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턴’ 최민식, 여전히 설레는 새로운 옷을 입고

시사위크
배우 최민식이 영화 ‘인턴’으로 돌아왔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최민식이 영화 ‘인턴’으로 돌아왔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최민식이 힘을 한껏 덜어냈다. 강렬한 카리스마도, 극을 압도하는 센 얼굴도 내려놓고 평범하고 따뜻한 ‘한국 아저씨’가 됐다. 영화 ‘인턴’을 통해서다. 원작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기호’를 완성한 그는 “우리 식대로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돌아봤다.

‘인턴’은 론칭 3년 만에 패션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CEO 선우(한소희 분)의 회사에 경력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 분)가 입사하면서 시작되는 오피스 라이프를 그린 작품이다. 2015년 개봉한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김도영 감독이 한국의 정서와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풀어냈다. 

극 중 최민식이 분한 기호는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우투투에서 인생 두 번째 출근에 나서는 인물로,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기보다 젊은 동료들과 어울리고 필요한 순간 묵묵히 손을 내밀며 세대와 직급을 뛰어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원작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맡았던 인물이다.

최민식은 과장된 변화 대신 힘을 덜어내고 인물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특유의 유머와 인간적인 온기를 더해 기호를 완성했다. 새로운 옷을 입을 때마다 여전히 설렌다는 최민식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작이 워낙 사랑받은 작품이라 리메이크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 것 같다.

“리메이크의 숙명은 비교다. 더군다나 훌륭한 원작이 있을 때는 남과 비교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담감이 많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뭘 겁내지?’ 싶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다 리메이크하지 않나.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렇고, 소설을 영화화하거나 연극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원작이든, 이미 결과물로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바탕으로 다시 만들기도 한다. 살짝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간단한 문제더라. 그냥 우리 식으로 한번 유쾌하게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한국의 여성 CEO와 한국 아저씨가 부딪혀도 보고 서로 화합하는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니 금방 부담이 해소됐다. 원작과 비교당한다는 건 처음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거다. 어쩔 수 없다. 열심히 해서 우리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했다.”

-최근 보여준 작품 중 가장 편안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땠나.

“그냥 우투투 식구들과 재밌게 놀았다. ‘논다’는 게 작업을 대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친구들과는 세대 차이도 있고, 나도 이제 선배들보다 후배들과 작업하는 경우가 거의 9할이다. 이 친구들과 화합하지 않으면 작품이 나올 수 없으니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작업의 일환이다. 그 친구들에게 가식적으로 대한 건 아니고, ‘물이 되려고’ 노력했다. 네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나게, 세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세모나게 되듯이 한번 어울려보자, 같이 재밌게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한 건 아니다. 항상 더듬이와 레이더는 감정선 같은 걸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릴렉스해야 한다. 각 잡힌 작품을 하든 이런 말랑한 작품을 하든, 배우가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설 때 가져야 하는 예민함에는 덜하고 더한 게 없다.”

자신만의 기호를 완성한 최민식.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자신만의 기호를 완성한 최민식.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원작 속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참고하거나 의식하지 않았다고.

“그 작품 전체가 주는 냄새가 있지 않나. 그런 향기는 남아 있겠지만 몸뚱이가 다르다. 내 외형과 말투가 있는데 그 형님을 아무리 따라가려고 한들 되겠나. 정서적으로도 이 작품을 하면서 차별화를 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계속 ‘우리 식의 해석’을 강조했다. 그게 뭐냐면 ‘한국 아저씨’다. 세련된 서양 남자 특유의 아우라나 사고방식보다는 한국 아저씨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도 선우가 딸처럼 느껴지는 정서를 넣었다. 서양 사람들이 봤을 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표님’이라고 하다가 마치 아버지가 딸한테 ‘너 정신 안 차려?’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거기에서 애정이 묻어나오는 거다. 그런 정서를 입력해 놨기 때문에 원작을 흉내 낼 수도 없었다.” 

-김도영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여성 감독과의 작품은 처음이더라.

“그런가? 그런가 보다. 내심 여성 감독이 오길 바랐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이 있을 것 같았다. 김도영 감독도 역시나 그랬고, 배우 출신이지 않나. 그래서 그런지 배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굉장히 넓은 마음으로 판을 깔아줬다. ‘선배님, 한번 해보세요’라고 하면서 내가 주저할 필요가 없게 해줬다. 그냥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이 참 고마웠다.”

-‘최민식’이라는 배우에게 현장에서 의견을 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나.

“있지. 장재현(‘파묘’)도 그렇고.(웃음) 감독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야기하지 못하면 안 된다. 나 역시 ‘내가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라고 하면 안 된다. 군대가 아닌 이상 이 작품이 원하는 시퀀스와 정서를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계급장을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 그러려면 군대 가서 말뚝 박아야지.(웃음) 나 역시 그렇고 내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디렉션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말이 안 된다. 단 내가 생각한 것과 감독이 생각한 것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내가 해석한 건 이렇고 감독의 해석은 다르다면 일단 감독이 원하는 걸 먼저 해서 보여준다. 그다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보는 건 어떠냐’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최민식이 한소희와 호흡한 소감을 전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최민식이 한소희와 호흡한 소감을 전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한소희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함께 작업해 보니 어땠나.

