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31] 가치 관리 노동으로 上 룸(Loom)의 비동기 소통이 만든 자율성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리를 지키는 직원이 실제로 일다운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회의가 끝나면 바로 다음 회의가 잡히고, 회의 중에도 다음 보고 준비에 시달리다 보면 정작 집중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간은 없다. 오래 일한다는 것과 잘 일한다는 것이 같은 말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문제는 그 인식이 현장에서 바뀌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많은 조직에서 여전히 회의를 많이 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보고를 위한 보고', '확인을 위한 확인'이 반복되면서 실제로 고객 가치를 만들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터지면서 이 구조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미국 기준으로 전체 유급 근무 시간의 약 50%가 재택 근무로 전환됐다.

화상회의 도구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줌(Zoom)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화면 앞에서 하루 종일 회의를 이어가다 보니 팬데믹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회의에 시달린다는 호소가 쏟아졌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겼는데, 역설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회의에 빼앗기게 된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받은 기업이 룸(Loom)이다. 룸은 201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비동기 영상 메시지(asynchronous video messaging) 플랫폼이다.

비동기(非同期)란 '같은 시간에 함께 접속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발신자가 화면과 자신의 얼굴을 함께 녹화해서 링크로 공유하면, 수신자는 자신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재생하고 댓글로 답하는 구조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룸의 사용자는 전년 대비 900% 급증했다. 재택 근무로 전면화되면서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일이 되는' 방식을 찾는 수요가 폭발했다.

룸이 이 시장에서 줌과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 이유는 간단하다. 줌은 회의를 더 쉽게 만들었고, 룸은 회의 자체를 없애는 방향을 택했다.

사람들이 화상회의에 지치는 이유는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화상회의가 대면 미팅보다 더 많은 인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는 점을 수백 명의 피험자를 통해 검증했다. 화면 속 자기 얼굴을 계속 인식해야 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읽는 데 추가적인 집중력이 들어가며, 상대가 언제 말을 끝낼지 알기 어려워 대화 리듬 자체가 불자연스럽다.

하루에 회의를 다섯 개 이어서 하면 뇌의 스트레스 지수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각 회의 사이에 짧은 휴식을 넣으면 집중력이 회복됨을 같은 연구에서 확인했다.

채팅 등의 텍스트 메시지는 감정과 맥락이 빠지고, 화상회의는 참여자 전원의 시간을 동시에 소비한다.

룸의 영상 메시지가 그 중간을 채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뉘앙스, 화면 흐름이 그대로 담기면서도 수신자는 자신의 리듬에 따라 재생하고 1.5배속으로 돌리거나 필요한 구간만 다시 볼 수 있다. 소통의 질은 유지하면서 각자의 시간 선택권을 살린 설계다.

깊이 있는 사고와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경영학에서는 딥 워크(Deep Work)라고 부른다. 실시간 알림과 회의 요청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딥 워크는 작동하지 않는다. 룸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가 여기에 있다. 회의에 빼앗기지 않은 시간이 쌓여야 실제로 가치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비즈니스 결과도 뒤따랐다. 2021년 기준 활성 사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고, 2023년에는 2000만명, 연간 반복 매출(ARR)은 약 5000만 달러(690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협업 소프트웨어 기업 아틀라시안(Atlassian)이 룸을 인수하면서, 룸은 단독 서비스에서 지라(Jira)·컨플루언스(Confluence) 등 아틀라시안 생태계 전반에 통합되는 위치로 올라섰다. 아틀라시안이 발표한 2024년 집계에 따르면, 룸 영상으로 대체된 회의가 한 해에만 2억200만 건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서 직원 웰빙은 선언이 아니라 운영 구조로 설계돼야 의미가 생긴다. 불필요한 회의가 직원 몸과 정신에 미치는 누적된 비용은 측정하기 어렵지만, 이직률·번아웃·생산성 저하라는 형태로 반드시 드러난다.

룸의 성과는 직원 시간을 자원으로 대하는 구조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구두 보고와 대면 회의는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

룸 영상은 자동으로 아카이브(archive, 저장소)에 쌓이고,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결정을 했는지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조직의 지식이 특정 인물의 기억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 보존된다.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회의 문화를 생각해보자. 임원 일정에 맞춰 오전 보고, 오후 점검, 주간 회의가 반복된다. 팀원들은 회의 준비에 절반의 에너지를 쓰고, 회의실에서 절반을 소비한 뒤 남은 힘으로 실제 업무를 처리한다. 비동기 보고 체계를 도입하면 보고자는 자신이 가장 정리된 상태에서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의사결정자는 자신의 시간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노동 가치는 얼마나 오래 자리를 지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냈느냐로 측정돼야 한다. 직원의 시간을 자원으로 설계하는 조직과 소비로 방치하는 조직의 차이는, 결국 직원 웰빙이 보고서에만 존재하느냐 아니면 일하는 방식 자체에 내장돼 있느냐의 차이다. 룸의 성장 궤적은 그 전환이 이미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심준규의 ESG 모델링 31] 가치 관리 노동으로 上 룸(Loom)의 비동기 소통이 만든 자율성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