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재희 기자] 라 칸테라(La Cantera). 스페인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을 부르는 말이고, 사전적 의미는 채석장이다. 원석을 캐서 보석으로 다듬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지난 7월 두 번째 월드컵을 들어올린 스페인 대표팀의 기반이 이 채석장이다. 최우수 신인상을 받은 파우 쿠바르시, 골든볼을 수상한 로드리,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초신성 라민 야말. 모두 스페인의 칸테라 시스템에서 성장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름들이다.
우승 한 달 뒤, 스페인 라리가 사무국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리가)가 19일 발표한 유소년 육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은 최근 10년간 국제 대회 성과를 가장 많이 쌓은 유럽 대표팀이다. 남녀 성인과 연령별을 합쳐 타이틀 23개. 독일이 9개, 잉글랜드가 7개다. 월드컵 우승 스쿼드 26명 중 25명이 스페인의 유소년 시스템을 거쳤다.
리그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라리가 자체 집계로 지난 시즌 유스 출신 출전 시간 비중은 20.1%로 유럽 5대 리그 1위였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8.3%, 세리에 A는 7.6%에 그쳤다.
경제적 이득도 있었다. 동 보고서는 월드컵 우승 대표를 배출한 뒤 선수를 이적시킨 육성 클럽들이 4억 6,600만 유로 이상을 벌었다고 집계했다. 아직 원소속 클럽에 남아 있는 우승 멤버 아홉 명에는 약 5억 4,500만 유로의 가치를 매겼다. 보고서는 이들을 "구단의 전략적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읽고 나면 한 가지가 눈에 걸린다. 타이틀 스물세 개, 스물여섯 중 스물다섯, 출전 시간 20.1퍼센트, 자산가치 5억 4,500만 유로. 모두 경쟁에서 살아남은 선수에게서 도출된 숫자다. 그러나 채석장에서 나오는 것의 대부분은 보석이 아니라 버려지는 돌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 칸테라의 범위
스페인축구협회(RFEF)는 유소년 카테고리를 여섯 단계로 나눈다. 프레벤하민(6~7세)에서 시작해 고등학생의 나이인 마지막 후베닐이 16세에서 18세다. 두 살 단위로 끊고 후베닐만 세 살을 묶는다.
후베닐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첫 번째 선택의 시간이 온다. 구단은 소수를 골라 프로 계약을 맺고, 이들은 B팀인 필리알(Filial) 소속이 된다. 필리알은 연령 단계가 아니라 성인팀이다. 3부에서 5부 사이 리그에서 다른 성인 클럽들과 승점을 다툰다. 열아홉이 들어가고 스물다섯도 같은 라커룸을 쓴다.
그 자리는 많지 않다. 매년 후베닐에서 새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있다. 올라가도 천장이 있다. 필리알 즉 B팀은 A팀과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 조 1위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필리알은 여전히 구단의 칸테라 구상에 포함된다. 구단은 이들을 1군 자원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칸테라는 열여덟에 끝나지 않는다.
이 구간에서 스페인과 한국의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엘리트 대학 리그 시스템이 스페인에는 없다. 스페인의 열아홉살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성인 무대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다.
◆ 스물셋이라는 기준점
열아홉 이후 프로로 축구를 계속하려면 어느 클럽엔가 등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등록에는 나이 제약이 붙는다.
U-23 선수는 필리알에 등록한 뒤 필요할 때마다 1군에 올렸다 내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23세를 넘긴 필리알 선수는 B팀 소속으로 모구단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그를 쓰려면 1군 스쿼드에 정식 등록해야 한다. 구단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승격시키거나, 내보내거나.
예외는 25세 미만 골키퍼뿐이다. 등록 명단에도 쿼터가 제약으로 작동한다. 스페인 축구협회 (RFEF) 규정에 따르면 3부 한 팀은 최대 25장의 라이선스를 보유하되 23세 초과 선수가 18명을 넘을 수 없다. 정원을 채우려면 최소 일곱 명이 23세 미만이어야 한다. 4부와 5부는 상한이 16명으로 더 낮다.
