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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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이너 = 강은영] 날씨가 어지럽다.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맑았다 흐렸다, 추웠다 따스했다, 꽃잎이 흩날리나 싶더니 진짜 눈이 내리고, 이내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종잡을 수 없는 하늘 아래 있자니 기분도 널을 뛴다.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일상의 리듬이 삐걱대고, 말수는 줄고, 침대가 나를 끌어당긴다. 창밖 하늘을 바라보는 일조차 귀찮다. 그럴 땐 이따금 그림책을 펼친다.
<구름의 나날>은 마음이 이유 없이 무거워진 그런 날을 감추거나 버티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날도 찾아오니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조용히 속삭인다.
조금 더 내려온다면 당신은 안갯속을 걷겠죠.
넘어질 수도 있어요.
멈추어 기다리는 게 나을 거예요. (17p)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위로를 건넨다.
이 책은 삶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고,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단단히 힘을 주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마음의 힘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가 조용히 펼쳐 보이는 삶의 단면 그 안에는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 담겨 있다.
주인공은 차를 마시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특별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닿는 것은 아닐까. 걷고, 연주하고, 가만히 앉아 구름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느 날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 자기만의 구름을 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 구름을 숨기고, 또 어떤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이 책은 그 구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구름의 나날>은 ‘위로’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밝아지라고 재촉하지 않고,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도 않는다. 다만 한 걸음 떨어져 옆에 머물며 함께 시간을 견딘다. 어두운 구름을 마주한 마음을 판단하지 않고, 말없이 곁에 남는다.
‘볼로냐 국제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던 모니카 바렌고의 일러스트는 문장을 따라가며 여백을 감각적으로 채운다. 우울과 슬픔의 섬세하고 다정한 풍경은 붉은 기운을 머금은 세피아 톤과 따스한 손끝에서 나온 듯한 터치, 절제된 장면이 감정의 결을 따라 흐른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 장면 사이를 메운 침묵은 어떤 문장보다 큰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을 통해 모두가 금세 회복하고, 밝은 얼굴로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빠르지 않아도 괜찮은’ 위로를 배운다.
잠시 책 속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 구름 속을 걷는 사람, 음악을 타고 흐르는 고요, 함께 있는 고양이. 그 이미지들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삶은 때때로 구름 가득한 흐린 순간을 만든다. 그런 흐린 순간을 마주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다시 걷기 위해, 다시 숨을 쉬기 위해, 구름 아래 선 나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기 위해.
비 온 뒤의 땅처럼
봄의 어루만짐처럼
희망의 약속처럼
삶은 다시 향기로워져요.(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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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책을 최고로 많이 읽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않은 북디자이너. '표1'보다 '표4'를 좋아한다. 인스타그램 디자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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