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부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아요. 기술이 함께해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죠."
기부를 감정 아닌 '구조'로, 일회성 아닌 '순환'으로 바꿔보겠다는 사람이 있다. 김하연 '나눔비타민' 대표다. 전국 6만여개 음식점에서 디지털 식권이 작동하고, 기부자와 이용자가 실시간 연결되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 '기부는 연결'이라는 철학 아래 기술로 복지를 설계하는 그녀의 여정을 들여다봤다.

"기부는 연결이에요"
그는 이 말을 무겁게 꺼내들었다. 수많은 기부가 도중에 중단되고, 효율을 잃어 사라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되묻는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자존감 지키며 도움을 건넬 수는 없을까?"
지난 2023년 4월 설립된 나눔비타민은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아이의 말에서 시작됐다. "결식아동이에요"라고 말해야만 식권을 사용할 수 있는 현실. 아이가 굶거나 눈치 보며 급식카드를 맘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들. 김 대표는 이 같은 구조를 기술로 해결하고 싶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교육 봉사를 이어온 그는, 코로나 시기엔 교육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온라인 기반 공익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온라인으로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확신했어요. 그 첫 해답이 '나비얌'이었습니다."
◆ 디지털 식권으로 바뀐 복지 풍경
나눔비타민은 기업·지자체 복지 예산을 디지털 쿠폰으로 바꿔, 전국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플랫폼은 결식 우려 아동부터 지역 소상공인까지 모두를 연결한다.
"우리는 기부를 단순 전달이 아닌 시스템 설계로 보고 있어요. 이용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식사 선택이 가능하고, 기부자는 흐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시스템은 그저 단순한 식권에 그치지 않고, 기부 정밀화까지 실현하고 있다. AI 기반 매칭을 비롯해 자동 리포트 생성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그리고 공공복지 예산 디지털화까지. 복지 인프라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기술은 '선의'를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꿨다.
◆ 기프티콘 말고 '기부티콘'
현재 나비얌에는 전국 음식점에서 사용 가능한 '기부티콘'이 있다. 결식아동·취약계층·돌봄 대상자들이 모바일로 쿠폰을 전달받아 동네 음식점 혹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자유롭게 식사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직원이 "결식아동 맞나요?"라고 묻는 일도, 누군가 쳐다보는 시선도 없다.
"처음엔 오프라인 행사로 식사 제공을 하려 했어요. 근데 애들이 안 와요. 눈치 보이고 프레임 씌워질까봐요." 그래서 앱으로 바꿨다. 바코드나 버튼 하나로 끝나는 구조. 소상공인 매장은 바코드 스캐너가 없을 수 있으니 '버튼형 완료' 시스템도 따로 만들었다. "이름이 '기부티콘'이에요. 기프티콘처럼 가볍게. 근데 마음은 무겁게 담았죠."
나눔비타민은 기부티콘을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지 않는다. 일종의 △캠페인 △미션 △퀴즈 참여 등을 통해 지급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기부를 받는다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냥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행해서 받는 것. 그게 훨씬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과는 '숨은 문장 찾기 퀴즈'를 만들었고, 건강관리협회와는 '건강 OX 퀴즈 캠페인'을 운영했다. 일주일에 몇 번 이상 운동하고 인증 사진을 올리면 쿠폰을 주는 챌린지도 있었다. "단순히 나눠주는 구조였다면 오래가지 못했을 거예요. 선한 의도긴 하지만 오래 가려면 역시 시스템이 있어야죠." '정당한 보상 구조'를 만들어 기부를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닌 '자립의 동력'으로 바꿔 가는 것이 목표다.

