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저출산 시대 극복, ‘임산부 배지 선순환’이 첫걸음이 될 것”

시사위크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희망제작소 이규리 선임 연구원의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희망제작소 이규리 선임 연구원의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임산부에게 외출 필수템을 꼽으라고 한다면 ‘임산부 배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히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임산부에게 임산부 배지는 신체적인 어려움 속 안전한 이동을 가능케 하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러한 임산부 배지는 출산 후엔 처리하기 난감한 골칫덩어리가 되곤 한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끝에 많은 임산부 배지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예비 엄마들이 수량 부족으로 임산부 배지를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임산부 배지는 보건소나 지하철 고객 안내 센터에 임신확인서·산모수첩 등 임신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가면 발급받을 수 있는데, 지자체별로 임산부 배지 수량이 어떻게 되는지 쉽게 파악이 불가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배지를 받으러 갔다가 헛걸음을 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에 임산부 배지를 처음 탄생시켰던 희망제작소에서는 임산부 배지를 모아 필요한 곳에 배부하는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이규리 선임 연구원을 시사위크가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임산부 배지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임산부 배지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을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배지 재고가 부족해 배지를 받지 못했다는 임산부들의 사례를 담은 기사를 보게 됐다. 마침 집에 임신했을 때 받은 임산부 배지가 있었다. 더 이상 나는 필요가 없는데, 이걸 필요한 사람들한테 돌아가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하고 나면 버려지는 물건인데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재활용이 좋을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연도에 아이가 얼마나 태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데 한정된 예산에서 배지를 막 만드는 게 어렵지 않나. 수요와 공급의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배지를 선순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기획하게 됐다.”

희망제작소가 만든 임산부 배지의 모습. 현재의 배지(왼쪽 아래) 모양과 다른 초창기 배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가 만든 임산부 배지의 모습. 현재의 배지(왼쪽 아래) 모양과 다른 초창기 배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희망제작소

- 임산부 배지가 처음 탄생한 곳에서 이러한 캠페인이 진행돼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임산부 배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었나.

“당시 한 아이 엄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임신한 지 2~3달 무렵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몸이 힘들어도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아 힘든 경험을 했는데, 임산부임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달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해당 아이디어를 받고 희망제작소가 자체 설문조사를 먼저 실시해 봤다. 설문조사 결과, 임산부들이 대중교통 이용 시 노인과 같은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9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산부가 자신이 임산부라고 표시하는 배지를 달고 노약자석에 앉아있으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냐는 질문에 70% 이상이 거부감이 없을 것 같다고 응답했다. 지금처럼 임산부석이 따로 있고 임산부가 배려 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이 없던 때라, 임산부 전용 좌석을 알리는 표지를 버스와 지하철에 부착하고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캠페인을 먼저 진행했었다. 

이후 2006년 10월 10일 보건복지부에서 제1회 임산부의 날로 지정을 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희망제작소가 임산부 배지를 배포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임산부들이 배지를 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배지 모양이 지금과 다른 것도 확인이 가능하다.”

- 출산한 경험이 있어 임산부에게 배지가 지니는 가치를 더욱 잘 알 것 같다. 임산부에게 이 배지는 어떤 의미인가.

“확실히 임산부 배지를 이용하면 든든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임산부라는 걸 다른 사람이 알아야 배려를 해줄 수 있지 않나. 특히 임신 초기에는 표시가 전혀 안 나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사람이 많은 곳을 갔을 때 배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 기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임산부를 교통 약자로 인지하게 하는 상징물이지 않나 싶다.

또 만약 예상치 못한 사고를 갑자기 당하게 됐을 때 임신한 사실을 병원에서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온라인 중고마켓에 임산부 배지를 판매하는 이들이 있어 배지 사용 남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한다. 임산부 배지 사용 남용에 있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임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배지가 남용될 수 있게 판매를 한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더더욱 배지 반납제도가 필요하다는 반증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반납제도가 만들어지면 판매되는 일이 줄어들지 않겠나. 임산부 배지를 잘 사용하고 계신 분들이 더 많을 텐데,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부각돼 임산부석에 대한 이미지까지도 안 좋아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 아이 엄마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하게 된 임산부 배지. / 사진=이민지 기자
한 아이 엄마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하게 된 임산부 배지. / 사진=이민지 기자

- 임산부 배지는 임산부 배려 문화 만들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내 임산부 배려 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 또한 임신하기 전까지 임신을 하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남성이나 임신 경험이 없는 여성 입장에서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내가 자리에서 왜 일어나서 양보를 해줘야 하는지 인식이 없는 것도 당연할 것 같더라. 이를 해결하려면 임신을 하면 구체적으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배려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우선돼야 인식이 생기는 것으로 발전될 것 같다. 

저출산 시대라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문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임산부가 배려 받고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임산부 배려석도 일각에서는 임산부가 혜택을 입는 것으로 보지 않나.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 배우고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해질 텐데, 이러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배려 문화를 조성하는 게 더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 임산부 배려 문화의 확산이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임신을 하게 되면 무게만 무거워 지는 게 아니라, 내부 장기와 컨디션을 비롯해 몸 전체의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 더욱이 임산부는 뭉쳐서 이익집단을 만들기 어렵다. ‘임산부협회’가 따로 없지 않나. 임신은 잠깐 하고 끝나기 때문에 ‘임산부’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이 뭉쳐서 뭔가를 주장하기 힘든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반 시민들의 이해와 정부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이 임산부 배려 문화 정책 개선의 작은 씨앗이 되길 바라는 희망제작소 이규리 선임연구원. / 사진=이민지 기자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이 임산부 배려 문화 정책 개선의 작은 씨앗이 되길 바라는 희망제작소 이규리 선임연구원. / 사진=이민지 기자

- 캠페인을 통해 임산부 배지를 모으는 것뿐 아니라, 임산부 배지 정책 개선 아이디어도 모집하고 있다. 어떤 의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로 임산부 배지 반납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출산하고 나면 육아로 인해 정신이 없고 시간도 없어지지 않나. 어떻게 하면 출산 후 배지 반납을 쉽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산부인과·소아과 등 출산 후 자주 방문하게 되는 장소들로 반납처 다양화하기 △출생 신고할 때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에 함께 제출하기 △배지 반납하면 지역화폐로 보상해주기 등의 아이디어가 들어왔다.”

- 임산부 배지 모으기 캠페인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기 기대하는가.

“먼저 배지가 필요함에도 받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있다는 문제를 알리는 것이 제일 크다. 다음으로 다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반납제도가 마련되면 가장 좋을 것 같고, 반납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책과 제도라는 게 완벽하지 않지 않나. 항상 빈틈이 있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누군가 찾아서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 안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 부분을 알려서 환기를 시키고,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이 분명히 필요하고 그렇게 되어야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임산부 배려 캠페인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캠페인이 정책 개선의 작은 씨앗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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