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술병 전면에 과음에 대한 경고문구나 그림을 부착하는 정부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실상 모르는 공무원의 탁상행정에 또 술값만 오르게 생겼다”, “해외직구, 면세주류 구매 부추기는 꼴”, “영세한 전통주 양조장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 등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달 8일,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및 고시’를 개정하고 ‘과음 경고 문구 및 경고 그림 표기 방법 표준안’을 마련해 공개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정 이래 30년 만에 처음으로 ‘경고그림’이 도입됐고, ‘음주운전 위험에 대한 경고’ 내용이 포함된 것이 핵심이다. 용량에 따라 글자 및 그림의 크기도 세분화했다.
주류업계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경고문구와 경고그림의 ‘표시 위치’다. 정부는 과음 경고문구의 표시위치를 주류용기의 ‘주상표’를 기준으로 해석한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술병의 전면 라벨 또는 그 아래에 경고문구와 경고그림을 표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과음 경고문구 표시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주류 제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련 경고문구를 표시하도록 돼 있었고, 대부분의 업체들은 술병 옆면이나 뒷면에 부착하는 보조라벨을 통해 이를 이행해 왔다.
실제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는 경고문구를 ‘상표의 하단’ 또는 ‘상표 밑의 잘 보이는 곳’에 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해당 규정은 ‘상표’라고만 돼 있을 뿐, 이를 술병 전면의 주상표로 한정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 역시 그동안 보조라벨에 경고문구를 표시한 제품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1996년 마련된 관련 집행지침에도 보조상표에 경고 문구를 표시할 수 있는 기준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준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복지부가 ‘상표’를 ‘주상표(메인 라벨)’로 해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법령 문구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표시 위치’에 대한 정부의 해석이 변하면서 경고문구와 그림을 사실상 술병 전면 하단에 부착하도록 요구하게 된 것이다. “법 개정 없이 행정해석만으로 표시 의무를 강화한 것 아니냐”는 업계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6개월의 유예기간이 지난 다음인 오는 11월 9일부터 출고되는 주류에는 △술병 전면 △주상표 하단에 경고 문자와 그림 표시가 의무화된다. 경고 그림은 ‘음주운전 금지’와 ‘임산부 음주 주의’ 표시다. 보건복지부가 이러한 경고 문구 부착을 강화하는 이유는 음주로 인한 건강상 위험을 알리고 음주운전 폐해를 줄이기 위함이다.
주류업계는 정부 정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소비 위축 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주류업계에서는 내수용 라벨과 수출용 라벨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제품 생산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주류 소매가(술값) 인상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면에 붉은색 빗금이 쳐진 경고그림이 소비자의 주류구매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소비와 판매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면세주류 구매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도 나온다. ‘선물용’ 또는 ‘수집’을 목적으로 술을 구매하는 경우, 술병 디자인을 해치거나 선물을 받는 상대방이 불편해 할 수 있는 경고문구 스티커가 술병 앞부분에 붙여진 내수(한국) 정식 발매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면세주류나 해외직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면세주류와 해외수출 제품에 대해서는 ‘술병 전면 경고문구·그림’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커지게 되면 국내 주류 소매점의 매출 하락으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법·시행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술병 전면 경고 문구·그림 적용을 강제함에 따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이 떠안게 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정부가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인 음주운전 등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음 경고문구·그림 스티커를 술병 전면에 부착할 게 아니라 사법당국에서 음주운전자에 대해 보다 강력한 처벌로 경각심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06년 후쿠오카의 어린이 사망 사고 이후 처벌이 대폭 강화되면서 음주운전 건수가 급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에서는 술병 전면에 경고문구나 그림을 부착하지 않고 보조 상표(서브 라벨)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보다 음주운전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 발생 건 수가 적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음주운전과 과음 문제를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대가 크다. 다만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술병 전면 경고문구 의무화에만 의존한다면, 정책은 실효성보다 보여주기식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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