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른 미역, 액상란' 원하는 학교 조리실무사들...절박한 요청인가, 과한 요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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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최근 대전의 일부 학교에서 벌어진 급식 중단 사태를 두고 학교 조리실무사들이 급식을 담보로 학생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학교 급식 조리실무사들이 고강도 노동을 더이상 견딜 수 없다며 노동 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급식이 중단된 일부 학교에서는 대체식을 제공하거나 배달 음식을 허용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대전지부는 대전시교육청과의 교섭이 올해 2월 결렬되면서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하고 준법 투쟁을 시작했다. 조리실무사들은 1인당 급식 책임 인원을 80명 이하로 낮춰줄 것과 노동 강도를 높이는 작업의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에는 잘린 고기나 액상란, 자른 미역 등 손질된 식재료 사용, 반찬 수 3찬(김치 포함)으로 제한, 과도한 냉면기 사용 제한, 사골 끓이기 거부, 교직원 별도 배식 거부 등이 포함된다.

급식 조리실무사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절박한 요청일까, 아니면 무리한 주장일까. 실제로 학교 급식실의 노동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조리 중 발생하는 유해가스는 폐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방광염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된 노동으로 이미 허리 통증, 족저근막염, 손목터널증후군 등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조리실무사의 99.2%가 일주일 이상의 통증이나 불편함을 느꼈고 이들 중 92.1%는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급여 또한 낮은 편에 속한다. 무기계약직이지만 방학 중에는 급여가 없고 기본급은 월 206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사율도 높다. 학비노조가 정혜경 의원실과 함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조리실무사의 조기 퇴사율은 60.4%였으며 입사 후 3개월 이내 퇴사율도 15.6%에 이른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적인 인력 부족이다. 대전 A고등학교의 경우 1000여 명의 식사를 10명의 조리실무사가 담당하고 있었고 B중학교는 900여 명의 식사를 조리원 8명이 책임지고 있었다. 일반 공공기관보다 2~3배 높은 식수인원 비율이다.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탓에 일할 조리실무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학교급식 조리실무사의 정원은 총 4만3877명이지만 1748명이 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인천·제주 등 일부 지역은 결원율이 10% 이상에 달하며 신규 채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평균 채용 미달률은 평균 29%였고 서울은 무려 84.5%였다.

노조 측은 "고강도 조리 공정 완화, 전처리 식재료 도입, 적정한 인력 배치, 안전한 노동환경을 요구할 뿐인데 교육청과 학교는 마치 우리가 지나치고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며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해 병가조차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조리실무사들의 현실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무리한 요구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권을 볼모로 한 쟁의 행위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식 중단으로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치 포함 3찬 제한, 덩어리 고기 금지, 냉면기 월 2회 제한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알려지자 "그럼 급식을 간단히 조리된 반가공품 중심으로 제공하자는 것이냐"며 반문하고 있다.

갈등이 계속되자 대전시교육청은 학교 급식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리원 대체전담인력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조리원이 병가나 휴가 등으로 근무하지 못할 경우 교육청이 미리 채용한 전담 인력을 즉시 투입해 급식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교육청은 조리원 대체전담인력제 지원 TF를 구성하고 지난 17일 1차 회의를 개최해 실질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조리실무사들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학생들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이해 당사자 모두가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교육청의 대체전담인력제 도입이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리실무사들의 처우 개선과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급식 시스템 마련이 함께 병행돼야 하겠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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