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고개 숙임은 광주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오히려 '역사를 소비한 기업의 형식적 사과'라는 비판만 키웠다.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은 단순한 이벤트 실패를 넘어, 1980년 5월의 상처를 상업적 언어로 희화화했다는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광주에서는 이미 불매운동이 현실화되고 있고, 신세계그룹이 추진 중인 대형 개발사업에도 싸늘한 시선이 번지고 있다.
정 회장은 26일 서울 강남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많은 분께 깊은 아픔과 분노를 드렸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광주 지역사회 반응은 냉담했다.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누가 기획하고 승인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소비자 반응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인기 상위권을 유지하던 스타벅스 교환권은 논란 이후 순위가 급락했다.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 기프티콘 환불 인증과 함께 불매운동 게시물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5·18의 기억이 도시의 정체성으로 남아 있는 광주에서는 분위기가 더욱 격앙돼 있다.
광주시도 즉각 행동에 나섰다. 시는 지자체 행사에서 스타벅스 상품권 사용을 금지했고, 지역 금융권에서도 관련 이벤트 중단 움직임이 이어졌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번 기자회견을 두고 "사과·진상규명·책임이 모두 빠진 '3무 회견'"이라고 직격했다. 다만 시는 이미 협약된 사업은 행정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심은 행정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식고 있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추진 중인 어등산 관광단지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사업과 광주신세계의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총사업비만 수조 원대에 달하는 이들 사업은 결국 지역사회의 신뢰와 공감이 핵심인데, 이번 논란으로 신세계 브랜드 자체가 광주 시민 정서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지역 여론은 "오월의 기억을 건드린 기업이 광주의 미래 공간을 개발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의식으로 번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허가 이전에 시민 정서의 벽을 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유통업계 안팎에서도 "광주에서 5·18은 단순한 지역 이슈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상징인데, 이를 건드린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흘러나온다.
5·18 공법단체와 재단 역시 "알맹이 없는 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다"라며 정 회장의 책임 있는 결단과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탱크는 광주 시민에게 국가폭력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상징"이라며 "이를 마케팅 언어로 소비한 것은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움직임도 거세다. 강성 발언과 선명한 투쟁 이미지로 지지층 결집력이 강한 민형배 후보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기 광주시장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그는 "이번 '탱크데이' 사태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역사 앞에 오만한 기업 문화가 만든 필연적 참사"라고 규정했다.
민형배 후보는 특히 정용진 회장을 겨냥해 "'멸공' 놀이와 극우 코드 소비를 반복해 온 기업 문화가 결국 사고를 터뜨린 것"이라며 "광주를 모욕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누가 기획했고, 누가 승인했고, 누가 묵인했는지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며 신세계 측의 진상 공개와 법적 책임을 요구했다. 또 "말뿐인 사과는 필요 없다. 법적·사회적 책임까지 끝까지 묻겠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광주는 늘 상처를 기억하는 도시였고, 그 기억 위에 민주주의를 세운 도시였다. 그래서 광주에게 '탱크'는 이벤트 문구가 아니라 시민을 짓밟았던 '국가폭력의 쇳소리'다. 그런데도 신세계와 스타벅스는 그 비극의 언어를 가볍게 소비했고, 정용진 회장은 모든 분노가 폭발한 뒤에야 뒤늦은 사과문을 꺼내 들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피 묻은 기억을 상업적 감각으로 소비한 사건이며, 광주는 그 대가를 끝까지 묻겠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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