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박성규 기자]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와 한국 정부 간의 이해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구글에 이어 애플까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요청하면서, 정부는 산업 보호와 국가 안보, 통상 압박 사이에서 복잡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20일 IT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이달 국토지리정보원에 축척 1:5000 수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월 같은 요청서를 제출한 구글보다 약 4개월 늦은 시점이다.
이 지도는 군사·보안시설이 상세히 표시돼 있는 고정밀 공간정보로, 관련 법령에 따라 원칙적으로 국외 반출이 제한된다. 반출 여부는 국토교통부, 국방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등 관계 부처 협의체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구글 요청에 대한 정부의 최종 답변 시한은 8월 11일, 애플은 9월 8일로 예정돼 있다.
양사의 대응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구글은 군사시설에 대한 블러 처리만 수용할 수 있으며, 지도 데이터는 기존처럼 해외 서버에 저장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애플은 국내 서버를 설치하고, 블러는 물론 위장, 저해상도 처리 등 정부가 요구한 보안 조치를 모두 수용할 뜻을 밝혔다. 특히 SK텔레콤 자회사인 티맵모빌리티의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이슈를 넘어 통상과 산업적 파장도 적지 않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비관세장벽’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부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를 통상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지도 등 미래 산업에서도 고정밀 지도는 필수 요소로, 외국계 기업들은 적극적인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지도 반출에 신중한 입장이다. 네이버, 카카오, 티맵 등은 고정밀 지도 반출이 허용되면 국내 지도 API 시장이 외국계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구글 지도 서비스 진출 이후 자국 지도 기업의 점유율이 급감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최근 절충안도 검토 중이다. 일부 데이터만 계층적으로 반출하거나, 지역과 용도를 제한하는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특정 기업에만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확보하면서도, 통상 압박과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겠다는 계산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안과 산업 보호, 통상 환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지도 데이터의 단계적 개방이나 제한적 활용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애플과 구글의 요청은 단순한 지도 반출을 넘어, 한국이 디지털 주권을 지키면서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시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을 단순한 지도 반출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디지털 자산과 주권을 지키면서 글로벌 기술 질서에 어떻게 참여할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특정 기업에 편중되지 않도록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균형 잡힌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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