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명하면서 향후 통화정책 기조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금융 실무와 학문을 겸비한 ‘정통 거시경제학자’라는 평가 속에서도, 그의 정책 성향을 두고는 ‘실용적 매파’와 ‘케인지언(keynesian·케인스주의자)적 비둘기’ 사이 해석이 엇갈린다. 이는 신 후보자가 상황에 따라 정책 무게중심을 달리해온 이력과 맞물린다.
◇ “초기에 잡는다”…선제 대응형 매파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 후보자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있어 선제적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22년 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은 시작되면 점차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며 “연결고리를 초기에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지체하기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하며 전형적인 ‘선제 대응형 매파’ 이미지를 시장에 각인시켰다.
이 같은 인식은 고물가 국면에서 통화 긴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로,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고환율·고물가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에서는 신 후보자 취임 이후 조기 긴축 시그널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23일 보고서에서 "빠르면 신 후보자가 처음으로 주재하는 5월 28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금리 인상 시그널이 나올 수 있다"면서 “그가 차기 한은 총재 후보로 지명된 것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해 7월과 10월에 각각 0.25%포인트(p)씩 인상할 것이라는 당사의 전망에 더욱 힘을 싣게 한다”고 분석했다.
◇ “모든 충격에 금리 대응은 아냐”…조건부 매파
다만 그의 통화철학은 단순한 긴축 일변도와는 거리가 있다. 신 후보자는 BIS 보고서를 통해 “일시적 공급 충격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할 전형적 사례”라고 밝히며, 충격의 성격에 따른 차별적 대응을 강조했다.
이는 금리라는 단일 수단에 의존하기보다 물가 상승의 원인을 구분하는 접근으로,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조건부 매파’ 또는 ‘실용적 매파’로 평가한다.
한국 경제는 고환율, 물가 상방 압력, 부동산 시장 불안, 내수 회복 지연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준(準)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 경우 통화정책은 선택의 폭이 크게 제한된다. 금리를 인상할 때 소비 위축을 통해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고, 반대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환율 상승과 물가 자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신 후보자가 취임하더라도 단기간 내 정책 기조가 급격히 변화하기보다는, 현 이창용 총재와 유사한 신중한 중립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신 후보자는 지명받은 이후 “물가, 성장, 그리고 금융안정을 감안한 균형 있는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 고민하겠다”면서 “정책이나 조직 운영 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생각은 앞으로 예정된 국회 청문절차를 통해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대외 불안은 이미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510원을 돌파하면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안전 자산 선호에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 케인즈를 롤모델로…매 가면을 쓴 비둘기?
그의 근본적인 경제관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면이 드러난다. 신 후보자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를 자신의 롤모델로 꼽으며 “케인즈 학파 주장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케인즈 개인의 사회 공헌은 모든 경제학자의 모범”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나침반을 찾는 요즘 경제학자들에게는 새삼스럽게 의미가 큰 인물”이라 부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신 후보자는 평시에는 물가 안정을 중시하되, 위기 상황에서는 완화정책을 용인하는 ‘상황 대응형 통화철학’을 가진 인물로 해석된다.
한편 케인즈는 경기 침체 시 재정 확대와 통화 완화를 강조한 확장적 정책의 대표적 이론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재닛 옐런 전 의장 등 주요 케인지언들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통해 위기 대응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이다.
특히 버냉키 의장은 닷컴 버블로 시작된 2007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의 대규모 경기 침체를 막대한 달러를 풀어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그는 “헬리콥터에서 달러 뿌려서라도 경기 부양하겠다”면서 2007년 9월 5.25%에 달했던 기준금리를 1년 후 0.25%(상단기준)까지 낮췄고 후임자인 옐런 의장은 0%대 금리를 2016년말까지 지속했다.
국내에서도 조순,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이 케인지언적 정책 성향으로 분류되며, 이주열 전 총재는 ‘재정정책의 시대’를 주장한 장본인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사상 최저 기준금리인 0.5%까지 낮추며 0% 금리 시대를 열었다.
◇ 결국 첫 선택…긴축 vs 완화 갈림길
신현송 후보자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중시하는 매파적 발언을 이어왔지만, 이론적 기반과 위기 대응 인식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매파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는 물가 안정과 경기 대응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전략적 중도형 중앙은행가’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된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그의 첫 정책 신호에 쏠릴 수밖에 없다. 긴축 기조를 이어갈지, 아니면 완화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둘지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방 역시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긴축이든 완화든 신 후보자의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 인식은 분명하다. 그는 “한은 총재 후보자로 지명된 것은 개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만, 그에 앞서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통화정책을 이끌게 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대목에서 이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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