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때로 다시 싸워야 한다. 전장은 끝났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더 어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몸에 남은 상처는 비교적 쉽게 보이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스스로 설명하고 증명해야 한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또 다른 전장이 열리는 순간이다.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 행정사는 그 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다. 그는 국가유공자 등록과 보훈 심사 과정에서 군 복무 중 외상을 겪은 장병들을 대리하고, 이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군인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그의 업무에서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절박한 영역이다.
안 행정사는 군인 PTSD를 두고 "살아있는 게 죄가 됐다"고 말했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죄책감과 의심, 입증의 부담을 떠안는다는 의미다. 그는 "병이 됐고, 죄가 됐다"며 "병사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 말은 그저 감정의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군인 PTSD가 한국의 보훈 체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뤄져 왔는지를 압축하는 문장이다. 국가가 먼저 기록하고 확인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뒤늦게 병원 기록을 만들고, 동료 진술을 모으고, 자신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다시 말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남았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가장 늦게 남았다
안 행정사가 가장 먼저 꺼낸 문제는 계급과 보상의 간극이다. 같은 전투와 작전 안에 있었지만, 제도 안에서 기억되는 방식은 같지 않았다.
그는 제1연평해전을 예로 들며 "벙커에 있던 작전장교도 훈장을 받았는데, 수병들은 표창 1개와 위로 격려금 20만원을 받았다"며 "군 내부 구조가 계급 높은 분들부터 훈장을 받는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참전 수병 일부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할 때 지휘관에게 확인서라도 하나 받고자 했지만 써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 대목은 군인 PTSD 논의에서 자주 가려졌던 문제를 드러낸다. 전투의 기억은 모두에게 남지만, 그 기억이 제도 안에서 인정되는 방식은 균등하지 않았다. 특히 병사와 수병은 전투 현장에 있었음에도,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경험을 증명할 자료와 권한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안 행정사는 제1연평해전 참전 장병 일부가 PTSD로 국가유공자 요건 심사를 신청했지만 비해당 판단을 받은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제1연평해전에 참전한 장병 8명이 지난해 초 PTSD로 요건 심사를 신청했으나 모두 비해당 판단을 받았다"며 "이들은 대부분 병사 출신인데, 먼저 챙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늦게 남아 있다"고 호소했다.
천안함과 제2연평해전 사례도 다르지 않다고 봤다. 안 행정사는 "천안함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 중에는 부사관과 수병이 있고, 제2연평해전도 부사관 아니면 병사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전투의 최전선에 있었던 이들이 제도 안에서는 가장 늦게 도착하는 역설이다.
그는 이를 단순한 보상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안 행정사는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을 해준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상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지의 문제라는 의미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밀려나는 상처
군인 PTSD가 보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안 행정사는 '개인입증주의'를 꼽았다. 국가가 먼저 외상 경험을 확인하고 장기 추적하는 구조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자료를 모아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PTSD의 주요 비해당 사유는 '정신과 방문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전투와 피격, 포격을 겪었더라도 정신과 진료 기록이 없으면 제도 안에서 외상 후유증을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기록이 없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군 조직 안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일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안 행정사는 "정신과 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분들이 많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하면 주변에서 '너 정신병자냐', '너 문제 있냐'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 말은 군인 PTSD의 사각지대가 왜 반복되는지를 보여준다. 증상을 말하면 낙인이 되고, 말하지 않으면 기록이 남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면 심사에서 밀려난다. 결국 침묵은 다시 개인의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PTSD를 인정받기 위한 절차도 간단하지 않다. 안 행정사에 따르면 급성 스트레스 반응 소견서, 1년 이상 지속된 투약 및 입원 기록, 심리검사를 통한 PTSD 확정 진단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사건 직후에는 본인이 PTSD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회피하거나, 전역 이후 뒤늦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안 행정사는 "의료 입증은 되는데 직무 입증이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직무 입증은 되는데 의료 입증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민간인이 이 두 가지를 찾아서 입증하기는 어렵고,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증명서를 하나라도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은 길고, 거칠다. 상담부터 보상까지 최소 2~3년이 걸린다. 입증 자료를 모아 신청한 뒤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이후 신체검사도 거쳐야 한다. 준비 기간만 1년 이상, 심의 기간도 1년가량 걸릴 수 있다.
