 나, 젊고 어리석었고/ 그래서 지금 눈물로 가득하네” (최영미 역)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일세. ‘쉽게’ 사랑하고, ‘쉽게’ 살라는 시구가 좋아서 젊었을 때부터 좋아했어.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하늘이 나에게 허락한 몫만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거든. 그래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다 하면서 정말 ‘쉽게’ 살았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지. 하지만 사람에게 크게 실망하거나 내 삶의 방식에 회의적인 적은 별로 없었어. 정말 힘들 때는 술 한잔 마시고, 마이크 잡고 노래하고,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노년에 접어들면서 점점 사람답게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네. 희희낙락(喜喜樂樂)하기에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다는 걸 알아버렸어. 그래서 요즘은 중국 북송의 대문호 소식(蘇軾)이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라는 시를 시작했던 첫 두 구절을 자주 입에 올리고 있네. “人生識字憂患始(인생식자우환시), 姓名粗記可以休(성명조기가이휴).”인생은 글자를 알면서부터 우환이 시작되니, 이름 자나 그럭저럭 쓸 줄 알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내가 변해버렸네. 젊었을 때처럼 ‘쉽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 거지. 노년에 맞이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나 할까.
우리 또래 중 나만큼 어렸을 때 비행기를 많이 보고 자란 사람도 드물걸세. 최근 광주 반도체 산업 단지로 결정된 광주 군 공항 전체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고향이거든. 맨 남쪽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는 송정리 비행장까지는 중간에 키 큰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평야였어. 그땐 아직 논에 비닐하우스가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게 다 보였지. 날씬한 제트기들이 얼마나 날씬하고 멋있는지 몰라.
툇마루에 누어 푸른 하늘에서 편대를 이루면서 날고 있는 제트기들을 시름없이 쳐다볼 때가 많았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제트기들이 작은 새처럼 보였어. 내가 특히 좋아했던 제트기 꽁무니에 생긴 흰 줄이야. 그걸 비행운이라고 부른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 제트기들이 하늘에 그려 놓은 아름다운 흰 줄무늬 그림들을 보면서 꿈을 꾸었지. 나도 빨리 커서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맘껏 날고 싶었거든. 마치 『장자』「소요유」에 나오는 붕새처럼 말일세. 물론 그땐 장자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하지만 비행기에 대한 이런 우호적인 추억은 노년에 생태와 기후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바뀌고 말았네. 식자우환이 시작된 거지. 비행기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야. 비행기가 전 세계 이산화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퍼센트 정도이지만,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5퍼센트가 넘네. 배기가스가 만드는 비행운이 지구 열이 우주로 빠져나가는 걸 막는 담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생태 친화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비행기 타는 걸 ‘수치’로 여기는 거야. 세계 인구 중에서 일 년에 한 차례 이상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3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네. 사실 극소수야. 우리가 부자 나라에 살아서 누구나 다 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인천에서 뉴욕 케네디 공항을 이코노미석으로 왕복 여행하는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배출량은 대략 1.1톤 정도 되네. 이번에 기후 참사를 당한 네팔 국민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하지.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기후 악당’ 중 하나라고 놀리고 있네. 이산화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야.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의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2024년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2.8톤으로 세계 평균 6.6톤의 거의 두 배야. 네팔은 1.3톤이고. 이런 통계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 기후 재앙으로 죽거나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해. 아직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말일세.
기후 위기가 더 악화한다고 인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나 미국 사람들처럼 살면 우리 손주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수라(阿修羅)에 가까울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먼저 행동해야 하는 걸세. 아직도 성장만 앞세우는 정부와 기업의 반생태적인 경제 정책에 분노하고 저항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스스로 바뀌어야 해. 소식(小食)하고, 쇠고기 덜 먹고, 가까운 곳에서 재배하는 것들 먹고, 소비는 줄이고, 한 그루라도 나무 심고, 해외여행은 자제하고, 에너지 소비는 줄여야 해. 시작은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별로 불편하지도 않아. 자신을 바꾸지 못하면서 탈성장을 외치는 건 위선일 뿐이야. 손주들에게 부끄러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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