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좋은 전통주 경험이란 맛뿐 아니라 브랜드·스토리·순간의 무드까지 함께 기억되는 것이다."

손종찬 매월매주 대표는 전통주를 '취향을 빚는 여정'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한 잔의 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지역성과 역사, 그리고 양조인의 철학까지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미국 나파밸리에서의 유학·근무 경험은 이러한 관점의 토대가 됐다. 당시 그는 와이너리들이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지역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와인을 맛보는 경험이 곧 그 지역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한국 전통주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매월매주는 '매달, 매주 기다려지는 전통주'라는 철학 아래 2021년 첫 발을 내디뎠다. 사업 모델은 전통주 구독 서비스였다. 매달 다른 양조장의 술과 이를 즐기는 방법, 그리고 음식 페어링 가이드를 한 세트로 묶어 소비자에게 정기 배송하는 구조였다.
손 대표는 "전통주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문화 상품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며 "제품 정보와 시음 기회가 제한돼 있어 취향을 발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회상했다.
반면 당시 시장에는 이미 병 단위 배송 서비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병 단위 판매는 소비자가 부담 없이 새로운 술을 시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 대표가 꺼내든 해법이 바로 소용량 샘플러 구독 모델 '매월한잔'이다. 최소 3종에서 최대 8종의 전통주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구성으로, 소비자는 다양한 술을 비교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양조장은 제품 라인업을 폭넓게 노출할 기회를 얻는다.
출시 직후 매월한잔은 신규 가입자 수와 구독 유지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특히 △디자인 △라벨 아트워크 △네이밍 등 시각적 요소를 강화했다. 단순 시음 키트가 아닌 '구독형 문화 콘텐츠'로 포지셔닝한 점이 주효했다. 이는 전통주를 와인·수제맥주처럼 '취향의 축적'이 가능한 상품군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매월매주의 브랜딩 전략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지역 양조장의 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손 대표는 전국 각지를 돌며 품질이 뛰어나지만 판로와 홍보 역량이 부족한 양조장을 발굴했다. 단순히 제품을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원재료와 양조법이 쓰였는지, 양조인의 철학과 지역 문화가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조사해 스토리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제품은 단순한 주류에서 '이야기가 있는 술'로 재탄생한다. 예를 들어 원주 A양조장과 함께 만든 '바질 진'은 지역 농산물과 전통 증류 기술을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로 기획됐다. 출시 전까지는 해당 양조장이 주로 지역 축제나 한정된 소매점에서만 판매했지만, 매월매주와 협업한 이후 전국 단위로 알려졌고, 출시 1주 만에 완판됐다. SNS에서 라벨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추가 생산 문의가 폭주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좋은 술이더라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기 쉽다"며 "소비자가 그 술을 선택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매월매주는 단기적인 매출이 아닌, 양조장의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구축해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협력 구조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많은 양조장은 이미 안정적인 거래처와 유통망을 갖추고 있어 새로운 파트너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특히 외부에서 '브랜딩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손 대표는 접근 방식을 바꿨다. 먼저 매월매주 구독 서비스에 해당 양조장의 제품을 포함시키고, 배송·마케팅·운영 비용을 전부 회사가 부담했다. 무조건적인 노출 기회를 제공하면서 '라포(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 우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조장 측도 소비자 반응과 판매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이후 △디자인 △패키징 △맛까지 맞춤 제작하는 브랜딩 계약으로 확장됐다. 현재 매월매주는 약 100곳에 달하는 양조장과 협력 중이다.
매월매주는 지난해 프로축구 시민구단 FC안양과의 협업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FC안양 전용 증류주를 기획·개발해 300세트를 한정 출시했고, 기획부터 디자인·물류까지 전 과정을 직접 맡았다. 특히 여름 시즌 경기 일정에 맞춰 상온 보관이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등 디테일한 기획이 돋보였다.
스포츠 협업 외에도 호텔·리조트·프랜차이즈와의 B2B 사업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손 대표는 "스포츠 프로젝트는 홍보 효과는 크지만 매출 규모는 제한적"이라며 "전국 단위 호텔이나 프랜차이즈와 협업하면 월 수천만원 매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역시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홍콩 △동남아시아를 1차 진출지로 정하고 한류·K팝 IP와 결합한 전통주 MD를 준비 중이다. 더 나아가 위스키, 리큐르, 무알콜 음료까지 주종을 확장해 '글로벌 주류 브랜딩 플랫폼'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연예인과 셀럽의 주류 시장 진출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첫 구매는 팬심으로 가능하지만, 재구매를 결정짓는 건 결국 맛"이라고 단언한다.
또 "브랜드와 스토리텔링이 아무리 훌륭해도, 맛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며 "매월매주는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품질 완성도를 최우선한다"고 설명했다.
이 철학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2024년 한 해 동안 매월매주는 70여 개 양조장·F&B 브랜드와 협업했다. 구독 회원 수는 전년 대비 160% 증가했다. 재구매율은 72%에 달한다. B2B 의뢰 건수도 3배 이상 늘었다.

다수의 투자사도 매월매주의 상품성을 높이 평가하며 투자를 결정했다. 2024년 김기사랩에서 시드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또한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과제 2건을 확보했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씨엔티테크가 운영하는 IBK기업은행(024110) 창업육성 플랫폼 'IBK창공' 구로 14기에 이름을 올려 사업 고도화 지원을 받고 있다.
손 대표의 다음 목표는 주문·매칭·피드백 공정의 자동화다. 현재 AI 기반 레시피 추천과 브랜딩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토대로 'BaaS(Brew as a Service)'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그는 "전통주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며 "매월매주가 그 흐름의 중심에서 새로운 술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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