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뚫고 미래로”… 북극항로가 연 ‘新대항해시대’

시사위크
최근 무역항로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로 인한 해류 변화 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북극항로(北極航路, Polar route)’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최근 무역항로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로 인한 해류 변화 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북극항로(北極航路, Polar route)’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5세기 시작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로 인류 문명은 한 단계 진일보했다. 수많은 물자와 과학기술, 문화의 교류가 신항로를 통해 이뤄졌다. 현재까지도 이때 만들어진 무역항로를 기반으로 국가 간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무역항로는 ‘세계의 핏줄’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최근 무역항로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로 인한 해류 변화 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다. 이로 인해 아시아와 남미를 비롯한 국가들은 직접적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북극항로(北極航路, Polar route)’다. 북극 바다를 지나 라페루즈 해협과 베링 해협을 통과하는 항로다. 그동안 얼어붙은 바다 때문에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20세기 이후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새로운 항로로 주목받고 있다.

◇ 불안정한 국제운하, ‘북극’으로 기수 돌리는 배들

최근 북극항로의 필요성 커지는 이유는 ‘수에즈 운하’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다. ‘이스라엘-이란’ 전쟁,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 등 위협이 커지면서다. 후티 반군은 지난달 7일에도 그리스의 화물선 ‘이터니티C’호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4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됐다.

반군의 공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무역선들의 수에즈 운하 기피도 증가했다. 이집트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일 기준 수에즈 운하 컨테이너 물동량은 82%가 줄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0억달러(8조3,190억원) 규모다. 1만3,500TEU 이상급 대형 컨테이너선은 운하를 희망봉으로 우회해 이동하는 추세다.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15%를 담당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항로가 마비된 것이다.

최근 북극항로의 필요성 커지는 이유는 ‘수에즈 운하’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다. 후티 반군의 공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무역선들의 수에즈 운하 기피도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1월 19일 예멘 후티 반군 헬리콥터가 화물선 갤럭시 리더 납치를 위해 화물선에 접근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AP
최근 북극항로의 필요성 커지는 이유는 ‘수에즈 운하’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다. 후티 반군의 공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무역선들의 수에즈 운하 기피도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1월 19일 예멘 후티 반군 헬리콥터가 화물선 갤럭시 리더 납치를 위해 화물선에 접근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AP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2대 운하로 꼽히는 ‘파나마 운하’의 상황도 좋지 않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는 계단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무역선이 이동하기 위해선 운하 갑문 사이에 물을 채워야 한다. 이때 기후변화로 인한 엘니뇨 현상으로 파나마 운하 담수를 공급하는 가툰 호수에 가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의 가뭄이 심화되면서 일일통과 선박수는 36척에서 18척으로 감소했다. 전 세계 물류 운송의 3%를 담당하는 항로가 기후변화로 마비된 것이다. 특히 남미 국가들의 피해가 막대했다. 칠레와 페루는 22%, 에콰도르 무역의 26%가 파마나 운하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는 기후변화가 국가 경제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사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극항로를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글로벌 지정학 경제 분석 기업 ‘GIS리포트’에 따르면 2010년대 연간 500만톤 수준이었던 북극항로 무역량은 2022년 3,400만톤까지 늘었다. 러시아 정부의 ‘북극해철도(NSR)’ 계획까지 진행될 경우 2035년엔 총 무역량이 2억4,000만톤에 달할 전망이다.

◇ 위험천만한 북극해, 천연자원도 풍부… “정확한 해양과학조사 필요”

북극항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우리 정부도 관련 사업의 적극적 지원 검토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24일 해양수산부는 ‘북극항로 TF’를 구축하고 북극항로 개척의 초기 전략을 수립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극항로의 개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극항로는 이름 그대로 북극의 바다를 지나야 한다. 북극해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날카로운 유빙(流氷, 얼음덩어리), 거대한 빙하, 매서운 추위는 북극항로를 운행하는 모든 선박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북극과 같은 극지는 날카로운 유빙(流氷, 얼음덩어리)이 선박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진은 북극과 같은 남극의 극지 바다에서 마주친 유빙의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북극과 같은 극지는 날카로운 유빙(流氷, 얼음덩어리)이 선박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진은 북극과 같은 남극의 극지 바다에서 마주친 유빙의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특히 기후변화가 북극해 지역에서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해양사고 위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연구에서 기후변화가 가속화될 경우 북극항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량 사상자 사고(MCI)’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북극을 항해하는 벌크선 2005년에서 2017년 사이에 북극에서 발생한 2,638건의 선박 사고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운영 환경으로 인한 선박 손상 및 고장’이 전체 사고 원인의 48%를 차지했다. 운영 환경에 의한 선박 손상은 높은 파도, 유빙과의 충돌 등으로 인한 사고를 뜻한다.

