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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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6월 18일, 서울 양천구 갈산도서관 한울관에서 열린 ‘2025 북스타트 양육자 교육’ 강연에서 류승연 작가는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며 겪어온 삶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는 2018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펴냈다. 이 책은 2023년 영화 ‘그녀에게’로도 제작됐다. 류 작가는 “7~8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봐도 무리가 없다”라며 “그만큼 우리 사회는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 [사진=갈산도서관]

 

류 작가는 임신 28주 차에 쌍둥이 남매를 조산했다. 아들은 신생아 뇌출혈과 호흡 정지를 겪었고, 생후 13개월 무렵부터는 발달지연으로 여겨 치료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부터 치료실 전쟁이 시작됐다”라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하루에도 몇 군데씩 치료를 다녔고, 어느 순간 집 담보 대출이 잔뜩 쌓여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발달장애 자녀의 돌봄은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류 작가는 “엄마가 온 힘을 다해 장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온 가족이 침묵하게 된다”라며 “결국 가정에서 엄마가 모든 권력을 쥐게 되는 상황이 오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방치하면 가족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류 작가는 아들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아들이 여섯 살 때, 어린이집 친구가 “이 친구는 장애가 있어서 말을 못 해”라고 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그 말에 얼굴이 굳었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겐 “우리 애가 그런 말을 들었다”라며 서러움을 토해냈다고 했다. 하나 훗날 깨달았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건 자신이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 류승연 작가가 갈산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김혜원 기자]

 

류 작가는 “장애는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인데, 우리는 여기에 온갖 부정적인 의미를 덧붙였다”라고 말했다. 장애는 나쁘다, 불쌍하다, 숨겨야 한다는 프레임은 우리가 만든 것이며 그 딱지를 떼어 낸다면 ‘장애’는 그저 무미건조한 상태로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을 향한 연민과 동정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장애 혐오’라고 강조했다. 류 작가는 “불쌍하게 여기면 아이도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게 된다”라며 “부모가 먼저 아이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아이도 자기 삶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당부했다. “장애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 좋은 뜻에서 나오는 동정이더라도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며 “진짜 아이들을 위한다면 선의로 포장된 시선부터 돌아보라”라고 말했다.

한 독자는 강연에서 책에 등장하는 딸에 관해 물었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엔 비장애인인 딸이 “차라리 나도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류 작가는 이 글을 칼럼으로 연재한 뒤, 전국에서 항의 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발신자 대부분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자녀를 양육하는 비장애 형제자매들이었다. “부모가 내게 장애 형제자매에게 쏟는 관심의 10분의 1만 주었더라면, 학원 한 번만 더 보내줬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원망에 류 작가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됐다.


그는 “아들의 장애에만 몰두하다 보면, 비장애 자녀의 마음에도 상처가 깊게 남는다”라며 “그 아이 역시 보통의 아이처럼 자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딸을 위해 학교 위(Wee)클래스 심리 상담을 꾸준히 연결하고, 또래 관계를 존중하며, 장애 형제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도왔다. “사춘기 때 모녀가 다투며 소리도 꽥꽥 질렀는데 방문을 닫고 나오며 씩 웃었다”라며 “중2병 걸린 그 모습마저 고맙고 사랑스러웠는데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강연 말미 류 작가는 과거 우울과 절망으로 정신과 문을 두드렸던 일을 꺼냈다. 이후 2년간 상담 치료를 받았다. 그는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억눌린 감정은 결국 더 추악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라며 “감정을 뚫어낼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가장 약한 존재에게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류 작가는 “부모가 괜찮아야 아이도 괜찮다”라며 “나부터 돌봐야 진짜 돌봄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자녀의 장애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힘도 생긴다”라며 “우리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라고 거듭 말했다.

발달장애 아이를 양육하는 한 엄마는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며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깊이 남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참석자는 “연민과 동정이 혐오일 수 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강연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를 대할 때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류 작가는 “아들을 키우며 하루에도 몇 번씩 웃게 된다”라며 “이는 비장애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는 알지 못하는 기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순간이 쌓이다 보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라며 “부모인 여러분이 무엇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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