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현주소①] 고인의 ‘온라인 흔적’, 사후 처리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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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이 개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세상이 개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우리는 가족을 떠나보내면 유품을 정리한다. 옷가지나 가구를 정리하고 일부 물품은 추억으로 간직한다. 부동산이나 현금 등 상속 재산은 처리 기준에 따라 나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재, 고인(故人)이 남긴 유품이나 유산은 ‘온라인’에도 남아있다. 디지털 세상이 개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 온라인 계정·데이터·사이버 자산… 고인의 삶 담긴 ‘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고인이 생전에 온라인과 디지털 기기에 남긴 모든 전자적 흔적과 자산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계정, 이메일, 사진, 글, 클라우드 데이터, 구매한 콘텐츠 및 서비스, 가상자산, 사이버머니 등이 디지털 유산에 포함될 수 있다.

디지털 유산은 유족에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고인이 남긴 글이나 사진,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추억할만한 ‘유품’이 되기도 하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은 그 자체로 재산적 가치를 품는다.

디지털 자산 축적이 늘면서 디지털 유산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디지털 유산의 경우,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데다 법 제도가 부재하다 보니 혼란이 상당하다. 어디까지 디지털 유산 범주로 보고, 유가족에게 접근 및 상속 권한을 줄지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실정이다.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고인이 생전에 온라인과 디지털 기기에 남긴 모든 전자적 흔적과 자산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고인이 생전에 온라인과 디지털 기기에 남긴 모든 전자적 흔적과 자산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 게티이미지뱅크

민법상 상속법은 토지, 건물, 현금 등의 유형 자산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디지털 유산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 디지털 정보가 혼재돼 있어 기존 민법 틀에서 규정 짓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인격적 속성과 재산적 속성이 혼재된 경우도 많아 법적 해석도 분분하다.

특히 고인의 개인 계정 접근 및 데이터 자산 상속 문제는 논쟁적 이슈다.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유족의 권리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어서다. 현재 고인의 개인 계정 접근 및 데이터 자산 상속 처리는 입법 공백으로 인해, 각 플랫폼 기업의 자율적인 약관 및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주요 플랫폼 사업자 대부분은 유족의 계정정보 접근 및 이전, 데이터 상속을 제한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의 디지털유산 정책을 살펴보면 네이버는 회원의 아이디 및 비밀번호와 같은 계정 정보를 일신전속적 정보로 봐 유족이 요청하더라도 제공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 온라인 계정·데이터도 상속 대상?… 프라이버시 vs 유족 권리 충돌  

일신전속은 본인에게 귀속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뜻한다. 현행 민법 제1005조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하되 피상속인의 일신에 전속한 것은 그렇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네이버는 개인계정 정보를 제공할 시, 고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보고 제한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유족은 고인이 네이버 플랫폼에 남긴 메일 등 각종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 없다. 다만 네이버는 유족이 요청하면 가족확인 절차를 거친 뒤 고인의 회원탈퇴 처리를 지원한다. 또한 블로그 게시글 등 일부 공개된 자료의 백업은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카카오 역시 네이버와 유사한 정책을 유지 중이다. 회사가 공지한 디지털 유산 정책을 보면 카카오는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카카오 계정 정보를 비롯해 카카오톡 대화, 친구 내역 등의 비공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유족 요청 시 카카오톡은 ‘추모 프로필’로 전환이 가능하다. 미사용 모바일 교환권 환불과 공개된 게시물 백업 등도 지원한다. 

고인의 개인 계정 접근 및 데이터 자산 상속 문제는 논쟁적 이슈다.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유족의 권리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게이티이미지뱅크
고인의 개인 계정 접근 및 데이터 자산 상속 문제는 논쟁적 이슈다.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유족의 권리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게이티이미지뱅크

국내 플랫폼사 대부분은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우선해 계정 및 비공개 데이터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일각에선 유족의 알 권리 및 추모할 권리를 위해 일부 정보의 경우, 제한적 접근 허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플랫폼사들은 매우 보수적인 정책을 고수 중이다. 유족의 계정 접근 및 정보 공개를 허용할 시 고인이나 제3자 명예훼손 문제로 번질 수 있어 조십스럽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렇다면 해외 사업자는 어떨까. 구글과 애플 역시 원칙적으로는 유가족에게 개인 계정 및 데이터 제공을 제한한다. 다만 구글은 ‘비활성(휴면) 계정 관리자’ 기능을, 애플은 ‘디지털 유산 관리자’ 제도를 도입해 사용자가 생전에 지정한 인물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한다. 

◇ 네이버·카카오, 계정 접근 제한… 구글·애플, ‘사전 지정 처리’ 제도 운영 

구글은 휴면계정 관리자 기능을 통해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사람(최대 10명)이 계정 및 데이터를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 옵션(연락처, 드라이브, 메일, 위치 기록, 사진, 유튜브, 내 활동, 구매 및 예약 서비스)은 사전에 지정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아 계정이 휴면 상태가 되면 지정된 사람에게 데이터 접근 알람 메시지가 간다.

주요 플랫폼사와 디지털 기기 사업자는 디지털 정보 사후 처리에 대해 개별 정책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사는 유족이라도 계정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구글은 휴면 계정 관리자로 지정됐을 시엔 계정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주요 플랫폼사와 디지털 기기 사업자는 디지털 정보 사후 처리에 대해 개별 정책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사는 유족이라도 계정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구글은 휴면 계정 관리자로 지정됐을 시엔 계정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애플은 고인이 생전에 ‘유산 관리자’로 지정한 사람(최대 5명)에게 고인의 계정에 저장된 데이터(사진, 메시지, 메모 파일, 다운로드한 앱, 기기 백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유산 관리자가 고인에게 미리 공유받은 접근 키와 이용자의 사망진단서를 제출할 시 애플은 새로운 계정을 생성해준다. 해당 계정을 통해 고인의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며, 데이터 접근 기한은 유산 계정 요청이 승인된 시점으로부터 3년이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은 사전에 ‘기념 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다. 기념 계정 관리자는 고인의 프로필 사진 업데이트, 게시물 고정, 계정 삭제 요청, 공유한 게시물의 사본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은 사전 지정 기능이 없으며, 유가족이 요청할 경우 사망한 사용자의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영구 삭제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 유산 관련 입법화가 이뤄짐에 따라 주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은 대응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유산 관리자’ 지정 제도가 도입된 것도 사회적 논의와 입법이 진척된 결과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디지털 유산 정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모바일 운영체제(OS) ‘원 유아이(One UI) 7’ 업데이트를 통해 디지털 유산 관리자 지정 기능을 도입하는 등 일부 변화의 움직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미국 등 해외 주요 선진국은 디지털 자산의 승계 및 처리와 관련된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내는 입법 논의가 더딘 상황”이라며 “명확한 법적 기준이 부재하다보니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디지털 정보 사후 처리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 해석의 모호함, 운영 부담 등을 이유로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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