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소비자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집단소송법' 제정안에 벤처·스타트업계가 반발에 나섰다. 취약한 자본력, 전담 법무 조직 부재 속 천문학적인 소송 리스크와 과거 행위에 대한 소급 적용까지 더해질 경우, 혁신 생태계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경고다.
조정훈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비롯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장 김재원)·벤처기업협회(회장 송병준)·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집단소송법 도입에 따른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파급효과와 대안' 토론회를 7일 개최했다.
이날 현장에는 손미경 초기액셀러레이터협회 부회장,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정책총괄본부장 등 스타트업 유관 협회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법안의 구조적 결함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집중 논의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조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소비자 피해 구제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무 조직조차 갖추기 어려운 스타트업에게 이 법이 감당할 수 없는 족쇄가 돼서는 안 된다"며 "그들이 균형점을 찾고 생태계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 로펌 배만 불리는 美 옵트아웃…소급 적용은 위헌 소지"
전문가 발제에서는 현재 발의된 법안들이 일제히 따르고 있는 미국식 '옵트아웃(Opt·out, 제외 신고가 없으면 전원 판결 효력 적용)' 제도와 '소급 적용'의 위험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석훈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옵트아웃 방식은 기판력의 무제한적 확대로 소송 장기화와 남소를 유발한다"며 "정작 피해자보다 전문 로펌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전락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률 제정 전 종료된 법률관계까지 소급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 원칙, 재산권 보장 정신에 정면 위배된다"며 "옵트아웃 대신 유럽과 일본처럼 공익적 비영리단체가 책임을 먼저 규명한 뒤 개별 배상을 신청받는 '개선된 단체소송(옵트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구태언 법무법인 린 대표변호사도 스타트업이 직면할 실질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구 변호사는 "스타트업은 자본 규모는 아무리 작아도 B2C 특성상 이용자 수가 수백만에서 수천만명에 달한다"며 "소송 한 건만 제기돼도 배상 청구액이 수천억에서 수조원대로 치솟는다"고 강조했다. 확정판결 전이라도 재무제표상 '우발부채'로 반영돼 투자 유치 실패와 폐업으로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소급 적용 전면 배제 △필수 분야 한정 단계적 도입 △소 제기 요건 강화 △영업비밀 보호 위한 증거 개시 제한 등 7대 입법 보완책을 국회에 촉구했다.
구 변호사는 기존 일반 민사소송으로도 피해 구제가 가능함에도 법 시행 전 사안까지 소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반드시 불소급 경과규정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 분야로 단번에 열기보다는 선진국처럼 피해 동질성이 명확한 필수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기업 사냥'식 기획 소송을 막기 위해 소 제기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배후 자본과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통제 필요성도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승소금의 상당액을 변호사와 펀딩 세력이 챙기는 폐단을 막기 위해 배후에서 자금을 대는 소송금융의 출처와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미식 디스커버리처럼 무차별적인 자료 제출을 강제하면 핵심 AI 알고리즘이나 소스코드 등 영업비밀이 강제 노출된다"며 "원고의 구체적 소명이 선행될 때만 제한적으로 자료 제출을 허용하는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U와 영국 등 주요국처럼 '실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삼아야 단 한 번의 판결로 기업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안 내에 사후 영향평가 조항을 의무화해 주무부처가 정기적으로 시장 영향을 점검하고 조기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속도가 생명인 '혁신' 마비…LP 자본 해외 유출 불가피"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투자 경색과 혁신 중단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스타트업의 평균 자산은 85억원 수준에 불과한데, 100만명 대상 1인당 10만원만 청구돼도 1000억원의 배상액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투자를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고, 자율주행 등 신산업 영역의 도전은 완전히 멈춰 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업계 역시 자본 유출을 경고했다. 강종수 CollzDynamics 대표는 "스타트업은 시장에 미완성 제품을 빠르게 내놓고 검증하는 '속도'가 핵심"이라며 "소송 리스크가 커지면 제품 출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출자자(LP)들 역시 리스크를 피해 미국, 동남아 등 해외 펀드로 자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미경 부회장도 공감대를 표했다. 그는 "소송 위험만으로 기업가치 산정이 불가능해져 초기 투자가 동결된다"며 "피해 동질성이 명확한 분야부터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초기 기업에는 자발적 시정 기회를 주는 완충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은 실제 법무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 벤처기업 수치를 언급, 이에 대해 기업들이 받을 리스크를 설명했다.
그는 "자체 조사 결과 사내 전담 법무 인력을 둔 벤처기업은 3%대에 불과하다"며 "소송 대응 역량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기업 공급망 내 구상권 책임까지 전가될 경우 연쇄 부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단 한 건의 소송만으로도 혁신 생태계의 싹이 잘려나갈 수 있다는 현장의 절박함이 확인됐다"며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 오늘 제시된 단계적 도입과 소급 적용 배제 등의 보완책이 반드시 반영되도록 업계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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