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무더위마저 식혀줄 어르신들의 이야기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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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옛날에 우리 부평 살 때 말야, 부평 이모가….” 환갑이 넘은 엄마는 가끔 옛날얘기를 한다. 언젠가부터 나와 엄마가 ‘부평 이모’라고 부르는 분은 내가 대여섯 살 무렵 살던 집의 집주인 아주머니다. 일로 늘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하여 나를 자주 돌봐주곤 했다. 늦은 저녁 부모님이 퇴근하고 오면 종종 저녁 찬을 나눠주며 엄마와 한창 수다를 떨다 가곤 했다.

 

가난했지만 마음 따듯한 이웃이 많았던 그 시절 옛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따져보면 그때 엄마 나이라고 해봤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다. 그 어린 나이에 참 고생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때로 이야기가 너무 신파로 흐른다 싶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어릴 적, 그러니까 엄마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대체로 재미있다.

 

나처럼 종종 8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에 소개할 책 <산복빨래방>은 좋은 이야기 선물이 될 듯하다.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어르신들이 주고객인 산복빨래방은 세탁비를 이야기로 받는 좀 이상한 곳이다. 직원들의 면면도 수상하긴 마찬가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기자 둘, 피디 둘. 산복빨래방은 산복도로 취재를 목적으로 시작된 <부산일보>의 프로젝트다.

 

‘산복도로’는 산허리를 지나는 도로를 말한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온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마을이 만들어졌다. 산업화 시대에는 인근 조선소나 신발공장 노동자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고 한다. 당시 산업 일꾼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그곳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고,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 저자들은 산 중턱, 집과 집을 잇는 계단 사이 산복빨래방을 만들었다. 산복도로는 지형적 특성상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큰 빨래를 어르신들이 직접 하기도 막막했을 터. 이들은 주민 어르신들의 빨래를 도와드리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와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었다.

 

반세기 전, 부산에는 큰 규모의 신발공장이 많았다. 지금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나이키, 리복 같은 브랜드 신발이 이곳 부산에서 만들어졌다. 책에 등장하는 어머님들 역시 주로 신발공장에서 일했다. 독한 접착제 냄새를 견디며 신발 밑창을 붙이고, 미싱질을 했다. 그렇게 번 돈 20만 원으로 조선소 등에서 일하는 남편들 월급에 보태 쌀을 사고 밥을 지었다.

 

“오늘의 부산과 대한민국을 만든 산업화 시대. 그 속에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업’이라 생각하고 버텨낸 여공들의 삶이 있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이들의 피땀은 사라지지 않고 산복도로 어귀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어르신들은 이야기보따리만 주신 게 아니었다. 밥 먹었냐, 주말에 뭐 했냐 묻기도 하고, 반찬이나 부침개 같은 먹을거리도 챙겨주셨다. 덕분에 저자들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기자들의 프로젝트 기획의도처럼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를 살아낸 산복도로 사람들의 굴곡진 생애는 분명 감동의 힘”이 있다.

 

이 여름 무더위에 잠 못 이루고 있다면,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나 듣던 “옛날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어르신들 이야기로 밤을 달래보는 건 어떨까.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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