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국제해역의 심해저에서 광물을 개발하려면 국제해저기구(ISA)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171개국과 유럽연합이 가입한 유엔해양법협약은 국가 관할권 밖 심해저와 그 자원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ISA의 관리 아래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1996년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 고려아연이 투자한 캐나다 심해저 광물개발 기업 더메탈스컴퍼니(TMC)는 ISA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상업 채굴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투자와 광물 가공 계획을 확인하고, 국내 기업의 ISA 체제 밖 채굴 참여를 규율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그린피스, 고려아연의 TMC 투자 검토 촉구… ISA 승인 없이 채굴 추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제31차 ISA 총회가 개막한 지난 27일 한국 정부에 고려아연의 TMC 투자와 광물 정제·가공 협력 계획을 공식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ISA 승인 없이 회수된 심해저 광물에 국내 기업이 투자하거나 이를 수입·가공하지 못하도록 법률과 행정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심해저 채굴에 따른 환경 피해를 막을 안전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상업 채굴을 유보하는 ‘사전주의적 중단’에도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총회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논란은 TMC가 ISA가 아닌 미국 정부에 상업 채굴 허가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TMC의 미국 자회사 TMC USA는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서 니켈과 코발트, 구리, 망간 등이 포함된 다금속단괴를 채굴하기 위해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ISA 회원국이 아니다.
ISA는 국가 관할권 밖 심해저의 광물 개발은 자국법이 아닌 ISA의 승인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ISA가 허용한 사업은 탐사에 그치며 상업 채굴은 한 건도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TMC에 허가를 내주더라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과 연결되는 지점은 고려아연의 투자다. 고려아연은 2025년 6월 8,520만 달러를 투자해 TMC 지분 4.95%를 취득했다. 투자 발표 당시 환율로 약 1,165억원 규모다. TMC 주식 686만여 주를 주당 7달러에 추가로 살 수 있는 3년 만기 신주인수권도 확보했다. 고려아연은 이를 핵심광물 원료 확보와 미국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TMC가 공급하는 다금속단괴를 자회사 켐코가 건설 중인 올인원 니켈제련소의 원료로 활용하고, 향후 미국 정부의 승인이 나오면 한국과 미국 등에서 주요 광물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시설 투자 등 추가 협력 방안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고려아연은 이후 환경단체에 보낸 답변에서 TMC의 경영이나 채굴 사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소수지분 투자자라고 설명했다. TMC의 채굴에 관여하거나 사업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권리도 보유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고려아연은 투자 당시 TMC의 광물을 자회사 제련소의 원료로 활용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가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투자계약에 광물 구매권이나 우선협상권이 포함됐는지, 미국 정부의 허가로 채굴한 광물을 국내에 들여올 계획인지가 향후 협력 범위를 판단할 쟁점으로 남는다.
고려아연과 TMC의 협력이 광물 공급과 가공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쟁점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37조 제3항은 협약에 따르지 않고 심해저에서 회수한 광물을 국가나 개인, 법인이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제139조는 당사국이 자국민과 자국 기업의 심해저 활동이 협약을 준수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책임을 두고 있다.
다만 이 조항이 고려아연의 투자에 곧바로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고려아연은 직접 채굴을 추진하는 기업이 아니며 TMC에 대한 미국 정부의 최종 허가도 나오지 않았다. 현 단계에서는 고려아연의 투자금이 미국 허가를 통한 채굴 사업에 사용되는지 채굴된 광물을 공급받기로 한 약정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부 국가는 자국민과 자국 기업의 무허가 심해저 활동을 별도 법률로 관리한다. 영국과 뉴질랜드는 정부 면허 없이 국가 관할권 밖에서 심해저 광물을 탐사하거나 개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본은 무허가로 채굴된 광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이를 운반·보관·취득하거나 처분을 알선하는 행위까지 처벌한다.
ISA가 공개한 국가별 입법자료를 보면 영국과 뉴질랜드, 일본은 별도의 심해저 광업 관련 법률을 제출했다. 한국 항목에서는 심해저 광업을 직접 규율하는 별도 법률이 확인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ISA 승인 없이 회수된 광물의 취득과 수입, 정제·가공을 직접 규율하는 전담 법률은 없다. 관세법이나 대외무역법 등 기존 법률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관계 부처의 해석이 필요하다.
한국은 ISA와 다금속단괴, 해저열수광상, 망간각 탐사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ISA 이사회는 지난 3월 한국의 다금속단괴 탐사계약을 2026년 4월 27일부터 5년간 연장했다. 한국이 ISA 체제를 통해 탐사권을 유지하는 만큼 국내 기업의 심해저 사업에 적용할 기준도 향후 쟁점으로 남는다.
고려아연은 이차전지용 핵심광물의 국내 정제·가공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이다. TMC 투자 역시 니켈과 코발트 등 원료의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이뤄졌다. 다만 TMC가 미국 정부의 허가로 상업 채굴에 나설 경우 해당 광물의 공급과 가공 과정이 유엔해양법협약과 맞닿게 된다. 정부와 고려아연이 최종 허가 전에 투자계약과 광물 공급 계획을 점검하고 적용 가능한 국내외 규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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