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2일 오전 서울 청담동 MCM 하우스. 20여년간 ‘말’로 대중에게 위로를 건네온 강연가 김창옥이 이날은 마이크 대신 작품 앞에 섰다. 6년간 이어온 옻 작업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MCM은 이날 청담 MCM 하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프리즈 위크 서울 2026’ 개막에 맞춰 3일부터 김창옥의 첫 개인전 <김창옥: 위로의 흔적>을 연다고 밝혔다. 패션 브랜드의 영역을 문화예술로 넓히는 시도다.
전시장 한쪽 스크린에는 김창옥이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알루미늄 판에 붉은 옻을 올리고, 마르기를 기다린 뒤 다시 덧입히는 작업이었다.
김창옥은 “강연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꼭 ‘그런데 강사님은 어디서 위로를 받으시나요’라고 물었다”며 “6개월 정도 심각하게 생각해봤는데 정작 나 자신에게 위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그가 답을 찾아 향한 곳은 작업실이었다. 김창옥은 “동물들이 물 냄새를 맡고 찾아가듯 우연히 옻을 만나 끌리듯 작업실로 가게 됐다”며 “작가가 되겠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 “누구도 나를 작가로 초대한 적 없었다”
김창옥이 옻 작업을 시작한 것은 6년 전이다. 그는 “겉보기에는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도 몸도 삶도 내부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좀 더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어 작업실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작업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의 상처와 위로가 작품마다 새겨졌다.
김창옥은 “MCM은 제가 공식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곳”이라며 “지금껏 저를 작가로서, 전시로서 초대해준 곳은 없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김혜리 MCM 대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담긴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구든 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것”이라며 작업에 담긴 시간과 진정성을 전시 결정의 배경으로 꼽았다.
MCM은 지난해 일본 작가와 협업 전시를 연 데 이어,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한국 작가와의 전시를 추진했다. 김창옥의 작업을 통해 브랜드와 예술의 접점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 “위로는 완성된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온다”
전시에서는 신작 ‘울다’와 ‘선 없는 선’ 등을 공개했다. 두 작품은 옻을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린 뒤 상처를 내고 다시 덧입히는 반복 작업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담았다.
김창옥은 1973년 제주에서 태어나 고향의 비와 바람, 습도 등 자연환경을 작업 조건으로 삼았다.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하기 어려운 표면의 변화를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그대로 남겨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위로는 완성된 결과물에 도달했을 때 얻는 것이 아니라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찾아왔다. 반복적인 작업에 몰입하면서 불필요한 생각이 하나둘 사라졌고, 기다리고 다시 손을 대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옻은 7년 전 우연히 들른 그릇 가게에서 처음 접했다. 그는 “샐러드 볼 하나에서 나오는 옻빛의 에너지에 끌렸다”며 “그게 옻인 줄도 몰랐고, 처음에는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옻은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다. 김창옥은 “옻이 오르면 어마어마하게 심하다”며 “한 번 오르면 새벽까지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그럼에도 작업을 이어간 이유에 대해 “옻이 저한테 ‘그럼에도 할 거니, 아니면 돌아갈래’ 하고 묻는 것 같았다”며 “제 마음을 걸러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옻은 아주 명확한 붉은색인데, 밖으로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심연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며 재료가 지닌 물성의 힘을 강조했다.
일본에서 스승에게 기술을 배운 경험도 꺼냈다. 김창옥은 “선생님은 기술은 다 가르쳐주셨지만 작품이나 작업 과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며 “‘너는 네가 돼라’는 말씀이 미술계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같았다”고 회고했다.
전시를 앞둔 최근 한 달, 그는 강연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파주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그는 “해병대 때보다 더 힘들었다”며 웃었다.

◇ MCM “제품보다 브랜드 DNA를 보여주는 전시”
향후 협업 가능성도 언급됐다. 김창옥은 “이 전시를 준비하며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다음 작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이미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김혜리 대표도 독일 출신 크리에이터가 김창옥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하며 향후 협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MCM은 2022년 아시아 최초로 프리즈 서울이 열린 이후 매년 프리즈 위크에 맞춰 문화예술 기획전을 진행해 오고 있다. 제품 판매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는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김혜리 대표는 “지금은 예전처럼 제품만 판매하는 시장이 아니다”며 “브랜드의 경영철학과 문화 활동 간의 교류가 만드는 시너지가 중요해진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의 DNA를 파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앞으로의 50년을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김창옥: 위로의 흔적> 전시는 서울 청담동 MCM 하우스에서 3일부터 27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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