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최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에서 한화오션(042660)이 독일 업체에 밀린 것. 아쉬운 패배였지만, 값진 성과를 얻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6일(현지시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노바스코샤 주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CPSP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CPSP는 노후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3000톤급 디젤 잠수함을 최대 12척 도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작년 숏리스트 선정 이후 한국 한화오션과 독일 TKMS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 등만 놓고 보면 한국이 결코 밀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최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50대 50"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판세는 막판까지 팽팽했다.
실제로 해군은 최근 3000톤급 도산안창호함에 캐나다 해군 장병을 태워 태평양을 횡단하는 이례적 '잠수함 쇼케이스'를 통해 기술력을 직접 확인시키기도 했다. 이는 한화오션이 제안한 잠수함의 선행 모델에 불과했다.
반면 TKMS가 제안한 212CD형 잠수함은 차세대 전투체계 등이 적용됐으나 아직 실물이 없는 설계 단계였다.
최근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 특임장관은 현지 언론을 통해 한국과 독일이 모두 해군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납기 경쟁력도 한화오션의 강점으로 꼽혔다. 한화오션은 2035년부터 연간 1척씩 순차 인도하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TKMS는 2036년부터 인도가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가 2035년 퇴역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기 전력화 능력은 한국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결국 승부를 가른 건 기술이 아니라 안보 지형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과 캐나다는 모두 나토 핵심 회원국으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군사·안보·경제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독일이 잠수함 수주를 위해 손잡은 노르웨이도 같은 나도 회원국이다.
캐나다 정부는 발표문에서 이번 사업의 목표로 캐나다의 주권 수호와 함께 "나토를 포함한 동맹국들과의 집단 안보"라고 명시하면서, 이 사업이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나토의 목표를 이행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독일은 이번 수주전에서 나토를 통한 오랜 협력 관계와 함께 TKMS의 잠수함 건조 실적을 내세워왔다. 나토 회원국 상당수가 독일제 잠수함을 운용한다는 점 등도 독일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 입장에선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면 나토 내 상호 운용성과 동맹국과의 관계를 우선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번 수주전을 위해 민관이 총력전을 펼쳤다. 그만큼 아쉬운 결과라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한화오션의 성과는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8월 △프랑스 나발그룹 △스페인 나반티아 △스웨덴 사브 등 유럽 주요 방산업체를 제치고 한화오션이 독일 TKMS와 함께 최종 결선인 숏리스트에 선정돼서다. 이는 한국 잠수함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독일은 한국에 잠수함 기술을 전수한 나라다. 이젠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갔기에 패배에도 값진 성과를 거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우리 잠수함의 뛰어난 성능, 해군의 성공적인 잠수함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수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NATO 동맹의 벽을 넘어서진 못했다"며 "'진인사(盡人事)'의 자세로 임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K-해양 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원 사격에 나섰던 HD현대중공업(329180)의 관계자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수주를 위해 대한민국이 원팀으로 뛰었던 경험은 우리 K-방산이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런 경험을 발전시켜 향후 K-방산 수출과 국익 증진이라는 성과를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록 이번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는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우리 저력을 국제 사회에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우리 잠수함은 세계적인 잠수함 강국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우수한 성능과 기술력을 입증해 왔다. 오늘의 경험은 우리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승부는 결국 기술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유럽을 비롯해 '방산 블록화' 흐름 속 대형 계약을 따내려면 기술력 확보와 성능 홍보를 넘어 정치·외교적 접근이 함께 가야 한다는 숙제가 남은 셈이다.
글로벌 방산 수요가 여전한 만큼, 정부와 업체들이 이번 도전에서 확인한 점을 어떻게 보완해 다음 기회를 잡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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