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사법살인과 같은 최악의 국가폭력 범죄자에게 준 훈·포장 박탈은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경찰이 독재정권 하에서 ‘국가폭력’에 가담했던 이들에게 수여됐던 서훈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는 기사를 공유하면서다. 해당 기사에는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의 사례가 담겼다. 그가 생전 받았던 상훈은 알려진 것만 16개. 하지만 공식적으로 박탈된 것은 하나뿐이라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가 단순히 이 전 경감에게만 국한된 사례가 아닌, 다수의 국가폭력 가담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각 행정안전부는 국가폭력 및 반헌법 행위와 관련해 수여된 정부 포상에 대한 전수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발맞춰 국회도 입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포상의 근거가 되는 상훈법 개정을 통해 국가폭력 관련 부적절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2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상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 국가폭력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서훈을 취소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여수‧순천 10·19 사건 등 과거 국가폭력에 가담한 가해자들의 상훈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서훈 취소’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22대 국회에서는 비슷한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문대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훈법 일부개정안’도 같은 맥락이다. 제주 4·3사건, 5·18 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행위에 적극 가담한 자를 명문화함으로써 서훈 취소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결정하면 서훈을 취소하도록 규정했다.
◇ 부적절 서훈 대상자 ‘취소 근거’ 마련
이러한 법안은 궁극적으로 현행 상훈법이 국가폭력과 반헌법적 행위에 대해 서훈을 취소할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상훈법은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았거나 적대지역(敵對地域)으로 도피한 경우 △사형·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상에서는 서훈 취소와 관련한 ‘빈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주도적으로 자행한 폭력에 가담해 당시 기준으로 ‘공적’이 됐던 사안을 ‘거짓’으로 볼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다. 기록의 소실 등으로 인해 개인의 공적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제주 4·3사건 진압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고(故) 박진경 대령의 경우 을지무공훈장 서훈 배경 등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 논란이 된 바 있다.
발의된 상훈법 개정안 중에서는 심사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이 비공개로 운영돼 심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회의 진행 내용과 결과, 출석위원 수와 성명 등을 기재한 회의록을 작성하고 공개하도록 했다. 서훈 제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발의된 상훈법 개정안 중에는 훈장 또는 포장을 받은 사람이 스스로 반납 의사를 밝힌 경우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주희 민주당 의원)과. 서훈 대상자의 사회적·역사적 평가에 따라 ‘서훈 변경’을 가능토록 하자는 법안도 있다. 임호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서훈 수여자의 역사적 평가가 현저히 달라지거나,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 서훈 대상자의 공적을 다시 심의해 서훈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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