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 vs 현실 변화… 행정수도 특별법 정면승부

시사위크
22년 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던 행정수도 논의가 다시 국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세종시를 법적 행정수도로 규정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며 국회·대통령실 기능 이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22년 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던 행정수도 논의가 다시 국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세종시를 법적 행정수도로 규정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며 국회·대통령실 기능 이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던 행정수도 논의가 22년 만에 다시 국회 문턱에 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7일 행정수도 특별법안 5건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세종특별자치시를 법적 행정수도로 규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법안은 국회와 대통령 등 주요 헌법기관 및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 22년 사이 달라진 현실… “세종은 이미 행정수도”

행정수도 논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본격화됐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신행정수도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수도 이전은 단순한 행정기관 이전이 아니라 헌법 개정 사항이며 국민투표 없는 법률 제정만으로는 추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당시 결정은 정치권과 법조계에 큰 충격을 줬다. 헌법 어디에도 ‘서울이 수도’라는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 헌재는 조선시대 이후 이어진 역사성과 국민 인식 등을 근거로 ‘관습헌법’이란 논리를 내세우며 이를 인정했다. 수도 이전을 막기 위해 성문헌법(글자로 기록돼 있는 법/헌법전)이 아닌 불문헌법(글자로 기록돼 있지 않은 법/관습, 판례 등) 개념까지 동원한 셈이었다.(우리나라는 성문법 국가다.) 이후 ‘관습헌법’ 논리는 지금까지도 한국 헌정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헌재 결정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결국 당시 정부는 청와대와 국회 이전 계획을 사실상 접고 방향을 수정했다. 2005년 제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에 따라 중앙행정기관 일부만 이전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그렇게 출범한 도시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다. 이후 국무조정실을 포함한 다수 중앙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했다. 현재 세종에는 국무조정실을 비롯한 21개 중앙부처와 21개 소속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핵심 권력기관은 서울에 남았다. 대통령실과 국회는 여전히 서울에 있고, 중앙부처 상당수는 세종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 유지됐다. 이 때문에 공무원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카 국장, 길 과장”이라는 말이 돌았다. 국장은 서울 국회나 대통령실로 출장을 가고 과장은 세종과 서울을 오가느라 길 위에 있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실제 정책 협의와 대면 회의가 어려워지고 행정 비용이 커졌다는 지적은 세종시 출범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청회에서도 이 표현은 다시 등장했다.

이민원(왼쪽부터), 김주환, 임지봉, 지성우 교수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행정수도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있다. / 뉴시스
이민원(왼쪽부터), 김주환, 임지봉, 지성우 교수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행정수도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있다. / 뉴시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 이번 ‘행정수도 특별법’이다. 다만 이번 논의는 2004년과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당시에는 ‘새 수도 건설’이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이미 상당 부분 현실화된 행정 기능 이전을 법적으로 완성하는 단계라는 논리가 공청회 주된 논의였다.

이날 공청회에는 △이민원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김주환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세부 논리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현재 논의 중인 행정수도 특별법은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가장 많이 언급된 근거는 ‘현실 변화’였다.

헌재가 ‘신행정수도법’을 위헌 결정할 2004년에는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다수 중앙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했고,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도 추진되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교수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가 헌재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교수 4인 모두 ‘합헌 가능성’ 제시

이민원 교수는 “이미 세종시에 중앙정부가 들어가 있고 대통령 집무실도 만들고 국회의사당도 만든다고 한다”며 “국민들의 인식 역시 과거와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습법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세종시를 수도로 인정하는 국민적 개념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원회 국토법안소위원회에 행정수도 관련 특별법안 등 논의안건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원회 국토법안소위원회에 행정수도 관련 특별법안 등 논의안건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임지봉 교수도 2004년 헌재가 제시했던 ‘관습헌법’ 논리 자체가 지금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당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점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22년 동안 대한민국은 엄청난 사회 변화를 겪었다”며 “지금도 다수 국민이 대한민국 수도는 반드시 서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입법부는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법질서를 형성할 책임이 있다”며 이번 특별법 추진이 오히려 국회의 역할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김주환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애초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 논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수도의 위치는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 원리가 아니라 입법 사항에 가깝다”며 “수도 이전을 위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 사례도 언급됐다. 독일은 통일 이후 본(Bonn)에서 베를린으로 수도 기능을 이전했지만 헌법 개정 없이 법률과 정치적 합의를 통해 이전을 완료했다. 김 교수는 이를 근거로 “수도의 위치는 원칙적으로 입법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지성우 교수는 현실적인 전략론에 가까운 의견을 내놨다. 그는 현재 법안 명칭인 ‘행정수도 특별법’보다 차라리 ‘수도 이전 특별법’으로 정면 돌파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행복도시 특별법은 ‘행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일부 행정기관 이전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위헌 논리를 피해 갔지만, 지금은 오히려 수도 이전 자체를 전제로 헌재 판단 변화를 요구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반면 임지봉 교수는 ‘행정수도’라는 표현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행정 기능 이전을 다루는 법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측면에서 행정수도라는 표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공청회가 단순히 “이번에는 합헌이다”를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진술인으로 참석한 교수들은 또다시 헌법소원과 위헌심판이 제기될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처럼 전제했다. 그 위에서 어떻게 위헌 리스크를 줄일 것인지가를 전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복기왕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석이 비어있다. / 뉴시스
복기왕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석이 비어있다. / 뉴시스

특히 이민원 교수는 “위헌 위험이 큰 조항은 별도의 조항으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이전이나 국회 본원 이전처럼 헌법적 충돌 가능성이 큰 조항과 행정수도 기반 조성·행정체계 구축 조항을 분리해 일부 위헌 판단이 나오더라도 전체 법률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특별법 논의가 단순히 ‘합헌 자신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안 추진 측 역시 또다시 헌재 판단대에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특벌법안과 관련한 국회 검토보고서에서도 현재 법안들이 과거와 달리 단계적 이전과 행정 효율성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대통령실과 국회 이전은 여전히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법안 표현 역시 조금씩 다르다. 김태년 의원안과 엄태영·복기왕 의원안은 세종시를 ‘국가의 정치·행정 중심이 되는 도시’로 규정한다. 반면 김종민 의원안은 세종특별시를 ‘대한민국 행정수도’로 직접 규정하고 있다. 같은 행정수도 추진 법안이지만, 위헌 리스크 대응 방식에서는 차이가 나타나는 셈이다.

한편 이날 공청회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불참하면서 반쪽 공청회 논란도 불거졌다. 복기왕 국토교통위원장 직무대리는 “오늘 이 자리에 누가 함께 있었는지도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행정수도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과제인데 야당 의원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행정수도 특별법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세종 이전 문제가 아니다. 2004년 헌재가 제시했던 ‘서울=수도’라는 관습헌법 논리가 지금도 유효한지 그리고 22년 동안 변화한 현실과 국민 인식이 헌재 판단을 바꿀 정도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2년 전 헌재가 문제 삼았던 것은 ‘새 수도 건설’이었다. 반면 지금 정치권이 추진하는 것은 이미 상당 부분 형성된 행정수도 현실을 법적으로 완성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다만 그 과정에서 헌재가 기존 논리를 유지할지, 아니면 현실 변화와 국민 인식 변화를 반영해 판단을 수정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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