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이재명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 부르며 가장 앞장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그다. 그랬던 정치인이 이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며 외교의 무대에 섰다. 일본 사회는 혼란스럽고, 한국 내부에서는 일관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흐름을 비판 일변도로 볼 일은 아니다. 과거 진보정권, 소위 ‘반일 정권’이라고 불렸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시기야말로, 역설적으로 일본과의 민간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정치적 구호는 강했을지 몰라도, 교류의 현장은 더 넓고 깊게 열려 있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한일 간 문화개방과 교류를 제도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 드라마는 일본 대중문화의 틈새를 파고들었고, 이후 K-POP은 오히려 일본 시장에서 실질적 기반을 다졌다.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가 그 흐름의 주역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징용 판결 등 외교적으로는 가장 날선 시기였지만, 민간 교류는 오히려 최고조에 달했다. BTS의 도쿄 돔 공연은 매진을 거듭했고, 한국 드라마는 일본 넷플릭스 순위 상위권을 점령했다. 2023년 한국인의 일본 방문자는 525만 명으로, 어느 나라보다 많았다. 즉, 외교가 경색돼도 사람은 오갔고, 문화는 스며들었다.
이재명 정부가 취임 직후 실용외교를 강조하고,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민간 기반 교류의 가치와 현실성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적 회복이고 실질적 협력일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지명자는 이러한 경제 상황을 두고 “제2의 IMF 상황”이라고 경고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더 중요한 점은, 한일관계를 유지시켜온 기반이 반드시 정부 간 외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방정부 간 교류, 지자체의 자매결연, 청소년 문화 교류, 기업 간 협업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어 왔다. 실제로 지금도 한일 간 공동 관광 마케팅이나 지역 간 MICE(Meetings, Incentives, Conventions, Exhibitions) 협력은 정치와 무관하게 계속된다. 진보정권 시절에 쌓인 이런 자산들은 이제 어느 쪽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활용 가능한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반일’과 ‘친일’이라는 프레임이 팽배하다. 일본을 옹호하면 ‘친일’, 비판하면 ‘반일’이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낡은 정치 언어에 불과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친일’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긍정적인 표현인 반면, 한국의 ‘친일파’는 역사적 책임과 죄책감을 전제로 한 부정적 용어다. 단어 하나에도 이처럼 간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편적 구호로 관계를 정리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해악이다.

이제 한일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전략으로 다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의 언행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보다, 그가 지금 무엇을 기반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려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반일은 강경함이 아니라, 고립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교류의 힘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서는 지속성을 갖는다. 우리는 그 교류의 가치를 이미 과거 진보정권을 통해 경험했다.
정치적 스탠스를 넘어서, 이재명 정부가 실용을 바탕으로 한일 간 ‘신뢰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한일관계는 더 이상 흔들림만 반복하는 관계가 아니라, 축적을 전제로 한 협력의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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