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브라질 사업의 방향을 다시 점검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201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현대차보다 늦게 브라질에 진입한 BYD가 브랜드 순위 4위까지 올라선 상황이다.
정의선 회장이 대통령 브라질 국빈 방문 경제사절단 일정과 별도로 상파울루 주 피라시카바 현대차 브라질공장을 찾은 것은 변화한 경쟁 환경을 살피고 향후 성장 전략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다. 기존 소형차들 중심의 판매 기반을 지키면서 친환경 파워트레인과 수소·재생에너지로 성장 범위를 넓히는 것이 이번 방문의 핵심이다.
브라질자동차유통연맹(FENABRAVE)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브라질에서 9만6723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증가했고, 2019년 상반기 9만9567대 이후 가장 많은 실적이다. HB20 세단·해치백이 5만9518대, 크레타가 3만5925대로 전체 판매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판매 증가에도 시장점유율은 7.1%, 브랜드 순위는 5위다. 지난해 8위였던 BYD는 올해 상반기 4위로 뛰어올랐다. 현대차의 판매 기반은 견고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의미다. 현대차가 공식 발표한 브라질 중장기 전략 역시 이런 경쟁 구도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잘 팔리는 HB20·크레타…빨라진 중국 추격
현대차가 브라질에서 확보한 가장 큰 자산은 현지화 경험이다. 2012년 완공된 피라시카바공장은 현재 HB20과 크레타, i20 등 브라질 전략 차종을 연간 20만대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누적 생산 250만대를 넘어섰다.

정의선 회장은 현지 임직원들에게 "13년 만에 250만대 생산 돌파라는 기록을 세운 것은 브라질공장 직원들의 헌신과 팀워크로 이뤄낸 결실이다"라며 "브라질은 현대차 글로벌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시장으로, 지금까지의 성과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브라질 산업수요의 중심인 소형차 시장을 일찍 공략했다. HB20은 세단과 해치백을 합쳐 출시 이후 188만대 이상 판매됐고, 크레타도 누적 판매 57만대를 기록했다. 크레타는 올해 상반기 일반 소비자 대상 딜러 판매에서 SUV 부문 1위에 올랐다.
올해 6월 현지 생산을 시작한 i20도 같은 역할을 맡는다. 브라질 자동차 수요에서 두 번째로 큰 23%를 차지하는 B세그먼트를 겨냥해 FFV 전용 파워트레인과 공간성, 편의·안전 사양을 적용했다. 기존 HB20과 함께 현대차의 소형차 판매 기반을 넓히는 차종이다.
SUV 전략은 한층 중요해진다. 브라질 시장에서 크로스오버를 포함한 SUV 비중은 지난해 43.0%에서 2030년 51.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B세그먼트 SUV만 전체 시장의 2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크레타 판매 강화와 함께 2030년까지 여러 차급의 SUV를 투입하기로 한 이유다. HB20과 i20가 판매량을 지탱하고, SUV 라인업이 추가 성장을 담당하는 구조다.

다만 중국 업체들도 수입 판매에서 현지 생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BYD는 2025년 옛 포드 공장 부지에 마련한 카마사리 생산시설의 가동을 시작했고, 현지 부품 조달 비중을 높이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공장을 갖고 있다는 현대차의 우위가 앞으로도 자동으로 유지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현지 연료 생태계 겨냥…FFV-HEV 첫 승부처
현대차 브라질 전략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휘발유·에탄올 혼합연료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FFV(Fuel Flexible Vehicle)-HEV'다.
브라질에서는 휘발유와 에탄올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FFV가 자동차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계적인 사탕수수 생산국인 만큼 에탄올 생산과 공급 인프라도 이미 구축돼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가솔린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를 그대로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브라질의 연료 환경과 가격 구조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현대차는 FFV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한 전용 파워트레인을 개발해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SUV에 적용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차종과 출시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대차는 이른 시일 안에 시장에 선보인다는 방침을 밝혔다.
FFV-HEV 개발은 현대차 브라질 현지화 전략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HB20과 크레타 등 현지 수요에 맞는 차종을 생산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브라질의 연료와 정책에 맞는 동력계까지 현지에서 개발해야 한다.

