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만난 과학자들④] “빛이 있으라”… 초강력 레이저로 우주 비밀에 한걸음

시사위크
보랏빛 섬광이 번쩍이는 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의 레이저 실험 시설.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은 2016년 ‘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개발한 장치다. / 시사위크 취재팀
보랏빛 섬광이 번쩍이는 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의 레이저 실험 시설.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은 2016년 ‘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개발한 장치다. / 시사위크 취재팀

 

“빛이 있으라.”

-구약성경 창세기 1장 3절-

시사위크|광주=박설민·김두완 기자  인류에게 빛은 오랫동안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존재다. 실제로 지구상 수많은 생명체는 태양에서 전달되는 빛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빛으로 물질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언뜻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실제로 풀고자 하는 과학적 질문 중 하나다. 빛이 극도로 강해지면 전자와 같은 작은 입자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특정 조건에서는 새로운 입자들이 만들어지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 가운데 일부는 아직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에 과학자들은 지금도 그 비밀을 풀기 위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중심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있다.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을 운영하는 제어실 내부 모습. 마치 미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발사 연구소를 연상케 한다. / 사진=시사위크 취재팀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을 운영하는 제어실 내부 모습. 마치 미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발사 연구소를 연상케 한다. / 시사위크 취재팀

◇ 4,000조 와트의 빛… 지구에서 우주의 극한을 실험하다

지난 15일 방문한 전남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극초단 광양자빔 특수연구동 내부. 어둑어둑한 실험실에서 갑자기 보랏빛 섬광이 번쩍였다. 마치 대형 콘서트장의 레이저빔처럼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하고 빠르게 깜빡였다.

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 연구원들이 실험하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과학자들은 강력한 레이저 장치를 이용, 극한의 환경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경택 연구단장을 포함 총 63명의 연구위원과 기술원, 행정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연구단을 구성하고 있다.

여러 과학자들과 연구단, 연구소를 취재했지만 ‘상대론적 레이저’는 단연 가장 ‘난해’한 주제다. 쉽게 말하면 아주 강력한 빛이 물질과 맞닿으면 물질이 변화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특히 IBS 연구자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기존 과학 이론으로 확인하지 못한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세계 최대 규모의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  내부 모습. / 시사위크 취재팀
세계 최대 규모의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  내부 모습. / 시사위크 취재팀

김경택 IBS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들이 맞는지 보고, 또 틀리면 왜 틀리는지 보고. 굉장히 많은 질문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기초과학연구원과 과학자의 사명이라는 뜻을 밝혔다. 인류가 아직 실험으로 확인하지 못한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셈이다.

연구단의 ‘심장’은 앞서 보라색 섬광을 내뿜은 ‘4페타와트(PW)급의 초강력 레이저 실험 시설’이다. 2016년 ‘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개발한 장치다. 당시 김경택 단장은 해당 연구단에서 그룹리더로 활동했다. 이후 부연구단장을 역임했다. 이후 2024년 12월 상대론적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새롭게 출범, 현재 이 레이저장치의 운영·연구·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레이저’라고 해서 우리가 생활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레이저 포인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페타와트는 1,000조 와트(W)다. 쉽게 말해 가정용 레이저 포인트 20경(10¹⁶) 개와 맞먹는 출력이다. 연구단의 장치는 이보다 4배 많은 80경 개의 레이저 포인트만큼 강력한 빛을 쏜다고 볼 수 있다. 맑은 날 태양빛과 비교해도 1자(10²⁴)배 밝다.

물론 이러한 출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강력한 빛을 극도로 좁은 공간에 모으면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게 할 만큼 강한 전기장이 형성된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관찰하기 어려운 극한의 물리현상을 실험하고 있다.

