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19] 순환경제를 사업화한 기업 上 애플의 생애주기 관리형 순환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애플워치를 2년 넘게 쓰다 보면 배터리가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시점이 온다. AS 센터에 가서 배터리만 교체해달라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의외다. 배터리 단독 교체 서비스는 없고, 리퍼비시 제품으로 전체 교체만 가능하다는 것. 새 제품 가격의 약 1/3 수준이라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멀쩡한 케이스와 디스플레이를 버리고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 의아했다.

왜 부품 하나만 교체해 주지 않고 제품 전체를 회수할까. 반납한 워치는 어디로 가고, 받은 리퍼비시 제품은 또 어디서 온 걸까. 이 질문의 답은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 설계에 있다. 대부분 제조사는 제품을 팔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매 후를 더 중요하게 설계한 경우도 있다.

지속가능성은 착한 기업의 윤리가 아니라 반복 수익을 만드는 구조 설계의 문제다.

특히 전자기기 산업은 희귀금속 의존도가 높다. 코발트, 리튬, 희토류 같은 소재는 공급망이 불안정하고, 분쟁 광물 문제 등 가격 변동성도 크다. 이런 산업에서 회수-재가공-재판매-재회수가 반복되는 구조를 만들면 순환경제는 캠페인이 아니라 제품 생명주기 전체를 수익화하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중고 시장을 제3자에게 맡기지 않고 제품 전체 생명주기를 직접 관리하면 공급망 리스크를 제거하고 2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애플 트레이드 인’ 프로그램은 구형 제품을 반납하면 신제품 구매 시 할인을 받거나 기프트 카드를 받는 구조다. 제품 흐름이 소비자에게서 제조사로 역행해서 역물류(Reverse Logistics)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중고 거래는 소비자가 중고나라나 당근 같은 플랫폼에 올리면 제3자가 구매하지만, 트레이드 인은 제조사가 직접 회수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가능하고, 공식 파트너가 직접 회수하는 방식으로 중고 시장을 제조사가 직접 장악한다. 회수한 제품은 폐기물이 아니라 재고 자산이 되는데, 리퍼비시 원료를 확보하고 중고 시장 가격을 통제하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저가 중고품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지만, 공식 회수 루트로 제품을 거둬들이면 가격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고 할인으로 업그레이드 주기를 단축시키는 효과도 있다.

회수 제품은 공식 재제조(Remanufacturing) 시설로 보내진다. 재제조는 단순 수리가 아니라 공장 수준의 재생산 과정으로, 검수·세척·부품 교체를 거쳐 공식 리퍼비시(Certified Refurbished) 인증을 받는다.

리퍼비시 인증 제품 가격은 신제품 대비 15~20% 할인이고, 1년 AS와 새 배터리·외장을 제공하면서 중고가 아니라 공식 제품 라인업 일부로 판매한다. 중고는 품질을 의심받지만 공식 인증을 받으면 신뢰를 얻는다. 제조 원가 구조를 보면 신제품은 부품 조달부터 조립, 물류까지 100% 원가가 들지만 공식 리퍼비시는 회수 제품에 일부 부품만 교체하므로 원가가 30~40% 수준이다.

이를 도입하면 프리미엄 시장에는 신제품을, 가성비 시장에는 공식 리퍼비시를 팔면서 동일 제품으로 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 경쟁사 저가 제품과 싸우지 않고 자기 제품으로 시장을 방어하는 전략이다. 제품 한 대로 두 번 판매하는 셈이다. 처음엔 신제품으로, 회수 후엔 공식 리퍼비시로 팔면서 제품 수명을 연장하고 제조사 수익을 극대화한다.

수명이 다한 제품은 분해 로봇 시스템으로 보낸다. 이 시스템에서 데이지(Daisy)는 아이폰 분해 전용 로봇, 데이브(Dave)는 아이패드 전용 로봇으로 각각 특화된 분해 프로세스를 갖췄다. 두 로봇은 29가지 소재를 분리하는데 코발트, 리튬, 금, 은, 희토류, 텅스텐 등을 채집한다.

일반 재활용 업체에 위탁하면 회수율이 30~40%지만, 이 로봇으로 직접 분해하면 95% 이상 회수하고 순도도 높다. 이렇게 회수한 소재는 다시 신제품 제조에 투입되는데, 애플은 특정 제품군에서 금을 100% 재활용 소재로 조달했고 알루미늄과 희토류 등 핵심 소재의 재활용 비율도 지속 확대 중이다.

UN(세계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폐기물은 2030년 연간 7,400만 톤에 달할 전망인데, 폐기물을 자원으로 전환하는 이런 구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폐쇄 순환 공급망(Closed-Loop Supply Chain)이라 부르는데, 폐기물을 자원 매장지로 보는 개념이다.

도시 광산(Urban Mining)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린다. 희귀금속 가격 변동성이 큰데 리튬 가격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5배 상승했다가 급락했지만, 재활용 비율을 높이면 원가 예측 가능성이 증가하고 분쟁 광물이나 아동노동 같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도 회피할 수 있다. 특정 국가나 광산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 공급 안정성도 확보된다.

세 가지 패턴이 연결되면서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트레이드 인으로 회수하고, 공식 리퍼비시로 재판매해서 2차 수익을 얻고, 소재 회수(Material Recovery)로 추출한 원료를 신제품에 재투입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일반 재활용은 폐기물 처리 차원이지만 여기서는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제품 흐름이 일방향이 아니라 순환형이고, 폐기물이 아니라 자산으로 취급되면서 제품 판매가 관계의 종료가 아니라 생애주기 관리의 시작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AS 센터에서 공식 리퍼비시 교체를 받으면 가격이 합리적이고, 신제품 살 때 트레이드 인 할인을 받으면 부담이 줄며, 공식 리퍼비시를 구매하면 저렴하게 좋은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는 의식 없이도 참여하게 되는데, 더 싸고 편해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도덕이 아니라 경제성으로 설계됐고, 소비자는 합리적 선택을 하면서 제조사는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배터리 재활용 소재 비율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북미산 원료 사용 비율을 요구한다. 희귀금속 확보 경쟁은 심화되고 있고, 순환하지 않으면 원가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수 구조 설계로 AS가 비용이 아니라 회수 채널이 되고, 공식 리퍼비시도 중고 거래가 아니라 공식 상품 라인이 되며, 제품 판매는 관계의 시작이 된다.

제품을 한 번 팔고 끝내는 기업과 제품 생애 전체를 관리하며 반복적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의 차이는 크다. 순환경제는 착한 기업의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의 문제다. 판매 이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지속가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가른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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