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포르쉐 심장이 뛴다, 주펜하우젠 팩토리 75년의 시간과 기술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포르쉐의 본질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독일 슈투트가르트 북부, 포르쉐 박물관 너머로 펼쳐진 '주펜하우젠(Zuffenhausen) 팩토리'는 그 질문에 가장 알맞은 대답이 된다.

길 위를 달리던 포르쉐들이 하나둘 방향을 틀어 모이는 곳. 도로 위를 질주하던 시간은 멈추고, 대신 엔진의 울림이 시작되는 장소. 바로 주펜하우젠이다. 포르쉐의 오늘을 만든 이곳은 단순한 자동차 생산 기지를 넘어 '포르쉐 정신'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구현되는 성지다.


"주펜하우젠은 앞으로도 스포츠카의 중심지로서 이곳은 개척정신, 최첨단 생산기술, 뛰어난 제조 품질을 구현한다. 이 부지의 발전은 포르쉐가 소규모 스포츠카 제조업체에서 독보적인 차량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 알브레히트 라이몰드(Albrecht Reimold) 포르쉐 AG 생산 및 물류 담당 이사

◆356에서 911까지 그리고 타이칸

포르쉐의 주펜하우젠 팩토리 역사는 75년 전인 1950년 4월6일 포르쉐 356을 이곳에서 처음 양산하면서 시작됐으며, 1950년 말까지 포르쉐는 317대의 차량을 생산했다. 사실 1948년 오스트리아 그뮌트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 52대의 356 모델이 포르쉐의 첫 걸음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양산의 무대는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이었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뮌트(Gmünd)에서 슈투트가르트로 복귀한 포르쉐는 처음에는 로이터(Reutter)의 공장을 임대해 생산을 시작했다. 레이스와 수출 시장에서의 성공이 이어지자 포르쉐는 결국 로이터의 차체 공장과 인력, 노하우를 인수했다. 당시 고용 인원은 1000명. 이는 본격적인 제조사로서의 성장 신호탄이었다.

1964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포르쉐 스포츠카 아이콘인 911이 이곳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718 및 타이칸까지 이 단일 생산 라인을 공유한다. 새들러리(saddlery)라 불리는 공간에서는 차량 내부의 가죽시트를 수작업으로 마감한다. 정밀함과 장인정신은 포르쉐가 대량생산 체계 속에서도 개별 맞춤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 부지에는 총 세 개의 생산시설이 있는데 △고객 차량을 광범위하게 개인화하는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 △고유 차량을 제작하는 존더분쉬 부서 △경량 설계 스포츠카 모델을 위한 CFRP 매뉴팩처가 포함된다.


이처럼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공존하는 이곳은 변화와 전통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포르쉐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혼합 생산'의 극한을 구현해낸 셈이다.

"주펜하우젠 팩토리는 초기부터 포르쉐 생산의 핵심 철학인 유연한 혼합 생산 방식을 채택해왔다. 356의 쿠페, 카브리올레, 스피드스터 버전은 하나의 라인에서 함께 생산됐고, 오늘날에도 911과 그 파생 모델, 타이칸까지 단일 라인에서 제작된다. 전통 내연기관과 전기 파워트레인이 공존하는 생산 방식은 단순한 제조를 넘어 브랜드 철학을 상징한다."

주펜하우젠 팩토리는 수십 년에 걸쳐 개조, 확장, 신축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대화됐다. 그리고 단 317대로 시작된 이곳의 생산규모는 오늘날 연간 수십만 대의 스포츠카를 전 세계로 보내는 글로벌 허브로 성장했다. 수십 년에 걸쳐 주펜하우젠 부지는 개조, 확장, 신축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대화됐다. 


주펜하우젠 팩토리의 전경을 보면 독특한 단어가 눈에 띈다. 바로 '베르크(Werk)'라는 이름의 건물들이다. 이는 포르쉐 공장 내 각 생산동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작업장 혹은 공장동을 뜻한다.

