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주바다, 그곳에 담긴 기후변화 연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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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과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중심에 있다. 취재팀은 KIOST 제주연구소 연구팀과 동행, 제주 바다의 기후변화 및 해양 생태계 연구현장을 직접 체험해봤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전 세계 과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중심에 있다. 취재팀은 KIOST 제주연구소 연구팀과 동행, 제주 바다의 기후변화 및 해양 생태계 연구현장을 직접 체험해봤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시사위크|제주=박설민·김두완·권신구 기자  최근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의 기후는 변덕이 심해 우리의 예상을 번번이 빗나간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 역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아열대 기후의 상징인 제주도에 위치한 ‘KIOST 제주연구소’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현장에서 연구하는 장소다.

20일 오전, 뜨거운 햇빛 아래 연구현장 조사를 준비 중인 양현성 KIOST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선임연구원팀./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20일 오전, 뜨거운 햇빛 아래 연구현장 조사를 준비 중인 양현성 KIOST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선임연구원팀./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 기후변화의 한복판, 바다로 뛰어드는 과학자들

20일 오전 6시 30분, 취재팀이 도착한 제주도 정주항은 새벽 날씨가 무색한 더위가 느껴졌다. 34도가 넘는 온도와 뜨거운 햇빛에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기잡이배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스쿠버 다이빙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KIOST 제주연구소의 연구원들이었다.

이날 양현성 KIOST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을 필두로 한 연구팀은 2개의 주요 포인트를 다이빙할 예정이었다. 홍조류, 소라, 조개류 등 해양생물들을 채집,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를 연구하기 위함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중점을 둔 종은 외래 유입으로 추정되는 ‘군체멍게(Ecteinascidia turbinata)’의 채집이었다.

이번 연구에서 중점을 둔 종은 외래 유입으로 추정되는 ‘군체멍게(Ecteinascidia turbinata)’의 채집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잠수에 나서는 연구팀의 모습./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이번 연구에서 중점을 둔 종은 외래 유입으로 추정되는 ‘군체멍게(Ecteinascidia turbinata)’의 채집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잠수에 나서는 연구팀의 모습./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취재팀은 연구진을 따라 함덕에서 어업 및 낚시배 운영을 하는 강주열 선장의 배를 타고 바다로 이동했다. 흔들리는 어선은 멀미를 유발했다. 동시에 내리쬐는 햇빛에 연구현장에 도착하기도 전, 체력이 바닥이 났다. 하지만 공기도 통하지 않는 잠수복을 입은 연구진들은 익숙한 표정이었다.

약 20분 정도 배를 타고 함덕 해안 연안에 도착했다. 잠수 준비를 마친 4명의 연구원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잠수 시간은 약 30분, 최대 40m 정도의 깊이까지 잠수해 해양생물 채집을 진행했다. 해저 지형 탐지기가 고장 난 상황이라 이번 다이빙은 난이도가 더욱 높았다. 때문에 연구원들의 걱정도 컸다.

30분의 시간이 지나고 물 위로 주황색 부표가 올라왔다. 연구원들의 현장 조사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이 튜브가 올라오면 5분 내로 연구원들이 물 밖으로 나온다. 이에 강주열 선장을 배를 몰고 부표 근처로 이동했다. 

해양 생물 조사를 위해 잠수하는 KIOST 연구팀./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연구팀이 채집해온 홍조류의 모습. 아쉽게도 이날 목표였던 군체멍게류 채집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잠시 후 연구원들은 그물에 여러 종류의 해양생물을 담아 배 위로 올라왔다. 채집한 생물은 키조개류부터 담홍말미잘, 멍게류, 소라, 홍조류 등 다양했다. KIOST 연구원들은 직접 채집하진 못했지만 바닷속에는 라이언 피쉬, 성게 등 여러 종류의 연구 대상 생물들이 서식한다고 말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원래 목표였던 군체멍게류 채집은 성공하지 못했다.

양현성 선임연구원은 “군체멍게 채집을 최우선 목표로 잠수했지만 예상했던 바위 지역이 아닌 모래 사장으로 잠수하게 됐다”며 “지난해 한 번 발견한 이후 추적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기후변화와 생물 자원 연구 모두에 매우 귀중한 표본이기에 지속적 관찰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연구소로 옮겨져 수조에 담긴 홍조류의 모습. KIOST 연구팀은 이를 분석해 새로운 자원 개발 및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생물의 적응 변화를 연구하게 된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 변화한 제주 바다, 그 중심에 있는 제주연구소

연구팀은 채집한 생물들을 가지고 KIOST 제주연구소 본원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KIOST의 지역 거점 연구소 중 한 곳이다. 제주의 생물학적 중요성, 기후·해양환경 연구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 설립, 올해 개소 10주년을 맞이했다.

지역 거점 연구소답게 제주연구소는 현재 제주 바다의 특수한 해양환경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대응,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지속 가능한 어업 및 해양자원 관리 등 연구를 수행 중이다. 특히 제주 해역의 해양환경과 생태계 변화를 종합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있다.

