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오늘도 하루 종일 AI한테만 일 시키고 전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서울의 한 솔루션 회사에 다니고 있는 40대 직장인 A씨의 말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학업, 직장 업무 등에서 AI를 사용하지 않는 영역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AI 사용을 통해 업무 처리 과정의 방대한 자료와 내용을 쉽고 빠르게 정리해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됐지만, 정작 AI를 사용하는 사람은 더 깊은 통찰과 고민을 통한 사고 능력이 키워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AI에 생각을 맡기는 '사고의 외주화' 현상이 심화될 경우 비판적 사고 능력이 마비돼 건강한 사회적 공론장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교 교육 또한 직업으로 연결되던 전통적인 공식이 무너지고, 학벌과 학위 대신 실제 직무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 채용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신입사원 채용 조건에서 학력을 폐지한다고 밝힌 게 대표적 사례다.
“챗GPT 등장 후 청년 일자리 급감”…‘학력=직업’ 질서 붕괴 진단
18일 국가교육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교원, 시민들과 함께 'AI 시대 우리 교육의 방향'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이날 이광호 국교위 상임위원은 "앞으로 대학 학위가 아닌 실무 능력을 우선시하는 기업 환경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상임위원은 AI의 등장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챗GPT 도입 이후 30대 이상의 숙련된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29세 이하의 청년 일자리는 급속도로 감소했다"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AI가 빠르게 대체하면서 이제 학교 교육만으로 직업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언급했다.
AI 알고리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인지 능력 저하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훈련할 기회를 AI에 넘겨주는 '사고의 외주화'가 깊어질수록 자율성과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는 결국 건강한 공동체의 사회적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 발굴 ▲내신 평가 및 대학 입시의 재구성 ▲배움과 직업이 선순환하는 교육체제 구축 등 3대 핵심 화두를 정식 제안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AI 의존으로 발생하는 인지 능력 위축 현상을 극복하는 것 역시 공교육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국민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중장기 교육 정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수렴된 교육 주체들의 다양한 제언들은 국교위가 수립 중인 '국가교육발전계획(2028~2037년)'의 주요 기본 골격으로 활용된다. 국교위는 이어 오는 19일과 20일 이틀간 국민참여위원회 온라인 토의를 진행해 관련 논의를 구체화한 뒤 본위원회에 공식 보고할 계획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역시 “AI는 어디까지나 교육을 보조하는 유용한 도구일 뿐 교육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며 “인천 및 서울 등 교육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정책에 충실히 담아내고 중장기 발전 계획에도 구체적으로 투영하겠다”고 말했다.
젠슨황 “똑똑한 사람 넘쳐나, 실패 배울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최근 한국을 방문하며 큰 화제가 됐던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시각과도 궤를 같이한다. 국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젠슨 황 CEO는 자녀 교육관을 묻는 질문에 지식의 양보다 '회복탄력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제 세상에는 단순히 똑똑한 사람들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 실패를 안전하게 경험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지식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교육이 집중해야 할 진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짚어낸 대목이다.
결국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사용법'이 아닌 기술과 나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는 일이다. AI가 인간의 지식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 앞에서 불안에 갇히기보다는 인공지능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자산인 '자율적 판단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용기는 사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용기 없이도 그냥 잘하기 때문이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주도적으로 제어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용기 있게 도전해 보고 실패를 자양분 삼아 끊임없이 복기하고 성장하는 교육적 환경을 다지는 것만이 '사고의 외주화'라는 거대한 덫을 아늑하게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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