정의선 회장이 생산공장보다 중남미권역 R&D센터를 우선 방문하고 파워트레인 현지화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6년 설립된 중남미권역 R&D센터는 차량 인증과 법규 대응에서 출발해 현지 특화 차량과 파워트레인 개발 조직으로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의 산업정책도 현지 개발과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브라질은 자동차 산업의 연구개발과 탈탄소 투자를 지원하는 '그린 모빌리티 혁신 프로그램(MOVER)'을 시행하고 있다.
MOVER는 에너지 효율과 탄소배출, 재활용 수준 등을 자동차 세제와 연계하고 현지 연구개발 및 생산투자에 금융·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브라질 법률은 에탄올 또는 휘발유·에탄올 혼합연료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차등 세율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입 친환경차에 대한 보호 장벽도 높아졌다. 완성차 형태로 수입되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는 2026년 7월부터 35%의 관세가 적용된다. 조립용 부품 형태인 SKD 차량에도 같은 시점부터 35% 관세가 부과되며, CKD·SKD 차량에 대한 한시적인 무관세 쿼터만 별도로 운영된다. 수입 중심의 친환경차 사업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이 시장 진입의 전제조건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차는 소형 전기차 현지 생산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가까운 시점의 판매 확대에서는 FFV-HEV가 더 현실적인 선택지다. 충전인프라 확대를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존 에탄올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고, 브라질 정부의 탈탄소·산업육성 정책에도 대응할 수 있어서다.

정의선 회장은 "지속가능한 중장기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지 R&D 기능을 강화하고 파워트레인 현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브라질의 산업 환경 변화와 새로운 경쟁국면을 맞아 여러 도전과 과제가 존재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해야 다음 단계의 성장과 도약이 가능하다"며 "브라질에서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전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첨언했다.
◆수소는 장기 성장 축…공장을 에너지 거점으로
수소와 재생에너지 사업은 자동차 판매보다 긴 시간표에 놓여 있다. 브라질은 전력 생산에서 수력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이 높은 국가다. 브라질 정부도 국가수소프로그램(Programa Nacional de Hidrogênio, PNH2)을 통해 저탄소 수소 생산과 수출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브라질에서 수소 상용차와 수소 트램 등 모빌리티 사업을 발굴하고,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과 그린수소 생산, 재생에너지 발전소 구축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현대차의 연료전지 기술과 그룹 계열사들의 발전·건설·물류 역량을 묶어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가 수소를 브라질 전략에 포함한 목적은 현지 승용차 판매 확대와는 다르다. 자동차공장을 운영하는 제조업체에서 브라질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 참여하는 사업자로 역할을 확장하려는 장기 계획이다.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기까지는 경제성과 수요처 확보가 필요하다. 수소 상용차와 트램, 발전소 등 개별 사업의 발주 주체와 생산·공급 구조가 구체화돼야 한다. 상파울루대학을 비롯한 현지 대학·기관과의 산학협력도 기술 실증과 인력 확보 단계부터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차가 브라질에서 쌓아온 노사·지역사회 기반은 장기 투자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다. 브라질공장은 15년 연속 임금협상 무분규를 기록했고, 2026년 브라질 연방 감사원의 윤리경영 우수기업 인증을 획득했다. 지역 아동과 치안 공무원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진료를 지원하고, 2022년부터 10만그루의 나무를 심어 40㏊ 규모의 산림을 복원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피라시카바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이 20만대이고 올해 현대차의 브라질 판매 목표가 20만4000대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판매 차량이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SUV와 친환경차 라인업을 추가하려면 생산 차종 조정과 설비투자, 부품 현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의선 회장의 이번 방문은 현대차 브라질 사업의 현지화 범위가 완성차 생산에서 파워트레인과 에너지 사업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i20와 SUV가 당장의 판매 기반을 넓히고, FFV-HEV가 다음 친환경차 수요를 맡는다. 수소와 재생에너지는 장기 성장 기반을 준비하는 축이다.
현대차는 HB20과 크레타를 앞세워 브라질 주요 완성차 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을 확대하면서 경쟁의 기준도 달라졌다. 현대차의 다음 브라질 성장은 판매 목표 20만4000대 달성 여부보다 현지화의 깊이를 얼마나 빠르게 늘리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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