리즈대 연구팀은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캐나다 북극에서 선박의 이동 거리는 150% 이상 증가했다”며 “항해 가능한 강과 호수를 통한 내륙 운송도 얼음이 없는 계절이 길어짐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북극항로 운항은 점차 증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노르웨이 기상청’이 202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파트너 저널(Nature partner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 수는 지난 10년간 매년 7% 증가했다. 특히 악천후와 위험한 해빙 조건의 겨울철 선박 운항 시간은 3배 이상 증가했다.

노르웨이 기상청 연구팀은 “노르웨이는 북극항로의 해상 위험을 완화하고자 ‘극지규범(Polar Code)’을 도입해 북극해의 기상, 해빙 분류 체계에 대한 위험조건을 명시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극해의 결빙 조건에서의 해운 활동은 여전히 위험할 수 있어 북극항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빙 유발 사고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북극항로는 글로벌 자원 경쟁에서도 중요한 장소가 될 전망이다. 북극항로가 위치한 북극해가 천연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막대한 양의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가 북극해 아래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극지연구소가 발표한 ‘북극권 석유자원 현황 및 개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북극권에는 석유 북극권 25개 분지의 미발견 석유자원 추정 총 매장량은 석유 9조배럴(1조2,150억톤)에 달한다. 대표적인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인 2,975억배럴보다 30배 많은 양이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무려 44억배럴에 달한다.

북극항로의 개척, 글로벌 북극 자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이 될 자원으로 차세대 ‘쇄빙연구선(碎氷船, Icebreaker)’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의 원자력 추진 쇄빙연구선 ‘야쿠티아’./ Rosatom
북극항로의 개척, 글로벌 북극 자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이 될 자원으로 차세대 ‘쇄빙연구선(碎氷船, Icebreaker)’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의 원자력 추진 쇄빙연구선 ‘야쿠티아’./ Rosatom

◇ 쇄빙선 등 ‘해양연구선’ 자원 뒷받침 필수… “쇄빙선 100대는 필요”

이에 따라 북극항로의 개척, 글로벌 북극 자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이 될 자원으로 차세대 ‘해양과학연구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극항로의 개척과 자원 확보를 위해선 철저한 과학적 조사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능의 해양연구선은 항로 개척 및 자원 조사 계획 수립에 초석이 될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쇄빙연구선(碎氷船, Icebreaker)’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5일 개최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정책 간담회’에서 주형민 극지연구소 차세대 쇄빙연구소 건조사업단장은 “북극빙권의 감소로 북극빙권의 감소로 2030년경 북극항로의 개방이 전망된다”며 “연중 운항에 필수요건인 해빙·해저정보 제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우수한 성능의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쇄빙연구선은 일반적인 연구선(RV)와는 달리 거친 북극해 항해에 특화된 선박이다. 가라앉지 않는 무거운 선두를 이용, 두꺼운 북극해의 얼음을 깨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극지연구소(KOPRI)’에 따르면 쇄빙연구선 ‘아라온호(Araon)’는 1m 두께의 얼음을 깨면서 3노트(시속 5.56km)의 속도로 항해 가능하다.

북극항로 개척과 맞물려 쇄빙연구선 시장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Verified Market Reports)’에 따르면 2028년 세계 쇄빙선 시장 규모는 25억달러(약 3조4,725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12억달러(약 1조6,668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는 “쇄빙선 시장의 급성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감소로 항해가 가능해진 북극항로의 중요성이 커진 데 기인한다”며 “석유,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은 무역뿐만 아니라 연구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쇄빙연구선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최신 쇄빙연구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지난 7월 29일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계약을 한화오션과 체결했다./ 한화오션
우리나라 역시 최신 쇄빙연구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지난 7월 29일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계약을 한화오션과 체결했다./ 한화오션

이 같은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 역시 최신 쇄빙연구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는 지난 7월 29일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계약을 한화오션과 체결했다. 2009년 출항한 아라온호의 후계자인 이번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오는 2029년 12월까지 건조될 예정이다.

다만 경쟁국에 비해 쇄빙연구선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실제로 북극항로 개척에 가장 적극적인 러시아는 지난 1월 최신 원자력 추진 쇄빙연구선 ‘야쿠티아’를 임무에 투입했다. 길이 172m, 175MW급 원자로 2기를 동력원으로 장착한 야쿠티아는 북극해 위에서 항구 정박 없이 수년 넘게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러시아는 2030년 야쿠티아와 같은 원자력 쇄빙연구선을 8척에서 17척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최수범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앞으로 펼쳐질 북극항로 시대는 우리 경제에 있어 매우 위협적이지만 아직 한국은 대비가 부족하다”며 “더욱 치열해질 북극항로 경쟁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최소한 100대 이상의 쇄빙연구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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