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금융감독원의 제약바이오 공시 전면 개편을 앞두고 국내 바이오텍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 바이오기업에는 공시 대응 비용과 기술수출 협상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공개(IPO)부터 상장 이후 연구개발과 기술이전, 임상시험 결과, 언론 보도까지 공시 체계 전반을 손질하는 내용이다.
앞으로 IPO를 추진하는 바이오기업은 공모가 산정 때 예상 시장 규모와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 위험, 개발 기간과 비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상장사는 기술이전 계약을 계약금과 개발·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로 나눠 공개하고 정기보고서에는 개발 완료와 중단 등 파이프라인 전체 이력을 담아야 한다.
문제는 바이오텍 상당수는 연구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돼 공시·회계·법무 전담 조직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새 양식에 맞춰 과거 파이프라인과 개발 일정을 정리하려면 추가 인력과 외부 자문이 필요하다. 자금이 빠듯한 상황에서 관리 비용이 늘어나면 연구개발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
임상 성공 확률과 개발 일정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항체약물접합체와 유전자·세포치료제 등 신기술 분야는 비교 가능한 임상 통계가 제한적이고, 임상시험 과정에서 환자 모집과 허가 기관 협의, 추가 시험 요구 등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바이오텍 관계자는 “개발 단계를 아무리 세분화해 공시하더라도 임상은 변수가 많아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IPO 당시 안내한 일정이 지연되거나 비용이 추가될 때마다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면 오히려 투자자들의 바이오산업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삼천당제약 사례는 이번 개편 방향과 맞닿아 있다. 회사는 지난 2월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의 유럽 11개국 독점 라이선스·상업화 계약을 공시하면서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3000만유로, 당시 약 508억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에서는 향후 제품 판매 수익 등을 반영한 총계약 규모를 약 5조3000억원으로 설명했다. 한국거래소는 공시 검토 과정에서 이 5조3000억원이 계약서에 명시된 확정 금액이 아니라고 확인한 바 있다.
금감원 개선안은 계약금과 개발·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 등 지급 조건을 세분화해 실제 수취 가능한 금액을 구분하도록 했다. 확정 계약금과 장래 예상 수익이 함께 제시될 경우 투자자가 계약 규모를 오인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바이오텍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와 체결하는 기술이전 계약 상당수에는 계약금과 마일스톤 구조는 물론 협상 사실 자체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비밀유지 조항이 포함된다”며 “업프론트부터 마일스톤과 로열티까지 세세하게 기재하고 싶어도 실제로는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공시 기준에 맞춰 정보 공개 범위를 다시 협의하는 과정에서 계약 체결이 늦어질 수 있고, 공개하지 못한 정보가 증권신고서 정정이나 반려 사유로 이어진다면 IPO를 앞둔 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IPO 문턱도 높아질 수 있다. 초기 바이오기업은 현재 매출보다 후보물질의 미래 가치로 평가받는데, 시장 규모와 성공 확률, 허가 위험, 개발비를 세분화하면 기업가치 산정이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가 늘어나면 상장 지연과 추가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시 강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기업 규모와 파이프라인 특성을 고려한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문제가 되는 부분만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덧붙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응이 반복되고 있다”며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기업과 파이프라인 특성을 반영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중소 바이오텍을 위한 표준 양식과 사전 컨설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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