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페라리가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순수 전기 스포츠카를 공식화했다. 모델명은 '페라리 루체(Ferrari Luce)'.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하는 이름과 함께 공개된 것은 외관도, 성능 수치도 아닌 실내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였다. 전기차 시대를 맞이한 페라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이다.
페라리는 이번 공개를 통해 전동화를 파워트레인 변화가 아닌 브랜드 철학의 확장으로 정의했다. 루체는 특정 기술을 설명하는 이름이 아니라, 페라리가 전기차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집약한 개념에 가깝다.
전동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핵심은 여전히 '페라리다움'을 어떻게 유지하고 재해석하느냐에 있다는 메시지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루체의 인테리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먼저 공개됐다는 점이다. 이는 페라리가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축을 주행 감각 이전의 경험 설계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차는 엔진 사운드, 변속 충격, 회전 질감이라는 전통적 감각 요소가 사라진다. 페라리는 이 공백을 단순히 인공 사운드로 채우는 대신, 조작·촉감·시각적 피드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몰입 구조를 선택했다. 정밀 가공된 기계식 버튼과 다이얼, 토글 스위치에 다기능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인터페이스는 완전한 터치 중심으로 흐르는 최근 자동차 트렌드와도 결을 달리한다.
이는 물리적 조작감을 통해 운전자와 기계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전기차 시대에도 페라리는 여전히 운전하는 행위를 중심에 놓겠다는 선언이다.
루체는 단순히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다. 페라리는 이 모델을 통해 전기차 라인업의 중추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네이밍 체계에서 벗어나, 하나의 철학을 상징하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전동화가 보조 트랙이 아니라 본선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빛이라는 개념은 △명료함 △방향성 △선도성을 모두 내포한다. 페라리는 루체를 통해 '전기차로 간다'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비출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는 성능 수치나 제로백보다 훨씬 브랜드다운 접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러브프롬(LoveFrom)과의 협업이다. 애플 디자인의 상징적 인물인 조니 아이브(Sir Jony Ive)와 마크 뉴슨(Marc Newson)이 설립한 이 그룹은 지난 5년간 루체 프로젝트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이는 단순한 외주 디자인 협업이 아니다. 페라리는 러브프롬에 초기 콘셉트 단계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했고, 그 결과 소재 선택부터 인체공학, 인터페이스 논리까지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UX)을 새롭게 정의했다. 이는 자동차를 이동수단이 아닌 사용자 경험의 총합으로 바라보는 테크 업계의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번 인터페이스 공개 행사가 열린 것도 상징적이다. 기술과 UX의 글로벌 중심지에서 페라리는 전기차 시대의 페라리를 선언했다.
루체의 인테리어는 페라리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장인정신을 전기차 문법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100%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을 CNC 가공해 제작한 금속 버튼과 패널, 아노다이징 공정을 통해 완성된 미세 구조 표면은 친환경이라는 명분을 넘어 소재 자체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ESG 대응이 아니다. 페라리는 지속가능성을 타협이 아니라 완성도의 문제로 다룬다. 유리 역시 코닝 퓨전5 글라스를 적용해 시인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학은 전기차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페라리 루체는 아직 달리지 않았다. 외관도, 성능 수치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하나는 분명해졌다. 페라리는 전기차를 통해 기존의 페라리를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페라리다움이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을 선택했다.
2025년 마라넬로 e-빌딩에서 핵심 기술을 선공개했고, 2026년 5월 이탈리아에서 외관 공개와 함께 론칭 캠페인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 루체는 단순한 신차가 아니라, 전동화 시대에 페라리가 어떤 브랜드로 남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시대에도 페라리는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빠른가,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이 차는 페라리인가'라는 질문이다. 루체는 그 답을 빛으로 비추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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