여기에 국적은 또 하나의 제약 조건이다. 비EU 국적자는 등록에 앞서 합법 거주를 증명해야 한다. 이 규정이 가장 치명적으로 작동하는 곳은 대표적인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가 아니다. 프리메라 페데라시온과 세군다 페데라시온, 관중 수백 명이 드나드는 3부와 4부 경기장이다. 열여덟 명이라는 상한에 걸린 선수는 다음 시즌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다. 계약이 끝나서가 아니라 자리가 없어서다. 스페인에서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이 곳에 포함되어 있다.

◆ 구단의 전략적 자산
그렇다면 스페인 구단은 왜 칸테라를 유지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1군 전력 조달이라는 답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체 육성 선수는 이적료를 받고 팔았을 때 회계상 이익이 온전히 남는다. 외부에서 데려온 선수와 달리 취득 원가가 없기 때문이다. 재정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이 항목의 값어치는 커진다.
스페인 일간지 The Objective의 보도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여름 유스 출신 매각으로 약 2억 유로를 벌었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영입에 쓴 돈의 대부분을 자체 육성 선수를 팔아 채운 셈이다. 이적한 선수들의 명단에는 1군 경기에 한 번도 나서지 못한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1군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도 구단에 수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수 입장에서도 구단을 떠난다는 것이 곧 실패는 아니다. 1군 벤치에 앉아 있는 것보다 다른 팀에서 뛰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몸값을 높인 니코 파스가 대표적이다.
◆ 두 번의 기회, 그리고 버티지 못하는 선수들
칸테라 시스템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 번째 기회는 후베닐이 끝나는 시점에 온다. 필리알에 남거나, 자신을 받아줄 클럽을 직접 찾아 나서거나.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열여덟 해를 보낸 구단 밖에서, 처음으로 혼자 팀을 구한다. 어제까지 또래와 겨루던 선수가 지역 리그에서 서른 넘은 성인들과 몸을 부딪친다.
두 번째 문은 마지막 23살에 열린다. 필리알에 남은 선수도 결국 이 문 앞에 선다. 1군과 정식 계약을 맺거나, 다른 구단의 1부나 2부로 이적하거나. 그리고 대다수는 B팀이 아닌 일반 지역 클럽으로 간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한 것이 두 번째 기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필리알에서 보낸 4년은 구단의 기다림이었을 뿐이다. 다음 기회까지의 시간을 얻는 것이다.
야말과 쿠바르시, 그리고 로드리는 두 문을 모두 통과한,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들이다. 그들에게도 경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스페인 축구 그리고 전 세계에 이름을 남겼다. 같은 후베닐을 마친 대다수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 칸테라에서의 경쟁, 그리고 그 이후
칸테라에서 살아남지 못한 선수들은 어떻게 될까.
축구를 놓지 못하고 하위 리그로 내려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선수의 길을 접고 다른 일을 찾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라리가는 보고서를 통해 아카데미 인증 지표 66개 안에 이중 커리어와 미성년자 보호를 넣어 관리한다고 밝혔다. 뛰는 동안 축구 이외의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리그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페인프로축구선수협회(AFE)는 학업 장학금을 운영한다. 1부와 2부만이 아니라 3부와 4부, 5부 이하, 그리고 은퇴한 선수까지 신청 대상이다.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명단이 보여준다. 다만 금액은 학위 과정이 연 최대 1000유로다.
한국의 열아홉 선수가 얻는 대학 4년은 그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은 축구를 이어가는 자리이면서 학위를 남기는 자리다. 구조상으로는 프로 진출을 준비하면서 그 이후의 길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다만 그 4년이 실제로 준비가 되는지는 다른 문제다.
스페인에는 그 4년이 없다. 대신 필리알과 지역 클럽에서 같은 나이를 보내며 경쟁을 한다. 그렇기에 하위리그 선수들은 학업 또는 생업을 축구와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을 직접 찾아간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클럽에서 스물셋을 앞둔 선수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라 칸테라 시스템에서 경쟁하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한국대학축구연맹 유럽카탈루냐지사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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