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한미 관세 협상 극적 타결에 힘을 보탠 재계 3인방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물밑 지원을 펼치며 막판 조율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조력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관세 타결로 삼성전자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고, 현대차그룹은 경영 판단의 나침반을 손에 쥐었다. 한화그룹은 대한민국 조선 산업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토대로 글로벌 조선업계에 존재감을 각인할 기회를 마련했다.
◆정부 "재계 지도자들이 인맥 총동원…큰 도움 됐다"
3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과 관련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을 이끄는 기업 총수들이 현지로 총출동해 큰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같은날 "재계 지도자들이 와서 나름 미국 내 인맥을 총동원했다"며 "의회, 기업, 재계 등 민관 총력 체제로 한 게 분명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앞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 이어 재계 1위인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3위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관세협상 지원을 위해 협상단에 잇달아 합류했다.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달리 우리 정부의 협상 타결 소식이 늦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될 무렵 기업 총수들이 예정에 없던 방미길에 오른 것이다.
가장 먼저 워싱턴 땅을 밟은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 제안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세부 투자 내용 등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논의했다.
마스가는 미국의 전략적 관심사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한국과 조선 협력 의지를 밝히고, 지난 4월에는 존 펠란 해군성 장관이 미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방한해 국내 조선소를 방문할 정도로 조선업 부흥 의지가 강하다.
김 부회장은 특히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 측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시간에 즉시 통화 가능한 ‘핫라인’을 연결해 두고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현지 투자와 협력 방안에 대한 미국 측 질의에 바로 답할 수 있도록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탈리아 글로벌 비즈니스 모임 ‘구글 캠프’ 참석을 취소하고, 미국 워싱턴DC로 향했다. 이 회장은 미국 현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정부의 대미 무역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테슬라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을 수주한 건이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해외 출장지에서 곧바로 워싱턴DC로 달려갔다. 현대차그룹이 영입한 공화당 소속 드류 퍼거슨 전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정부의 협상력에 힘을 실었다. 현대차그룹이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로 투자하기로 한 지역인 루이지애나주 출신 마이크 존스 공화당 미 하원의장 등과도 소통하며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탰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에 있어 한미 관세는 현대차그룹 미래를 좌우할 최대 변수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부터 부과된 미국의 자동차 관세로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감소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었다.

◆삼성·현대차·한화 '관세타결' 훈풍…품목 관세 부담 완화 가능성↑
삼성전자는 이번 한미 관세 타결에 따라 불확실성이 감소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다만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이 여전히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만큼, 안도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이달 중순 발표가 예상되는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및 반도체 파생 제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품목관세에 반도체 뿐 아니라 스마트폰, PC 등 완제품이 포함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당사는 그동안 무역확장법232조 조사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왔고, 양국 당국과 긴밀히 의견을 나눴다"며 "반도체 관련 한미 양국 간 협의 결과 등에 따른 기회와 리스크를 가속도로 면밀히 분석해 비즈니스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큰 걱정은 덜어낸 상태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적시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매기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낮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이번 한미 관세 타결을 두고 "앞으로의 사업에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결정적 틀"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이 지난달 31일 링크드인을 통해 직접 밝힌 내용이다. 그는 "이번 협정은 한국의 디자인, 엔지니어링, 제조 역량과 미국 내 생산 체계 간의 원활한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현지화 전략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장기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환경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21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전략과 10만개 이상의 직간접적인 일자리 창출 약속을 강화할 것"이라며 "미국 내 통합 제조 생태계를 더욱 확장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그룹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수혜를 예상하고 있다.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투자를 골자로 하는 관세 협상에서 1500억 달러가 조선업 협력을 위한 펀드 기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신규 조선소, 유지보수(MRO) 사업 확장 등을 통해 미국 조선업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미 필라델피아주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최근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을 세 차례 수주한 만큼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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