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지영 기자 제분업체 6곳이 밀가루 가격 담합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의 추정 담합 규모는 5조원대다. 이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가격 재결정 명령 등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밝혀 가격 인하 시기와 폭에 관심이 모인다.
◇ ‘빵플레이션’ 이유 있었나… 제분업체, 치밀한 담합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2일 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법인 6곳과 이들 업체 대표이사 등 임직원 14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밀가루 시장 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은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 제도)를 활용해 기소를 면제받았다.
이들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6년간 밀가루 가격의 변동 폭과 시기를 사전에 합의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혐의를 받는다. 담합 액수는 5조9,913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동안 밀가루 가격은 2021년 1월 1㎏당 649원에서 2023년 1월 924원으로 최고 42.4% 인상됐으며, 그 후로도 담합 이전 대비 22.7%가량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수사 결과 국내 밀가루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는 주요 3사(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가 인상 폭을 논의해 결정한 후 다른 회사들에 전달해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초 가격 인상을 제시하는 리스크를 담당할 제분업체를 ‘사다리타기’로 정한 정황도 확인했다.
또 검찰이 확보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는 2,000원 올리겠다고 통보하고 마지막에 500원 내리고 다른 곳은 1,800원 올렸다가 300원 조정하는 식”으로 논의해 담합구조를 은폐했다. 제분업체 관계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를 ‘공선생’이라고 부르며 “공선생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연락을 자제하자” “공정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등 대화를 나눈 사실도 드러났다.
◇ 공정위, ‘과징금 하한’ 도입, 솜방망이 처벌 끝나나
국내 제분업체들은 앞서 2006년에도 6년 가까이 밀가루 값을 40%가량 인상하다 적발된 바 있다. 당시 소비자 피해는 4,000억으로 추산된다. 공정위는 당시 8개 제분업체에 총 434억1,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가격 재결정과 위법사실 공표를 명령했다.
제분시장 1위 사업자 CJ제일제당은 당시 리니언시를 통해 66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전액면제 받았다. 또한 2순위로 자진신고한 삼양사는 32억300만원 가운데 50%인 16억150만원을 감액받았다. 두 업체는 대표이사 형사 기소도 피했다.
이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담합에 대한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상한’만 있던 과징금 제도에 ‘하한’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과징금 하한이 없어 상한을 높이더라도 실제 과징금 부과 수준은 낮아질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담합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0%지만, 이를 30%로 올리고, 담합의 중대성이 ‘중간’ 이상인 경우, 과징금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출 수 없도록 하한을 설정하는 구상이다. 이는 2006년 밀가루 담합 사태처럼 시장 1위 사업자가 리니언시를 활용해 과징금과 형사책임을 사실상 면하고,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구조를 막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 공정위, 20년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
주 위원장은 그동안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서 ‘가격 재결정 명령’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왔다며, “적극적으로 가격 재결정 명령을 시정명령으로써 활용할 수 있도록 시정조치 운영지침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격 재결정 명령은 기업이 담합으로 정한 재화·서비스 가격을 강제로 조정하는 조치로, 2006년 밀가루 담합 사태 이후 최근 20년간 활용된 사례가 전무하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사태 당시에도 밀가루 가격 인하는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제분업체들은 공정위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 진행 중에 국제 곡물가 급등에 따른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맞물려 밀가루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대한제분이 지난 1일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4.6% 인하한 가운데, 이외의 업체들은 아직 가격 인하에 나서지 않고 있다. 20년 만에 공정위의 ‘가격 재결정 명령’이 밀가루 가격 인하를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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