김경택 단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강력 레이저를 활용하는 연구 환경에서는 기존 장비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정 과제가 생긴다”며 “연구단은 극초단 펄스의 시간 특성을 측정하는 방법을 비롯해 여러 계측 기술을 개발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저 실험을 진행하는 IBS 연구자들의 모습. / IBS 
레이저 실험을 진행하는 IBS 연구자들의 모습. / IBS 

◇ 100경 분의 1초까지 읽는다… 초고속 레이저 기술의 진화

세계 최고의 레이저 시설, 과학자들이 모인 만큼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초고속 레이저 편광 측정’ 연구다. 극도로 짧은 순간 변화하는 빛의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다.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울트라패스트 사이언스(Ultrafast Science)’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빛은 여기저기 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빛이 아주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때 주변 전기장을 마치 고무줄처럼 위아래로 흔들면서 구불구불 진동한다. 이 과정에서 전기장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모양으로 진동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편광(Polarization)’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빛의 진동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수백 아토초(as) 수준에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1아토초는 100경 분의 1초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강한 빛을 받은 원자에서 전자가 빠져나오는 ‘터널링 이온화’ 현상을 활용했다.

GIST 내부에 위치한 ‘페타와트(PW) 레이저 응용실험실’. 초강력 레이저를 물질에 조사하는 실험용 진공 챔버들이 설치된 공간이다. / 시사위크 취재팀
GIST 내부에 위치한 ‘페타와트(PW) 레이저 응용실험실’. 초강력 레이저를 물질에 조사하는 실험용 진공 챔버들이 설치된 공간이다. / 시사위크 취재팀

대중들에게 있어선 굉장히 어려운 이론이다. 또한 ‘이게 무슨 쓸모가 있지?’하는 의문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성과는 레이저의 상태를 보다 훨씬 정밀한 측정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즉, 매우 미세한 단위의 레이저 조절이 필요한 반도체 공정, 광학 측정장비 개발 등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초고속 레이저(Ultrafast Laser)’ 기술 산업은 2033년 106억달러(약 14조6,800억원)으로 현재 대비 4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반도체와 정밀 제조업, 의료 분야에서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빛을 내는 레이저의 활용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택 단장은 “레이저의 편광 상태를 매우 짧은 시간 간격으로 측정하는 기술은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시간에 따라 정밀하게 관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며 “반도체 소재 내부에서 일어나는 초고속 전자 움직임을 연구하는 데도 가능성 있다”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연구단은 레이저와 플라즈마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2차 광원을 개발하고 있다”며 “특히 극자외선과 같은 빛은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경택 단장과 연구단의 궁극적 연구 목표 방향은 ‘우주’를 향하고 있다.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주변에서 일어나는 극한 물리현상을 지구의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 IBS 
김경택 단장과 연구단의 궁극적 연구 목표 방향은 ‘우주’를 향하고 있다.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주변에서 일어나는 극한 물리현상을 지구의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 IBS 

◇ 빛에서 물질이 탄생할까… 미지의 우주 현상에 도전

나아가 김경택 단장과 연구단의 궁극적 연구 목표 방향은 ‘우주’를 향하고 있다.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주변에서 일어나는 극한 물리현상을 지구의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양자전기역학 플라즈마’ 생성이다.

이 현상은 극도로 강한 빛과 에너지가 만나면 전자, 양전자와 같은 입자가 연쇄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말 그대로 빛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창조’되는 것이다.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양자전기역학의 핵심 방향이다.

다만 이는 아직까지 전 세계 어떤 과학자들도 직접 구현하지 못한 영역이다. 연구단은 향후 1~2년 안에 빛을 방출한 입자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복사 반작용’ 실험을 추진하고, 이를 발판으로 5~10년 내 새로운 입자와 플라즈마가 생성되는 현상까지 검증한다는 목표다.

김경택 단장은 “연구자로서의 욕심은 남들이 아직 못 본 것을 우리가 최초로 발견하는 것”이라며 “그중 하나가 중성자별이나 블랙홀 주변에서 생기는 양자전기역학 플라즈마를 관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해 앞으로 거쳐야 할 실험들이 남아 있다”며 “그런 관측이 여기서 최초로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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