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김혜인] 사회 운동가 에밀리 펄 킹슬리(Emily Perl Kingsley)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경험을 한 여행에 빗대었다. 이탈리아로 멋진 휴가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했지만 네덜란드에 도착해버린 이야기.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Holland)>이다.
이에 비유하자면, 나는 일찍부터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탄 비행기가 이탈리아가 아니라 네덜란드로 향하는 중이 아닐까 불안했다.
아이 발달 문제를 의심한 건 7~8개월 됐을 무렵부터였다. 첫돌도 안 된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자식을 얻은 초보 엄마가 지닌 조급함으로 치부했다.
어떤 이는 의사에게서 “아이가 아무 문제도 없는데 병원에 왜 온 거냐”고 들은 경험을 말하며 웃었다.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내게 왜 왔냐고 묻지 않았다. 치료 처방을 내리고, 정밀검사 예약을 잡고, 진단을 받았다.
생후 37개월, 내 아이는 자폐증이다.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한 터라, 의사 입에서 “자폐증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담담했다. 침착하게 특수교육대상자 신청과 장애 등록에 대해 질문하고 치료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이날 아이는 종일 아주 잘 지냈다. 진료 시간 때문에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깨우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는데도 아무 짜증도 내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 순서를 기다릴 때도 잘 있었다. 밥을 잘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고마웠다.
쌔근쌔근 잠자는 숨소리를 들으며 아이가 장차 겪게 될 어려움을 헤아리고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영영 누릴 수 없을 일들은 마음에서 보내주었다. 무척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날이 밝아오는 걸 구경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호수 산책로에 갔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긴 출렁다리와 수상 레저 시설이 있는 곳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곳에서 수상자전거를 탄 추억이 있다.
아이는 산책로 위에 있는 카페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오가며 건물 구조를 파악하는 데만 열중했다. 산책로 쪽으로는 한 발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산책로로 통하는 계단에 잠시 호기심을 보였지만 수상 안전요원을 발견하더니 두려워하며 되돌아갔다.
우리는 산책을 포기하고 아이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차량 대여섯 대를 세울 수 있는 야외 주차장이 나왔다. 차량 출입이 안 되도록 막혀 있고 오토바이만 몇 대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편안해했다. 아주 좋은 풍경을 두고 작은 주차장에 쪼그리고 있으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무런 아쉬움이 없는 듯이 행동하던 남편도 “출렁다리에 못 가다니”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풀과 꽃이 있었다. 나무들이 포근히 감싸안은 듯한 공간이 아늑하기도 했다. 비눗방울을 불어 주자 아이가 편안히 웃었다. 아주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웃음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는데 네덜란드에 도착했네.”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마의 콜로세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베니스의 곤돌라는 없지만 풍차와 튤립이 있고, 심지어 렘브란트의 야경(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이 있는 곳, 여기도 꽤 괜찮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며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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