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댄스 오피스] 완벽을 내려놓은 자리, 비로소 ‘나’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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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디스테이션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디스테이션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며 살아온 구청 과장 국희(염혜란 분)는 승진과 딸의 취업 성공을 앞두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냉철한 판단으로 조직을 장악해 온 그는 스스로 설계한 인생의 로드맵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도둑맞은 승진과 예기치 못한 사고, “다신 보지 말자”는 딸의 선언이 겹치며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인생의 스텝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망가진 질서를 복구하기 위해 ‘리셋 프로젝트’에 나선 국희는 우연히 플라멩코 연습실에 발을 들인다. 정돈된 오피스와 달리 거친 숨소리와 강렬한 리듬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는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를 처음 경험한다. 완벽한 동작을 맞추려 애쓰지만, 번번이 박자를 놓치는 과정 속에서 국희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국희는 인생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는 완벽한 하루를 살아온 공무원 국희가 인생의 균열 앞에서 플라멩코를 통해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단편 ‘무서워서 크게 부르는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은 조현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배우 염혜란·최성은·아린 등이 호흡을 맞췄다.

영화는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린 자아가 균열 속에서 어떻게 다른 리듬을 발견하는지를 따라간다. 웃음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서사를 통해 성과와 평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정답만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엇박자’가 갖는 의미를 되묻는다.

그 질문은 인물들의 얼굴 위에서 구체화된다. 완벽을 강요하는 사람처럼 보이던 국희도 사실은 누구보다 불안한 사람이다. 빈틈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는 타인을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버팀목에 가깝다. 그 완벽은 오만이 아니라 생존 방식으로 읽힌다. 

연경 또한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눈에는 연약하고 허당 같으며 실수투성이로 보이지만, 그 실수를 줄이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에 임하는 인물이다. 서툴러 보일지라도 책임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태도는 또 다른 형태의 진심이다. 딸 해리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의 사랑을 밀어내고 집을 나간 선택이 철없어 보이지만, 그 또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서툴고 실수투성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 영화가 말하는 ‘엇박자’는 실패가 아니라 숨 쉬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의 분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불안과 싸우며 하루를 견디는 스크린 밖 ‘우리’의 모습에 닿는다. 그 ‘엇박자’는 결국 우리를 향한 작은 응원인 셈이다. 

호연을 펼친 배우들. 염혜란(위 왼쪽)과 최성은(오른쪽 아래), 아린(왼쪽 아래). / 디스테이션
호연을 펼친 배우들. 염혜란(위 왼쪽)과 최성은(오른쪽 아래), 아린(왼쪽 아래). / 디스테이션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여성 리더의 현실을 다루는 태도다. 유리천장이나 은근한 차별의 시선을 전면에 내세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일상 속 작은 순간들, 스쳐 지나가는 말과 태도 속에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고충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과장하지 않기에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쉽게 공감하게 된다.

플라멩코를 소재로 한 점 역시 영화의 매력을 풍성하게 만든다. 차갑고 정돈된 오피스와 대비되는 강렬한 리듬과 몸의 움직임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물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축제의 단체 군무 장면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리듬 속에서 국희가 온전히 플라멩코를 즐기며 자신과 마주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가장 솔직한 얼굴로 무대 위에 선 그를 딸이 바라보는 장면은 그동안 어긋나 있던 모녀의 진심이 비로소 닿는 지점을 만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염혜란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국희를 단순한 완벽주의자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의 불안과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일에서 흔들리지 않는 표정과 딸 앞에서 무너지는 눈빛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플라멩코 장면에서는 동작의 완성도보다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며 국희가 스스로 내려놓는 과정을 몸으로 증명해낸다.

최성은은 연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또 다른 온도를 더한다. 연약해 보이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진심을 담백하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아린도 제 몫을 해낸다. 차갑게 등을 돌리는 딸의 얼굴 뒤에 자리한 불안과 고민,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조현진 감독은 “모두가 정답만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때로는 그 흐름을 깨는 엇박자가 우리를 숨 쉬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매드 댄스 오피스’는 완벽을 향한 질주 대신 어긋난 리듬 속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는 시간을 선물하는 작품다. 러닝타임 106분, 오는 3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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