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금 이 글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잠시 돌아보라. 제목을 '훑고' 첫 문단을 빠르게 지나치며 눈에 띄는 단어만 건지고 있다면, 지금 전형적인 텍스터 방식으로 이 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습관이라서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이 매초 수억개의 텍스트를 쏟아내는 시대에 훑기는 충분히 합리적인 생존 전략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훑기가 무의식적으로 굳어지는 사이 글의 의미를 깊이 파고드는 능력이 조용히 줄어든다는 데 있다.
'훑기'와 '읽기'는 얼핏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행위다. 훑기는 텍스트의 표면에서 익숙한 패턴을 골라내는 일이고, 읽기는 그 표면을 뚫고 들어가 내 삶의 맥락과 연결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AI가 전자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지금, 인간에게 남은 고유한 능력은 바로 후자다.
이 우려는 최근 연구들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2025년 1월 국제학술지 『Societies』에 발표된 게를리히(Michael Gerlich)의 연구는 666명을 대상으로 AI 도구를 자주 쓸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낮아진다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핵심은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 즉 생각해야 할 것들을 AI에 점점 더 많이 맡기는 습관이 사고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같은 해인 2025년 6월,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미디어랩의 코스미나 등(Nataliya Kosmyna et al.)이 참여한 연구팀은 54명을 △챗GPT 활용 그룹 △검색엔진 그룹 △아무 도구도 쓰지 않는 그룹으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하고 EEG(뇌전도, Electroencephalography)로 뇌 활동을 측정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에세이를 쓴 뒤 자신이 쓴 글을 한 문장이라도 인용해 보라는 질문에 챗GPT 그룹의 83.3%가 답하지 못했다. 도구 없이 직접 쓴 그룹의 실패율 11.1%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연구팀은 이를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로 명명했다. 눈앞의 과제는 AI가 처리해 주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로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뇌의 능력이 조금씩 빚처럼 쌓인다는 뜻이다. AI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수록 스스로 읽고 쓰는 근육이 오히려 약해진다는 역설이다.
이 역설은 미디어 정보 이론의 언어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보 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은 1948년 논문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에서 모든 소통을 신호(Signal)와 잡음(Noise)의 경합으로 설명했다.
의미 있는 정보가 '신호'라면, 나머지는 전달을 방해하는 '잡음'이다. AI 시대의 잡음은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잡음이 단순한 무의미함이었다면, 지금의 잡음은 매끄럽고 그럴듯한(plausible) 형태로 온다. 스스로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AI의 편리함 자체가 가장 정교한 잡음이 될 수 있다. 텍스터는 그 그럴듯함에 눈을 빼앗기지만, 컨텍스터는 신호와 잡음을 가려내는 자신만의 필터를 가진다. 그 필터가 바로 맥락적 읽기의 힘이다.
그 필터는 세 겹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연결(Connector)'이다. 오늘 읽은 텍스트가 내가 살아온 경험, 혹은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어떤 접점을 갖는지 찾는 작업이다. 점처럼 흩어진 정보들 사이에 선을 긋는 힘이다.
둘째는 '해석(Interpreter)'이다. 누가, 왜 이것을 말하는지, 이 정보가 어떤 관점과 이해관계 위에서 나온 것인지를 따지는 작업이다. 같은 사실도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과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셋째는 '가치(Value)'다. 이 내용이 지금 나의 판단과 결정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끝까지 캐묻는 작업이다. 훑기가 텍스트의 표면을 수집한다면, 이 세 렌즈를 통한 읽기는 그 안에 숨은 맥락을 발굴한다.
AI 교육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AI가 정리해 준 자료를 보고 "이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묻는 빈도가 늘었다고 말한다. AI 답변 자체는 완성도가 높다. 문장도 매끄럽고 구성도 깔끔하다. 그런데 그것을 읽은 학생이 "그래서 이게 나한테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정보를 받아들였지만, 소화하지는 못한 것이다.
성인 학습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회의 전에 AI로 관련 자료를 잔뜩 요약해 왔는데, 정작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텍스트를 훑은 흔적은 있지만, 읽은 흔적은 없는 것이다. 많이 읽는다고 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잘 생각하려는 사람이 비로소 잘 읽게 된다는 것을, 그 장면들 속에서 거듭 확인한다.
이제 이 칼럼을 읽는 방식을 바꿔보라. 문장 하나를 끝까지 읽었을 때 "이것이 나의 일과 삶에 어떤 질문을 남기는가"를 묻는 습관을 들여라. AI가 훑기를 대신해 줄수록, 읽기는 오롯이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텍스터로 소비하는 순간, 이 글은 또 하나의 잡음이 된다. 컨텍스터로 읽는 순간, 이 글은 당신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 이 글에서 당신의 삶과 연결되는 문장은 무엇인가(Connector). 그 문장은 누가, 왜 하는 말인가(Interpreter). 그리고 그것은 지금 당신의 판단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Value).
최홍규 EBS 연구위원·AI교육팀장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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