이번 군체멍게 채집 연구도 제주연구소의 운영 목표와 맥이 닿아있다. 군체멍게는 카리브해 각지에서 망그로브 등에 서식하는 아열대성 해양생물이다. 제주바다에선 그간 거의 발견된 적이 없다. 때문에 최근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제주지역의 핵심 생물 자원이 될 수 있다.

양현성 선임연구원은 “소라는 따뜻한 수온을 선호하는데 동해 지역의 수온이 상승하자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서식지 이동이 아닌,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학적 결과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양현성 선임연구원은 “소라는 따뜻한 수온을 선호하는데 동해 지역의 수온이 상승하자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서식지 이동이 아닌,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학적 결과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양현성 선임연구원은 “최근 제주 해역에서는 열대·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던 어종이나 무척추동물이 관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열대성 해파리, 따뜻한 바다에서 서식하는 산호류가 제주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해수온 상승과 해류 변화에 따른 외래종 유입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연구소는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해양생태계 변화 연구를 선도, 국제적 주목을 받은 여러 연구들을 발표하고 있다. 25일에는 기후변화로 국내 연안에서 모자반류의 생육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했다. 열대·아열대연구센터 최선경, 고성길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다. 

KIOST 제주연구소 아열대 연구동에서 재배되고 있는 파래의 모습./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KIOST 제주연구소 아열대 연구동에서 재배되고 있는 파래의 모습./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연구팀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에 제시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 괭생이모자반, 큰열매모자반, 쌍발이모자반, 구슬모자반 등 총 4종의 미래 분포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고탄소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국내 연안 모자반 분포와 종다양성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모자반류가 추운 곳으로 생육지를 옮기면서 북상하기 때문이다.

또한 취재진과 동행한 양현성 선임연구원팀은 지난 6월 23일 국내 연안에 서식하는 소라의 생리·생태·유전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제주와 동해안에 서식하는 소라가 동일한 유전적 특성을 지닌 종임을 확인했다. 해양으로 이동 시 약 400km 떨어진 곳까지 소라가 서식 범위를 확장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으로 서식지를 옮긴 것이다.

양현성 선임연구은 “소라는 따뜻한 수온을 선호하는데 동해 지역의 수온이 상승하자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서식지 이동이 아닌,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학적 결과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IOST 제주연구소 미세조류 배양장. 이곳에서는 스피룰리나를 대량으로 배양한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KIOST 제주연구소 미세조류 배양장. 이곳에서는 스피룰리나를 대량으로 배양한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 기후변화 속, 과학자들은 ‘기회’를 찾는다

제주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달라진 해양생태계의 생물들을 ‘자원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는 생물들처럼 기후변화를 오히려 새로운 자원 발굴의 기회로 삼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이날 시도했던 군체멍게 채집도 신규 생물 자원 연구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양현성 선임연구원의 안내를 따라 제주연구소의 미세조류 배양장으로 이동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빛때문에 바깥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곳에선 마치 욕실 욕조처럼 보이는 거대한 수조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짙은 초록색의 미세조류들이 배양됐다.

배양되는 ‘스피룰리나(Spirulina)’의 모습.  32~42도의 고수온과 높은 산성의 바다 환경에서도 쉽게 번식이 가능하다. 즉, 기후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 현재 해양환경에서 양식이 쉬운 생물 자원이다. 또한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저감에도 효과적이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배양되는 ‘스피룰리나(Spirulina)’의 모습.  32~42도의 고수온과 높은 산성의 바다 환경에서도 쉽게 번식이 가능하다. 즉, 기후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 현재 해양환경에서 양식이 쉬운 생물 자원이다. 또한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저감에도 효과적이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이 미세조류들의 이름은 ‘스피룰리나(Spirulina)’다.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의 일종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생명체 중 하나다. 32~42도의 고수온과 높은 산성의 바다 환경에서도 쉽게 번식이 가능하다. 즉, 기후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 현재 해양환경에서 양식이 쉬운 생물 자원이다. 또한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저감에도 효과적이다.

스피룰리나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영양분이다. 단백질과 칼슘, 미네랄이 풍부하다. 때문에 미항공우주국(NASA)와 일본 우주항공연구소에서는 우주식품으로 스피룰리나를 개발하기도 했다. 경제적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마켓퓨처리서치’는 스피룰리나 식품 시장이 오는 2030년 11억4,000만달러(약 1조5,9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피룰리나와 미세조류 등 해양 생물 자원을 이용한 화장품 제품들. KIOST 제주연구소에서 기술을 개발, 기업에 기술이전을 해 출시된 제품들이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스피룰리나와 미세조류 등 해양 생물 자원을 이용한 화장품 제품들. KIOST 제주연구소에서 기술을 개발, 기업에 기술이전을 해 출시된 제품들이다./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제주연구소에서는 이 스피룰리나를 여러 생물 자원 분야에 응용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엔  소태아혈청 대체효능을 확인, 대량생산 및 표준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제주용암해수와 융합을 통한 ‘화장품’ 제작 기술도 개발했다. 이를 최근 제주화장품 기업인 ‘라라잇츠’에 기술이전하기도 했다.

양현성 선임연구원은 “기후변화는 이제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 즉 뉴노멀 시대로 가는 길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며 “해양 생물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고 우리 역시 장기적으로 달라진 해양 자원을 미리 대처하고 이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과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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