"주펜하우젠 팩토리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전기차 타이칸의 양산 시작을 위한 준비였다. 타이칸은 2019년 양산에 돌입했다. 이 전환의 일환으로 포르쉐는 새로운 생산 구역을 조성했다. 베르크 5에는 새로운 차체 제작 공장이, 베르크 1에는 현대적인 도장 공장이 설치됐다.이는 모두 전동화의 특정 요구사항에 맞추어 설계됐다." 

현재 베르크 1은 △디자인 △품질관리 △도장 공정이 집중된 본관 격의 공간이며, 베르크 2는 주로 최종조립과 물류작업이 이뤄진다. 베르크 3은 엔진 생산, 베르크 5는 차체 제작 및 순수 전기 스포츠카인 타이칸을 위한 고도화된 설비가 위치한다. 


최근에는 아데슈트라세(Adestrasse) 맞은편 구역까지 확장돼 하이베이 랙 물류 시스템이 새롭게 구축됐다. 하이베이 랙 창고는 3만5000㎥ 규모의 자동화 부품 저장소로, 4만개가 넘는 팔레트와 컨테이너를 관리하며 부품을 정확히 라인에 맞춰 투입한다. 

또 두 개의 컨베이어 브리지는 슈비버딩거 슈트라세(Schwieberdinger Strasse) 상공을 가로지른다. 이 브리지를 통해 완성된 차체가 베르크 5에서 베르크 2로 운반돼 최종 조립된다. 수직적 확장을 통해 도시 속 공장의 제약을 창의적으로 극복해낸 상징적 구조물이다.

◆수작업과 자동화, 두 기술이 공존하는 설계

포르쉐는 지난 2019년 이 전통의 땅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첫 순수 전기차 스포츠카인 타이칸의 양산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주펜하우젠은 과감한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베르크 5에는 전기차 전용 차체 제작 라인이 구축됐고, 베르크 1의 도장 공정도 전동화 기준에 맞춰 업그레이드됐다. 새로 건설된 베르크 2의 조립 라인은 플렉시라인(FlexiLine)이라 불리는 최신 무인 운반 시스템이 도입돼 사람과 기계가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특히 2023년 이후 도입된 초기 품질(First-Time Quality, FTQ) 개념은 조립과 품질검수를 생산 공정 전체에 통합시켜, 오류를 사전에 방지하고 높은 초기 품질을 확보하도록 설계됐다. 테스트 벤치와 새로운 라이트 터널, 음향 및 누수 검사 시스템은 전기차 생산에 요구되는 정밀성을 담보한다.

2025년부터는 전기 SUV인 마칸 일렉트릭의 전기모터도 이곳 엔진 공장에서 조립된다. 내연기관의 명맥을 잇는 V8 엔진과 전기 파워트레인이 같은 공장 내에서 나란히 조립되는 이 구조는 전동화 시대의 상징이자 포르쉐의 유연한 기술력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히 '전기차도 만든다'는 수준이 아니다. 포르쉐가 고성능 전기차를 어떻게 스포츠카로 구현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기차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운전의 본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주펜하우젠의 생산 공정 곳곳에 녹아 있다.


"주펜하우젠은 포르쉐가 '정밀함'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곳이다. 무인 운반 시스템과 인공지능 기반 공정 관리가 기본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사람의 손이 마지막 완성도를 결정한다."

주펜하우젠 팩토리는 매일 수백 대의 포르쉐를 쉴 새 없이 생산한다. 그 배경에는 정밀하게 설계된 생산 흐름이 있다. 언제 조립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차를 어떻게 조립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이 흐름에 담겨 있다.


75년 전 단 한 대의 356에서 시작된 주펜하우젠은 이제 전 세계 수십만 포르쉐의 출발점이 됐다. 엔진이 포효하던 시대부터 전기모터가 윙 하는 순간까지, 포르쉐의 정체성은 줄곧 이곳에서 빚어졌다.

오늘도 이곳에선 911이 조립되고, 타이칸이 품질검사를 받고, 새로운 마칸 일렉트릭의 전기모터가 테스트 벤치를 돈다. 전통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주펜하우젠 팩토리는 그 진화를 매일 만들어내는, 포르쉐의 진짜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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