그는 "보상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며 "당사자가 이미 힘든 상태인데, 그 고통을 다시 정리하고 입증해야 한다"고 짚었다. 상처를 인정받기 위해 상처를 다시 꺼내야 하는 구조다.

군 관련 PTSD 인정 사례가 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상처가 뒤늦게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안 행정사는 그 배경으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문제 제기, 전문가들의 공론화, 베트남 참전군인의 지연성 PTSD 인정 사례 등을 꼽았다.
그러나 제도가 움직이는 동안 당사자들의 시간은 이미 오래 흘러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버텼고, 누군가는 진료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제도 밖에 머물렀다.
PTSD는 사건 직후 곧바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일상생활을 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만기 전역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상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버틴 시간 때문에 고통은 더 늦게, 더 복잡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안 행정사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무거운 입증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군 복무와 전투 경험에서 비롯된 상처라면 국가가 먼저 확인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는 '관리'로, 한국은 '입증'으로
안 행정사의 문제의식은 해외 사례와도 맞닿아 있다. 앞선 해외 사례 비교에서 확인했듯 미국과 영국, 호주, 이스라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군인과 참전군인의 PTSD를 제도 안에서 다뤄왔다. 핵심은 진단과 치료, 보상, 사회 복귀를 따로 떼어두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려 한다는 데 있다.
안 행정사는 특히 미국의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은 재향군인부 산하에 PTSD 국가지원센터를 운영한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은 PTSD를 참전군인 정책의 핵심 영역 중 하나로 두고, 연구와 치료, 교육 자료를 축적해왔다. 군 복무 이후 우연히 나타난 개인 증상으로만 보지 않고, 국가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전쟁 이후의 비용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캐나다 사례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안 행정사는 캐나다가 PTSD에 관한 연방 차원의 기본계획을 통해 연구와 교육, 인식 제고, 치료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췄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장 응급처치자, 소방관, 군인, 교정직원, 캐나다 왕립기마경찰대원 등 외상 위험에 노출되는 직군을 정책 대상으로 넓게 본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가 해외 사례에서 보는 것은 제도 이름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이다. 한국은 개인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가 강하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국가가 외상 경험과 치료 필요성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안 행정사는 국내 국가트라우마센터의 대상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있지만,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대상에 충분히 들어가 있지 않다"며 "PTSD 대상 자체가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군인 PTSD를 보훈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적 트라우마 관리 체계 안에서 다뤄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전쟁과 작전, 재난 대응, 치안·소방 등 국가 기능을 수행하다 외상을 겪은 이들을 별도의 정책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살아있는 게 죄"가 되지 않으려면
안 행정사의 인터뷰에서 가장 무겁게 남는 말은 "살아있는 게 죄"라는 문장이다. 그것은 생존 장병 개인의 감정을 대신한 표현이기도 하고, 한국의 보훈 체계가 놓쳐온 시간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사람은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후의 삶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지 않는다면, 생존은 또 다른 고립이 된다. 전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증상은 뒤늦게 나타나며, 제도는 그때서야 당사자에게 증거를 요구한다.

안 행정사는 병사와 수병을 먼저 봐야 한다고 했다. 계급이 낮았다는 이유로, 진료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만기 전역했다는 이유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가능했다는 이유로 상처가 가볍게 취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TSD는 버텼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버틴 시간 때문에 더 늦게 드러날 수 있다. 군 조직 안에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시간, 전역 이후 혼자 버틴 시간, 심사 과정에서 다시 증명해야 했던 시간까지 모두 군인 PTSD가 남긴 기록이다.
안 행정사는 "병사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호소가 아니다. 군인 PTSD를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문장이다. 국가는 전사자의 이름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살아 돌아온 이들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도 함께 기록해야 한다.
전투 이후의 시간은 개인에게만 남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고통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지 않도록, 국가는 먼저 기록하고 확인하고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살아있는 게 죄"라는 말이 더 이상 생존 장병의 현실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보훈의 다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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