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최근 미국 드라마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보다가,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곧장 원작 소설을 찾아 첫 페이지를 펼치니, 헌사에 ‘제임스 M. 케인을 기리며’라고 쓰여 있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케인 대표작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첫 문장이 적혀 있다.
“그들은 정오 무렵에 나를 건초 트럭 밖으로 내던졌다.”
이 느닷없는 문장과 매력적인 제목에 이끌려, 나는 원래 읽으려던 책을 덮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읽기 시작했다.
건초 트럭 밖으로 내던져진 주인공은 떠돌이 청년 프랭크 체임버스다. 무임승차한 트럭에서 쫓겨나 도로를 걷던 그는 우연히 허름한 주유소 겸 식당을 발견한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던 프랭크는 무전취식할 작정으로 식당에 들어서지만, 식당 주인 닉 파파다키스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마침 젊은 사람이 필요해. 가게에 말이야.”
졸지에 공짜 밥도 얻어먹고 취직까지 하게 된 프랭크 앞에 또 다른 행운이 나타난다. 닉의 아름다운 아내 코라다.
코라는 “개기름이 흐르고 구역질 나는” 남편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프랭크는 그런 코라에게 자연스레 접근한다. 두 사람의 위험한 탐닉은 급기야 닉을 제거하려는 살인 공모로 이어진다.
이 살인 계획은 한 번 실패하고, 두 번째에야 겨우 성공한다. 그러나 완전범죄란 없는 법. 끔찍한 살인 뒤 그들을 기다리는 건 법의 추적과 서로를 향한 의심, 뒤틀린 욕망뿐이다.
소설은 두 사람이 사랑 혹은 미래라는 이름으로 붙잡으려 한 것이 결국 그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짧고 빠르게, 그러나 집요하게 따라간다.
스티븐 킹은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와 여러 인터뷰에서 케인 작품을 거론하며, 특히 이 소설 첫 문장을 미국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도입부 중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이 문장, 그에 이어지는 첫 문단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은 정오 무렵에 나를 건초 트럭 밖으로 내던졌다. 전날 밤 저 아래 국경 부근에서 신나게 놀고 트럭에 올라탔는데, 덮개 밑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진 것이다. 티아 후아나에서 삼 주를 보낸 뒤라 잠이 정말로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엔진을 식히려고 도로변에 차를 댈 때도 나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내 발 한쪽이 비쭉 나온 것을 보고 그들이 나를 쫓아냈다. 나는 그들을 웃기려고 해봤지만 그저 냉담한 반응뿐이었고, 농담 밑천도 바닥났다. 그래도 그들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었다. 나는 먹을 것을 찾아 도로를 걸어 내려갔다.”(9쪽)
이 첫 문단만으로 독자는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한눈에 파악하고,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본능적인 호기심을 갖게 된다. 떠돌이 프랭크는 훔치고 얻어먹으며 살아간다. 길거리 인생답게 낙천적이고 뻔뻔스럽지만,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면도 엿보인다. 그는 돈을 원하지도 사회적 지위를 바라지도 않으며, 욕망은 말초적이다. 여자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사실 미래에 대한 대책은 없다.
한편 코라의 욕망은 훨씬 구체적이고 처절하다. 프랭크가 자신을 지옥 같은 현실에서 꺼내주길 바라면서도, 부랑자인 그에게서 얻을 거라곤 비루한 삶뿐임을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살인 모의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코라가 프랭크를 밀어내며 던진 말은 두 사람의 결정적 간극을 잘 보여준다.
“뭘 위해서 당신과 같이 가? 화물차에서 자려고? 내가 왜 같이 가야 하지? (…) 당신은 쓸모가 없어. 난 그걸 잘 알아.”(59쪽)
두 번째 살인에 성공한 뒤에도 프랭크가 다시 떠나자고 종용하자 코라는 묻는다.
“프랭크, 전에 뭔가 ‘되고’ 싶은 적 없었어? (…) 떠나버리고 싶은 건 그냥 당신이 부랑자이기 때문이야. 그게 다야. 난 부랑자가 아니라고. 난 뭔가 ‘되고’ 싶어.”(134-135쪽)
정착하여 번듯한 존재가 되고 싶은 코라의 갈망과, 길 위의 삶이 체질인 프랭크의 방랑벽은 결코 섞일 수 없다. 사랑과 범죄가 뒤엉킨 관계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서로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남녀의 팽팽한 심리 대결을 건조한 문체로 써 내려간 이 하드보일드 소설은 두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1981년 영화에서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이 프랭크와 코라를 어떻게 연기했을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다.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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