◆ 하루 50곳, 6개월 간 1만 곳을 방문하다
현재 나눔비타민은 6만여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시작은 조용하고 외로웠다. 김 대표는 하루에도 수십 곳을 직접 발로 뛰었다. "진짜 별의별 방법을 다 썼어요. 엘리베이터 피치처럼 말문을 열고, 반응을 보면서 다음 말을 정하고. 거절을 많이 당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이분들이 귀를 열까' 그걸 배웠죠" 처음에는 손님처럼 들어가야 했다. 정식 미팅이 아니었기에 어색하고 쭈뼛거리면서 말문을 열어야 했다. "사장님, 혹시 기부 관련해서 간단히 여쭤봐도 될까요?" 말을 꺼내는 타이밍, 옷차림, 말투까지. 정장 입고 방문할 때와 학생처럼 입고 갈 때 반응이 다르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분식집은 오후 4시, 카페는 아침 10시. 시간·장소·상황(TPO) 다 분석했어요. 실패한 날엔 왜 실패했는지 메모했고요."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플랫폼은 '현장형'이다. 사장님이 기계를 잘 못 다뤄도 버튼 하나로 끝내는 방식 덕분에 손쉬운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직원이 있어도 인수인계가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아주 쉬운 사용자 매뉴얼을 따로 제작했다. "거절당하며 배운 게 많았어요. 진짜 고맙죠, 지금은. 현장이 저희 프로덕트를 만들어준 거예요."
◆ '나눔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지난해부터는 기업 파트너도 빠르게 늘었다. △POSCO △SK E&S △우아한형제들 △현대차정몽구재단 등 국내 대표 대기업들을 비롯해 △인천시 △원주시 △관악구 등 지자체가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다.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성과 측정 가능한 기부 인프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이 같은 변화 중심에는 데이터가 있다. 기부 흐름부터 성과 리포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까지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기부는 더 이상 감성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이 연결될 때 진짜 도움이 제때 도달하죠."
나눔비타민은 지난해 TIPS(팁스) 프로그램 선정과 프리A(Pre-A)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IBK기업은행·탭엔젤파트너스가 함께 육성을 맡은 'IBK창공 마포' 14기에 선정된 바 있다.
김 대표는 '분배 설계 혁신'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녀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단순하다. 공공복지 예산, 기업 사회적 책임(CSR) 자금, 민간 재단 펀드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실시간으로 흐르고, AI를 통해 자동 성과 측정이 가능한 세상. "기부는 더 이상 수작업이 아니라, 기술로 설계돼야 합니다. 우리는 그 운영체계의 허브가 되고자 합니다."

◆ 아날로그 중심 복지 현장, 디지털로 정밀한 나눔 실천
복지 현장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지금도 비정부기구(NGO)는 수기로 다 입력해요. 전화로 보고하고, 종이로 승인받고요." 기술이 충분한 시대지만, 복지 분야만큼은 여전히 감정과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야말로 가장 정밀해야 하잖아요. 단 한 사람에게도 낭비 없이 닿아야 하니까요."
나눔비타민의 팀은 10명 남짓이다. 데이터·사회복지·경영·개발 전공자들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함께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 문제가 생겨요. 그걸 감정적으로 보기보다 '왜 생겼는가'를 따라가 보면 정말 핵심 하나만 바꿔도 되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를 피하지 않고, 구조로 풀어내는 방식. 그게 지금의 나눔비타민을 만든 핵심 동력이다.
◆ 꼭 필요한 기술 기업, 나눔비타민이 가는 길
김하연 대표는 오늘도 기술과 복지 사이 간극을 좁히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공공 복지 예산과 민간 자원을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하는 '디지털 복지 OS' 구축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곧 서울시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바우처·급식카드·후원금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운영되는 시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 대표가 그리는 10년 후의 나눔비타민은 '분배 인프라' 그 자체다. "우리는 기부와 복지가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 중심에 기술이 있고, 연결이 있습니다." 김하연 대표는 지금도 사람과 사람·자원과 수요·행정과 시장의 틈 사이를 이어가며, 세상의 단절을 연결로 바꾸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말하지 않아도 돌봄이 먼저 도착하는 구조. 도움을 받는다는 낙인 없이 자존감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 기부자도, 이용자도 모두가 연결된 사회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분배의 설계를 기술로 실현할 동반자를 찾고 있습니다. 단순한 자금이 아니라, 함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파트너. 만약 그게 당신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연결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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