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츠가 만든 세계 최초 車, ‘페이턴트 모터바겐’ 직접 타보니

마이데일리
칼 벤츠가 특허 출원한 세계 최초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 /함부르크(독일) = 윤진웅 기자

[마이데일리 = 함부르크(독일) 윤진웅 기자] 말 두 마리도 없고 문도 없고 지붕도 없다. 그런데 이 낯선 탈것이 자동차의 시작이었다. 1886년 1월 29일 칼 벤츠가 ‘가스 엔진으로 구동되는 차량’ 특허를 출원한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오늘날 자동차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특허번호 37435는 사실상 자동차의 출생증명서다.

직접 마주한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첫인상은 묘했다. 얼핏 보면 두 개의 거대한 바퀴 위에 가죽 소파를 덜렁 얹어놓은 듯했다. 정면에서 보면 자동차라기보다, 상류층 전용 자전거 마차 같았다. 1800년대 유럽 시대극에서 귀족이 타고 지나갈 법한 비주얼이지만 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감각적이고 세련됐다. 낡은 유물이 아니라, 시간여행 장치에 더 가까웠다.

재미있는 건 이 차가 처음부터 자동차처럼 생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칼 벤츠는 말이 끄는 마차에 엔진만 얹는 방식이 아니라, 엔진 구동을 전제로 한 새로운 탈것을 따로 설계했다. 그래서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세 바퀴와 가벼운 프레임, 단기통 4행정 엔진을 하나의 완결된 개념으로 묶은 첫 자동차로 평가된다. 배기량은 954cc, 출력은 0.55kW, 즉 0.75마력에 불과했고 최고속도는 약 16km/h 수준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전동 킥보드와 경쟁해도 간당간당한 숫자지만, 1886년에는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작동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플라이휠을 손으로 직접 돌려 엔진을 깨우고,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좌석에 올라타면 된다. 요즘 차처럼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계기판을 확인하고, 변속 레버를 만지는 절차 같은 것은 없다. 시동을 건다기보다 기계를 깨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끌 때도 마찬가지다. 점화를 차단하면 끝이다. 참으로 아날로그하고, 그래서 더 낭만적이다.

운전법은 더 간단하다. 왼쪽 레버를 뒤로 당기면 전진하고, 앞으로 밀면 브레이크다. 얼마나 당기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끝까지 당기면 최고속도다. 스티어링 휠은 없다. 대신 가운데 놓인 조향 장치는 맷돌 손잡이처럼 생겼다. 이것을 좌우로 스윙하면 앞바퀴가 방향을 바꾼다. 자동차의 조향장치라기보다, 수동 농기구와 기계 장난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다. 단순한데, 막상 손에 쥐면 또 이상하게 진지해진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플라이 휠을 돌려 직접 엔진을 깨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함부르크(독일) = 윤진웅 기자운전석 기준 왼쪽에 가속과 감속을 담당하는 레버가 달려 있다. /함부르크(독일) = 윤진웅 기자

출발 전에는 생각보다 겁이 났다. 좌석에 올라가는 순간 360도가 전부 열려 있고, 차체 중심이 꽤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높이는 높고, 감쌀 것은 없고, 잡아줄 장치도 거의 없었다. 요즘 자동차 감각으로 본다면 보호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올라탄다는 느낌에 훨씬 가까웠다. 그래서 더 벅차다. 자동차를 탄다기보다, 역사의 한가운데에 몸을 얹는 기분이 든다.

시승은 바이젠하우스 마당을 한 바퀴 도는 짧은 코스였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꽤 재밌다. 놀이기구에 가깝다. 완전 개방형이다 보니 속도는 실제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지고, 중심이 높은 탓에 코너에서는 약간 불안정한 느낌도 든다. 단순하지만 어렵고 조향 반응도 직관적이고 예민하다. 당황해서 속도 조절을 놓치면 옆으로 쏠려 넘어질 것 같은 상상도 스친다.

새삼 칼 벤츠의 아내인 베르타 벤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베르타 벤츠는 1888년 8월, 남편 몰래 두 아들과 함께 초기형 자동차를 끌고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장거리 주행에 나섰다. 왕복 약 180km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중간에 약국에서 연료를 구하고, 닳은 브레이크는 수선하며, 막힌 연료관은 모자핀으로 뚫어가며 끝내 여정을 마쳤다. 이 사건은 자동차의 개념을 발명품에서 이동수단으로 바꿔놓았다. 짧게 한 바퀴 돌아본 기자도 살짝 긴장했는데, 180km를 달린 베르타 벤츠는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동차와 비교해 승차감을 평가하긴 어렵다. 세 바퀴에 의지해 달리는 구조라 노면 정보가 거의 여과 없이 올라왔다. 특히 유럽 구시가지 특유의 울퉁불퉁한 코블스톤에서는 '노면을 읽는다'는 것을 넘어 '노면과 대화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차로 슬라럼 대회를 열면 꽤 흥미롭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페이턴트 모터바겐 시승에 앞서 벤츠 관계자와 운전 방법을 숙지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조향 장치, 왼손으로는 가속 레버를 잡고 본격적인 출발 준비를 마쳤다. /함부르크(독일) = 윤진웅 기자

짧은 시승 뒤 가장 크게 남은 것은 기술보다 존경심이었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원시적이다. 문도 없고, 에어백도 없고, 서스펜션도 지금처럼 정교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원시성 때문에 오히려 대단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왜 그렇게 강한 브랜드 서사를 가질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140년 동안 바뀐 것은 기술의 크기와 속도였다. 이동의 미래를 먼저 만들겠다는 벤츠의 태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자동차 특허 출원 140주년을 기념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도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전시 차량으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함부르크(독일) = 윤진웅 기자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시승기] 벤츠가 만든 세계 최초 車, ‘페이턴트 모터바겐’ 직접 타보니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