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서 올리고 걸리면 타파하자"…6년 짠 밀가루 담합에 6710억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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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경제]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을 장악한 제분 대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꼼수를 부리며 약 6년간 가격을 담합해온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정부의 물가안정 보조금을 챙기면서도 뒤로는 담합을 지속했으며, 담합 조사를 우려해 가격 인상 시기를 조율하는 등 범죄 행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7개 제분사 밀가루 담합 행위에 부과된 업체별 과징금 내역.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7개 제분사 밀가루 담합 행위에 부과된 업체별 과징금 내역.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제분·씨제이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밀가루 제조·판매 사업자 7곳의 가격 및 물량 담합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담합 사건 사상 최대 규모인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월 검찰의 고발요청에 따라 이들 법인과 담합을 주도한 임직원 14명을 검찰에 고발 조치한 바 있다.

이들 7개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농심·팔도·풀무원 등 대형 수요처 대상 담합 19회, 대리점 등 전 거래처 대상 담합 5회 등 총 24차례에 걸쳐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조작했다. 이들이 움직인 국내 B2B 밀가루 판매 시장은 전체 유통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으로, 7개사의 시장점유율은 87.7%에 달하는 철저한 과점 구조다. 담합에 가담하지 않은 SPC삼립과 삼양제분은 생산 물량 대부분을 계열사에만 공급하고 있어, 사실상 일반 기업과 대리점이 구매하는 밀가루 시장 전체가 이들의 손아귀에 있었던 셈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법 위반임을 명백히 인지하고 조사를 피하기 위한 '은폐 전략'까지 모의했다. 사조동아원의 2020년 1월 내부 회의록에 따르면, 임직원들은 "일괄적으로 다 올리면 100% 공정위에 갈 수밖에 없다", "위험하니 시기와 폭을 조정해야 한다", "담합했다는 얘기가 나올 때 어떻게 타파할지 전략을 잘 짜야 한다"며 치밀하게 꼼수를 부렸다. 실제로 이들은 대한제분이 2월 1일, CJ제일제당이 2월 7일, 사조동아원이 2월 15일부로 시차를 두고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방식을 취했다.

정부 물가 보조금 수령을 앞두고 사전에 가격 인상을 모의한 제분사들의 담합 정황.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정부 물가 보조금 수령을 앞두고 사전에 가격 인상을 모의한 제분사들의 담합 정황.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국제 원맥 시세 변동에 따른 기만적 행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재료인 원맥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를 악용해, 2020~2022년 원맥가 상승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즉각 반영해 가격을 올렸다. 반면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농심 등 대형 수요처가 원가 안정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자, 제분사들끼리 뭉쳐 최소한의 폭만 내리거나 소급 적용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폭리를 취했다. 심지어 2022년 하반기 정부가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총 471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가격안정 보조금을 지급하던 기간에도 보조금은 보조금대로 챙기며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

담합에 무임승차하는 하위사들을 향해 비속어를 쓰며 비난한 상위 제분사 임직원들의 통화 녹취록.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담합에 무임승차하는 하위사들을 향해 비속어를 쓰며 비난한 상위 제분사 임직원들의 통화 녹취록.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시장 지배력이 낮은 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하위 3개사는 대형사들의 담합에 철저히 무임승차하며 배를 불렸다. 이들은 메이저 3사가 농심 등과 가격 협상을 벌이면 먼저 연락해 인상 시기와 단가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하위사 임직원은 조사에서 "대형사가 먼저 가격을 올려주면 출혈경쟁 없이 적정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 고마운 부분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상위사 임직원들은 내부 통화에서 이들을 향해 "대가리 짱박아두고 공짜로 받아먹는 XX들은 진짜 열받는다"며 비속어를 섞어 비난하면서도 담합 동맹을 유지했다.

그 결과 담합 기간 중인 2022년 9월 밀가루(중력분) 판매가격은 담합 시작 직전인 2019년 12월 대비 회사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치솟았다. 이 덕분에 상·하위사를 막론하고 모든 제분사의 영업이익률이 공동행위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포인트경제)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포인트경제)

공정위는 이들에게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 외에도 담합 이전의 경쟁질서 수준으로 밀가루 가격을 다시 결정해 보고하도록 하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했다. 제분사들은 의결서 송부 후 3개월 이내에 독자적으로 가격을 재산정해야 하며,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공정위에 서면 보고해야 한다. 이외에도 담합 가담자에 대한 징계규정 신설 및 자체조사 보고 등 총 7개의 강력한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이들 7개사는 지난 2006년에도 담합으로 과징금 435억4700만원과 임원 고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밀가루 시장에서 강력한 기득권을 악용해 은밀하게 실행된 담합을 엄중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과거 제재를 받고도 재차 담합을 벌인 만큼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왜곡된 시장가격이 정상화되면 국민들의 가계 부담도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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