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헌정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또 한 번 등장했다. 이번에는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법정도 아닌, 정치적 수사(修辭)의 무대 위에서였다. 남편은 스스로를 "호수 위에 비친 달 그림자"라 표현했고, 아내는 남편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빛"에 비유했다. 시 같은 표현이지만, 이는 엄연히 정치 현장에서 국민 앞에 공개된 메시지였다.
정치적 수사에는 언제나 은유와 상징이 깃든다. 그러나 부부의 시선으로 서로를 시와 노래로 표현하는 장면은 헌정사에 거의 없는 장면이다. 날 선 언어가 오가는 정치판에서, 문학적 비유와 애정 어린 대화가 흘러나온 순간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언뜻 보기엔 정치가 차갑고 메마른 언어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편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무대에 과도하게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는 결국 냉정한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는 "정치가 메마른 토론의 장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냉소도 뒤따른다. "국민 앞에서 달빛 타령할 시간에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는 비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호수 위 달 그림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전기세 고지서를 대신 내주진 않는다. 국민 입장에서 은유보다 생활비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은유가 곧 '쇼(show)'로 읽히는 건 불가피하다.
정치가 시처럼 감성을 전하는 건 의미가 있다. 피로와 냉소에 젖은 국민에게 잠시라도 숨을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정치의 본령은 결국 '시(詩)'가 아니라 '실(實)'이다. 실제 정책과 성과가 국민의 삶을 비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달빛이 아름답다 한들 그것은 결국 물결에 흩어진 그림자일 뿐이다.
정치는 늘 결과로 평가받는다. 이번 장면이 서정시처럼 기록될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 남을 때는 이렇게 정리될지도 모른다. "헌정사상 최초로 달빛은 비췄지만, 국민의 삶은 여전히 어두웠다." 국민은 화려한 은유보다 확실한 정책을 원한다. 호수 위 달 그림자가 아름다워도, 그 물에 빠진 국민을 건져 올리진 못한다.
기자의 눈에는 이번 장면이 한 편의 서정시 같았지만, 동시에 냉엄한 현실 정치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을 남긴다. "시(詩) 같은 말이 아니라, 실제 정책의 무게가 국민을 비출 수 있는가?" 이번 장면, 기록할 만하다. 그러나 역사책에는 이렇게 적히지 않을까. "헌정사상 최초로 달빛은 비췄지만, 정작 국민 삶은 어두웠다."
혹자는 말한다. "정치가 메말랐는데 이런 감성은 신선하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신선한 건 잠시, 곧바로 의문이 뒤따른다. "이제 달빛 다 했으니, 다음은 뭐지? 별빛? 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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