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②] 생명 가득한 작은 낙원, ‘가로림만’을 찾은 손님

시사위크
한여름의 가로림만은 생명이 숨쉬는 공간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과 수심이 얕은 연안이 발달한 가로림만은 해양 생물들에겐 ‘작은 낙원’ 같은 곳이었다. 한국 연안에 서식하는 대표 해양포유류 ‘점박이물범(Phoca largha)’에게도 가로림만은 중요한 휴식처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한여름의 가로림만은 생명이 숨쉬는 공간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과 수심이 얕은 연안이 발달한 가로림만은 해양 생물들에겐 ‘작은 낙원’ 같은 곳이었다. 한국 연안에 서식하는 대표 해양포유류 ‘점박이물범(Phoca largha)’에게도 가로림만은 중요한 휴식처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시사위크|서산=박설민·김두완 기자  한여름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드넓은 갯벌, 갈매기 등과 함께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처럼 흔히 볼 수 없는 멸종위기종들도 눈에 띄었다. 이 물새들은 갯벌에 숨은 조개, 게들을 한가로이 사냥했다. 그 옆에는 어민들이 활동하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곳은 충청남도 서산시 가로림만이다. 지난 14일 시사위크 취재팀은 현장 취재를 위해 한국WWF(세계자연기금) 모니터링팀과 함께 방문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과 수심이 얕은 연안이 발달한 가로림만은 해양 생물들에겐 ‘작은 낙원’ 같은 곳이었다.

한국 연안에 서식하는 대표 해양포유류 ‘점박이물범(Phoca largha)’에게도 가로림만은 중요한 휴식처다. 겨울철 중국 보하이해 랴오둥만에서 새끼를 낳는 점박이물범은 매년 300여 마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의 백령도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0마리 내외의 물범 개체들은 이곳, 가로림만을 방문한다.

가로림만에서는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처럼 흔히 볼 수 없는 멸종위기종들도 눈에 띄었다. / 사진=박설민 기자
가로림만에서는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처럼 흔히 볼 수 없는 멸종위기종들도 눈에 띄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가로림만을 찾은 반가운 손님

취재팀이 만난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의 갯벌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며 몸을 뒹굴고 있었다. 1km 정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망원경을 통해 관찰해야 했지만 특유의 웃는 얼굴과 새우튀김처럼 보이는 통통한 몸, 회백색 몸통에 검은 점무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물범 중에서 가장 작은 점박이물번은 몸길이 약 1.5~2.1m, 무게 82~100kg 수준이다. 통통하고 짧은 몸, 웃는 얼굴의 귀여운 외모 덕에 가장 인기 있는 해양 동물 중 하나다. 실제로 일본 오사카 ‘가이유칸(kaiyukan)’ 등 전 세계 대형 수족관 모두 점박이물범을 사육 중이다.

한국 연안의 대표 ‘기각류(발이 지느러미 모양인 해양 포유류의 무리)’이지만 점박이물범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북태평양부터 캘리포니아 알류산 해역, 캄차카 반도, 북해도, 혼슈 지역 등에서 발견된다. 개체수 관점에서도 안정적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에서는 점박이물범을 ‘최소관심(LC)’로 분류한다. 야생에서 절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즉, 현재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점박이물범은 엄밀히 ‘멸종위기종’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다르다. 최근 황해 등 주요 서식지를 중심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내서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와 기관, 전문가들의 모니터링 등 지속적 관리가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당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2009년~2016년 가로림만의 점박이물범 개체수 조사를 8번 시행했다. 그 결과, 매년 평균 6마리의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대표 서식지인 백령도를 포함해서도 육지 내만에서 점박이물범이 관찰된 곳은 가로림만이 유일하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연평균 약 12마리가 가로림만을 방문한다.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국내 대표 서식지인 백령도를 포함해서도 육지 내만에서 점박이물범이 관찰된 곳은 가로림만이 유일하다고 한다. / 사진=박설민 기자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국내 대표 서식지인 백령도를 포함해서도 육지 내만에서 점박이물범이 관찰된 곳은 가로림만이 유일하다고 한다. / 사진=박설민 기자