“사실 그렇게 젊고, 특히 패셔너블한 여자배우와 내가 언제 작업해 보겠나. 굉장히 신세대이지 않나. ‘너무 세대 차이가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의외로 털털하고 소탈했다. 먼저 다가와 주기도 해서 좋았다. 쿨하고 명쾌하더라. 그리고 보였다. ‘아, 이 친구가 이 작품에 목숨 걸었구나. 나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싶었다. 외형적인 조건 자체가 굉장히 어필하는 게 있지 않나. ‘또 다른 줄스가 나오겠구나. 한국형 줄스가 나오겠구나’ 싶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만족한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표현해내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있다. 배우에게는 그게 있어야 한다.”

-외적으로도 신경 쓴 게 있다면. 

“그동안 뚱뚱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으니까.(웃음) 작품을 위해서 감량한 것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동안 막살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더라. 건강에 우려가 생겨서 이번 기회에 한번 오지게 마음먹었다. 누가 ‘위고비 같은 거 맞은 것 아니냐’고 하더라. 천만에. 세상에 거저먹는 게 어디 있나. 부단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했다. 몸은 정직하다. 그거 사서 맞을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술을 마시겠다.(웃음) (의상은) 의상팀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의상팀장이 나와 ‘카지노’도 했고 같이 작업을 많이 해서 나를 잘 안다. 시안 같은 걸 가져오면 ‘콜, 콜, 콜’ 했다. 또 명품 브랜드에서 협찬해 주겠다는 제안도 들어와서 그런 양복도 입어보고 했다. 고마웠다.”

-편안하고 말랑한 모습도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보여드릴 게 많다. 이건 맛보기다.(웃음) 센 역할은 그만해야겠다. 너무 세게 하니까 계속 밈으로 뜨더라. 물론 고맙다. 그만큼 각인이 됐다는 거니까. 배우 입장에서는 전작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게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걸 잊고 지금의 작품에 포커싱이 돼야 하는데, 그것도 관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니 어떻게 하겠나. 나로서는 이번 작품이 나름대로 도전이었다. 아니, 도전씩이나.(웃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거고 새로운 옷을 입은 거니까. 이럴 때 굉장히 묘한 쾌감이 있다. 결과물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나 스스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노력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 일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그렇다고 손오공처럼 매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다만 정서적으로나 외피로나, 구도 자체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때는 설렘이 있다. ‘파묘’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컬트라는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 때는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가 크고, 어떤 전투력이 뿜뿜한다. 그 맛에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다.”

여전히 뜨거운 최민식.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여전히 뜨거운 최민식.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드니로는 노년에 ‘인턴’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최민식에게 지금은 배우로서 어떤 시기인가.

“그 형님은 노년에 했지만 나는 아직 청년이다.(웃음) 다양한 걸 하고 싶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니까 이제 조금은 세상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알 만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이 있다. 다만 이 트렌드가 내 나이의 배우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써먹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나한테도 어느덧 생겼다. 최민식, 아직 써먹을 만하다.(웃음) 묵은지다, 묵은지. 

우리나라 관객들과 더 새로운 얼굴로 소통하고 싶다. 외국을 보면서 부러운 건 굉장히 다양한 작품이 기획된다는 거다. 고령의 배우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명품 연기를 보여주고, 지금까지도 명작들을 만들어내지 않나. 우리는 그런 부분이 조금 협소한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다양한 작품이 세상에 나와서 다양한 계층과 소통했으면 좋겠다.

나는 배우로서 나이 먹는 게 좋다. 철모르고 이해의 폭이 얄팍할 때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옛날에는 이 맛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네’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배우의 눈과 가슴도 그렇게 숙성돼 있을 때가 좋은 것 같다. 물론 젊었을 때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있다. ‘내가 이렇게 멋있다’고 젊음을 뽐낼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게 우리네 삶을 그리고, 삶의 애환과 기쁨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면 나이 먹은 배우들이 그 깊이를 표현하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나.”

-여전히 해보고 싶은 작품과 표현하고 싶은 인물이 많나.

“나는 문학적인 냄새가 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작업이 좋다. ‘오디세이’를 보면 신화이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도 그렇게 잘 만들지 않나. 우리 역사에도 얼마나 훌륭한 서사가 많은데 잘 안 한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해석해서 만드는 작업도 좋다. 다양한 감독들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자본도 마음도 넉넉해서 그런 감독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갑자기 답답해 죽겠네.(웃음) 나도 내 것을 하다 보면 나중에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생긴다. 배우로서 더 참여하고 싶고, 다양한 작품을 만져보고 냄새 맡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서 이런 것도 표현해 보고 싶고 저런 것도 표현해 보고 싶다.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나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의 내면 같은 것들, 어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욕심이 많이 생긴다.”

-배우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좋은 작품을 하는 거지. 목표랄 게 뭐가 있겠나. 여기서 말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게 아트나 예술영화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도 오락적 기능이 굉장히 두드러진 영화지만 나쁜 영화는 아니지 않나. 영화라는 게 그런 거다. 아주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도 있고, 굉장히 철학적인 화두를 던질 수도 있다. 어떤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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