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김혜인] 날이 좋았다. 차를 타고 인근 카페에 갔다가 근처 산책로를 돌고 오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땐 가방엔 짐이 가득하다. 기저귀와 물티슈, 장난감 몇 가지와 간식거리가 늘 들어 있다. 아이가 수시로 찾는 물병과 숫자 스티커, 애착 보자기도 챙긴다. 밖에서 식사할 상황을 대비해서 김자반과 음식을 잘게 자르기 위한 주방 가위, 아이용 작은 숟가락도 준비한다.
외출 준비를 마치며 가방을 점검하는데 기저귀 넣는 자리에 물티슈가 없다. 전날 외출했을 때 남편이 아이 기저귀를 갈아 준 뒤 빠뜨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남편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고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다.
새 물티슈를 바로 챙겨야 했는데,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그대로 외출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웠고 아이가 몇 시간 내에 대변을 볼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차에 물티슈가 있었다.
카페 통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 진한 커피와 맛있는 빵, 아이의 환한 웃음. 모든 게 좋았다, 아이가 대변을 보기 전까지는.
남편이 물티슈를 가지러 차에 갔는데 한참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는다. 물티슈를 못 찾으면 전화하거나 직원에게 얻어오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계속 불편해하고 냄새도 나기 시작해서 더 기다리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남편이 돌아왔다. 트렁크까지 살펴봤지만 못 찾았다고.
나는 오래 기다려서 짜증이 나고 남편은 오래 찾다가 지쳐서 물티슈가 차에 있네없네 옥신각신했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물티슈 없어? 하나도?"
내게 여분도 없냐는 듯한 그 말에 기분이 확 상했다. 마치 내게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찾는 것처럼 묻는 게 싫었다. 자기는 한 번도 아이 짐 가방을 챙겨본 적도 없으면서.
직원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 남편을 무시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지에 물을 묻혀서 아이 엉덩이를 닦아 주고 나왔다.
아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산책이 끝날 무렵에 힘들고 졸린지 슬슬 짜증을 냈다.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차에 태우고 카시트 안전벨트를 채우는데 갑자기 분노발작을 일으켰다.
남편이 카시트 옆자리에 미리 앉아 있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카시트에서 기어코 내려오더니 아빠를 밀어버렸다. 자기도 차 밖으로 나와 바닥에 드러누워 연신 발길질을 해대며 울었다.
화창한 봄날 산책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남편도 아이도 미워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없이 운전만 했다. 남편도 아이도 없이 어디론가 가고 싶다. 누군가의 짐을 챙기지 않고 기분을 살필 필요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그렇게 지내 보고 싶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렇게 홀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뒤돌아보니 남편과 아이는 잠들어 있다. 어쩌면 잠든 표정도 저렇게 똑같은지. 정말 미운데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두 남자. 기저귀도 못 뗀 아이와 콘솔 박스에 있는 물티슈도 못 찾는 남편, 이 둘을 두고 내가 지금 어딜 가겠어. 그대로 눈 감으며 나도 화창한 봄날 낮잠을 청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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