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1977년이 2024년에 주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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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유소영] 원래는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쓰고 싶었다. 노동자를 착취하며 부도덕하게 살아가는 부유층과 최저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빈민층 삶이 대립적으로 나온다. 2008년 발간 30주년을 맞아 조세희 작가는 “아직도 청년들이 이 소설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24년,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세희 작가는 하늘에서 여전히 가슴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배경으로 나오는 상대원공단 제빵 공장은 지금도 노동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숨지는 젊은이의 뉴스가 나온다. 열심히 일을 하고 살아도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아, 달라진 것도 있긴 하다. <난쏘공>을 두고 ‘노동자를 팔아먹는 지식인 소설’이라고 깎아내리던 사람들이 보수 쪽으로 갔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나'는 성남에서 초등교사 일을 하면서 셋방살이 끝에 어렵게 집 한 채를 마련하고 문간방을 세놓는다. 이 문간방에 권 씨 가족이 이사를 온다.

 

권 씨는 집 장만을 해보려고 철거민 입주권으로 광주(현재 경기도 성남) 대단지에 20평을 분양받았으나 땅값, 세금 등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정부 정책에 항의하다 사건 주모자로 몰려 징역을 살았다(<난쏘공>과 이 작품에 나오는 사건은 모두 광주 대단지 사건이다).

 

권 씨는 계속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지만, 아침만 되면 출근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사무원 복장에 빛나는 구두를 신고 공사장에서 막일을 한다. 기술도 뚝심도 없는 그가 돈을 잘 벌어올 리 만무하다.

 

그렇게 계속 변변치 않은 벌이를 하는 와중에 권 씨 아내가 출산 도중 위험에 빠져 수술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권 씨는 '나'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십만 원 가까이 빌릴 수 없을까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끼니조차 감당 못 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 일 가지고 어느 하가에 빚을 갚을 것인가. (여기까지 읽고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몇십 년째 오르지 않고 있는 교정비 단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디자인비나 번역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권 씨 요청을 거절한 날 밤 집에 강도가 든다. ‘나’는 덜덜덜 떨며 식칼을 목에 들이댄 강도가 권 씨임을 감지한다. 훔쳐 갈 물건이 없는 데다 정체를 들킨 것을 알고 분개한 강도는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문간방으로 들어가려다 “대문은 저쪽입니다” 하는 ‘나’의 말을 듣고 뒤돌아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그렇게 대문 밖으로 나간 권 씨는 돌아오지 않는다.

 

변변한 세간도 없는 권 씨 문간방에는 반짝이는 구두 여섯 켤레와 먼지를 덮어쓴 구두 세 켤레가 남았다. 권 씨에게는 구두가 열 켤레 있는데 권 씨는 이 구두들을 매일 깨끗하게 정성 들여 닦았다.

 

권 씨는 아마도 1940년대에 태어나서 1960년대에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며 닦던 구두는 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둘씩 사 모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식인으로서 자존심을 매일 공들여 닦던 권 씨는 더 이상 닦을 수 없게 된 망가진 자존심을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책은 9개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마지막 4개 소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가 연작을 많이 쓴 이유는 원래 장편을 쓰고 싶었으나 장편을 쓰는 동안 생활고가 오기 때문에 연작으로 그 마음을 해소한 것이라고 한다.

 

사라졌던 권 씨와 아홉 켤레 신발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뒤 작품을 읽어보면 된다. 표지가 매우 예스럽지만 나는 분명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샀음을 밝힌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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