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s 시선] 손주들 돌보느라 허리 휜다...고되고 고된 '할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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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 워킹맘인 딸을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조모 A씨는 하루 종일 아이 둘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A씨는 "큰 애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작은 애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둘이 하원하는 시간도 다르고 다니는 학원도 제각각이다 보니 데려다주고 또 데리고 오는 스케줄이 너무 헷갈린다"며 "어느 날은 시간을 착각해서 아이를 데리러 나가지 않았다가 애들 엄마에게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나이 먹고 이게 뭔 고생인가 싶다"고 말했다.


# B씨 또한 초등학교 5학년인 손주를 돌봐주고 있는 '할마'다. B씨는 "힘들게 맞벌이하는 딸네 부부가 안쓰러워 손주를 내가 계속 봐줬다. 손주도 어느 정도 다 컸고 해서 얼마 전에는 오랜 친구들과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더니 사위가 펄쩍 뛰더라"며 "하는 수없이 나만 여행에서 빠지기로 했는데 참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 C씨는 손주를 돌봐주기 위해 매주 대전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 평일에는 서울에 있는 딸네 집에서 손주를 돌봐주다가 주말에 대전 집에 가서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C씨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요즘은 둘이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데 애들 클 때까지는 나라도 도와줘야지"라며 "내 생활이 없는 것이 아쉽긴 하다"고 전했다.

조부모의 황혼육아가 대세다.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의 양육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할마', '할빠'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유모차를 끌며 장을 보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손주를 위해 간식을 싸오는 할머니, 아이의 가방을 들고 학원 차량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등 요즘에는 육아하는 할마, 할빠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열혈 할머니들은 학부모 총회나 학원 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일하는 엄마가 가장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친정 엄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아이를 사랑하고 또 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관련해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도 편하다.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면 '금수저',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면 '은수저', 아이돌보미를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 맡기면 '흙수저'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손주를 돌보는 할마들의 삶은 어떨까. 자녀를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나선 일이지만 생각보다 황혼육아는 쉽지 않다. 하루 일과는 등원 준비로 시작해 집안일과 장 보기로 이어지고 하원 후에는 아이와 놀아 주기, 간식 챙겨주기, 학원 등하원과 숙제 시키기, 저녁 준비하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부부가 야근이나 출장으로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씻겨서 재우는 것까지 모두 할마의 몫이다.

온종일 육아에 시달려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아이들은 한없이 친절한 할머니에게 더 쉽게 떼를 부린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핀잔 섞인 원망을 듣기 일쑤다. 육아를 하면서 손목과 허리, 어깨에 통증이 생기는 일명 '손주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희생정신 강한 우리 시대의 할마들은 병원에 다니면서도 육아를 쉽게 놓지 못한다. 출구 없는 황혼육아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할머니들도 늘었다.
 

▲[사진=서울시]

 

정부는 육아하는 조부모를 위한 지원책으로 조부모 돌봄 수당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서울형 아이돌봄비'를 신설하고 만 24~36개월 영아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3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영아를 돌보는 시간은 월 40시간 이상이어야 하며 영아가 2명이면 45만 원, 3명이면 60만 원을 최대 13개월간 지급한다. 서울형 아이돌봄비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인 맞벌이·다자녀·다문화·한부모 가정이 신청할 수 있다.

시는 부모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고 최근 늘어난 조부모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 사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의 양육은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그 책임이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조부모가 육아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육아를 전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내 아이 육아에 조부모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는 노년의 삶이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녀의 육아를 도와줄 수 없다고 미리 못 박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대학생 딸을 둔 육아맘 조씨는 "요즘에는 아들만 있는 엄마를 '돌아온 금메달'이라고 부른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는 아기 맡기기를 꺼려 해 노년에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저는 이미 딸에게 아이를 못 봐준다고 선언했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황혼육아로 내 삶을 잃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 시대의 할마, 할빠들이 황혼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노년을 건강하게 가꾸어가길 바란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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