◇ 점박이 물범은 왜 가로림만을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수많은 연안 지역 중 점박이물범은 왜 ‘가로림만’을 선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한국WWF를 포함, 국내외 연구기관과 생태전문가들이 가로림만의 점박이물범 생태 모니터링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WWF는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와 지역 주민, 활동가들과의 협력해 2년 전부터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안지애 한국WWF 생물다양성팀 오피서는 “가로림만 점박이물범 1회 조사 시 최대 확인 개체수는 약 12마리였다”며 “그동안 가로림만 서식 점박이물범 개체수가 10여마리인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이는 매번 방문하는 개체수가 각기 다른 개체라는 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보고된 숫자”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점박이물범이 가로림만에 머무는 이유는 현재로선 추정의 영역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안전한 휴식지’다. 처음 가로림만을 찾은 점박이물범이 이곳을 풍부한 먹이군과 최상위 포식자가 없다고 판단, 이동 경로상 중간 기착지로 삼기 시작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진이 지난 2004년 백령도 점박이물범 분포를 조사한 연구를 살펴보면 관련 특성의 확인이 가능하다.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점박이물범은 백령도 물범바위 지역에서 많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파도와 물보라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는 지형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쉽게 말해 물범이 휴식 공간으로 여기는 지형에 주로 개체가 몰린다는 증거다. 실제로 현장서 망원경으로 관측한 점박이물범들은 작은 소음에도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을 지원한 박정섭 선장은 “점박이물범 관찰을 위해 근처에만 가도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해 배를 타고 접근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며 “느긋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겁도 많고 예민한 아이들이다”라고 말했다.

가로림만에서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물범 무리.  파도와 물보라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는 지형을 선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가로림만에서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물범 무리.  파도와 물보라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는 지형을 선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 사진=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WWF 공동제공

◇ 물범의 ‘맛집 휴게소’ 가로림만, 생물다양성도 최상위

물론 안전한 공간인 것만으론 가로림만에 점박이물범이 매년 나타나는 이유로 보긴 어렵다. 안정적인 먹이 공급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음식이 맛있는 휴게소에 여행객들이 몰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가로림만은 최적의 장소다. 2004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팀이 2002년 7월 진행한 현장 조사에 따르면 가로림만 갯벌에서 채집된 대형저서동물은 총 8개 분류군에 총 147종, 5,586개체로 파악됐다.

이때 평균 저서생물의 서식밀도는 1㎡ 면적당 1,140개체, 평균 생물량은 157.2g로 추정됐다. 저서생물은 바다나 호수, 강 밑바닥에 서식하는 생물이다. 조개, 고둥, 새우, 게, 갯지렁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갯벌의 퇴적물 순환과 영양급 공급 역할을 하는 저서생물종의 다양성은 곧 그 지역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건강 지표와 직결된다.

가로림만은 다양한 저서생물과 기름진 토양을 기반, 가장 양호한 생태 건강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진은 가로림만에서 만난 바닷게. / 사진=박설민 기자
가로림만은 다양한 저서생물과 기름진 토양을 기반, 가장 양호한 생태 건강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진은 가로림만에서 만난 바닷게. / 사진=박설민 기자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도 2014년 가로림만의 대형저서동물 군집구조를 기반, 생태 안전성을 평가했다. 총 247종의 대형저서동물종 생태와 갯벌 퇴적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가로림만의 생태 건강도는 봄과 여름 ‘가장 양호한 상태(High status; normal)’로 평가됐다. 이 시기 가로림만을 점박이물범들이 찾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안지애 한국WWF 오피서는 “최근 시범 연구를 통해 연중 가로림만을 찾는 물범 개체수가 30여마리 이상임을 확인했다”며 “이는 점박이물범의 서식지 이용과 이동패턴을 추적할 수 있는 최초의 연구”라고 말했다.

이어 “충청남도에서도 이를 유의미한 연구 결과 자료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특히 이는 가로림만을 보호하는 중요한 정책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며 “한국WWF는 가로림만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을 시작으로 차차 개체군의 분포, 생태적 특성, 이동경로, 백령도 개체와의 차별점 등을 연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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