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중견 제약사 보령이 우주헬스케어를 신사업으로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
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김정균 보령 대표는 우주산업을 장기 성장성이 높은 미래 분야로 판단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가 보유한 기존 기술·조직 역량과 비교해 사업 난도가 높고, 막대한 자본이 장기간 투입돼야 한다는 점에서 재무적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정균 대표가 우주 헬스케어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19년 미국 휴스턴의 존슨 우주 센터 방문이다. 그는 당시 우주 환경에서의 환자 치료와 건강 관리 방식에 대해 질문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험을 계기로 제약사가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고, 이는 이후 보령의 우주사업 구상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경영 메시지와 전략 방향에서도 드러났다. 김 대표는 2022년 대표 취임 당시 회사명을 ‘보령제약’에서 ‘보령’으로 변경하며, 제약 중심 이미지에서 벗어난 사업 확장 가능성을 열어뒀다. 같은 해 제약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우주 사업 진출 구상을 공식화하며, 우주를 미래 사업 영역으로 제시했다.
당시 김 대표는 CEO 레터에서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의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산업의 경계를 넘어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시야를 확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두고 회사 차원의 중장기 전략이라기보다 오너의 개인적 비전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반영된 결정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보령의 핵심 수익원은 여전히 제약 사업이며, 신약 연구개발(R&D)과 글로벌 시장 확대 등 본업에서도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주주들 사이에서는 우주 산업이 보령의 중장기 성장 전략에서 어떤 실질적 의미를 갖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주산업 특성상 대규모 자본과 장기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빅파마인 머크,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이 무중력 환경을 활용한 연구를 신약개발에 접목하고 있지만, 매출 규모와 R&D 투자 여력 측면에서 보령과는 차이가 크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글로벌 빅파마는 연 매출이 70조~80조원, 연간 R&D 투자만 10조원 이상인 반면, 보령은 연 매출 1조원, R&D 투자 1000억원 미만 수준이다.
매출은 약 70~80배,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200배 안팎의 격차가 난다.
글로벌 빅파마가 연간 수십조원을 R&D에 투입하며 우주 연구를 여러 연구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하는 것과 달리, 보령의 우주 투자는 기업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이에 대해 보령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의 우주 연구 사례가 단순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현실이지만, 이들이 보령의 직접적인 레퍼런스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우주 비즈니스가 반드시 대규모 자본과 체급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라고 처음부터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보령은 자사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약 기업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의 우주 헬스케어 모델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령은 2022년 미국 민간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에 6000만달러(약 840억원)를 투자해 지분 2.68%를 확보했다. 2024년에는 액시엄 스페이스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을 담당하는 국내 합작법인 브랙스 스페이스를 설립했다. 보령은 이 법인에 약 5억1000만원을 출자해 민간 우주정거장 내 연구·실험 플랫폼 사업을 공동 추진하고 있으며, 모듈 개발과 운용권 확보에도 참여하고 있다.
보령 관계자는 “그간 우주 사업은 외부 기업과의 협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생태계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올해부터는 실행 가능성을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인 단계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며 “재무적 투자에 그치지 않고, 우주 헬스케어 관련 플랫폼 구상 과정에 참여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HIS(Humans In Space·휴먼 인 스페이스)’ 프로그램이다. 보령은 2022년 세계 처음으로 열린 우주 헬스케어 스타트업 경진대회 ‘Care In Space(CIS·케어 인 스페이스)’를 열고 우주 환경에서의 헬스케어 기술 적용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이 CIS를 기반으로 2023년부터 우주의학 개념을 포함해 신약 개발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한 것이 HIS 프로그램이다. HIS는 우주의학 분야 스타트업과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성격을 갖는다.
HIS는 단순한 우주의학 기술 발굴에 그치지 않고 △우주 체류 기술·인프라 확보 △우주 환경을 활용한 지구 보건 문제(암·노화·정신질환 등) 해결 모델 탐색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부 기업에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실험과 연계된 연구비 또는 투자 지원이 검토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보령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액시엄 스페이스 등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50여개 기업·기관과 파트너십을 구축한 상태다.

다만 내부 전문성과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보령 이사회에는 항공·우주 분야 출신 인사가 없고, 관련 실무 경험을 갖춘 인력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지난해 국방·항공 네트워크를 담당하던 박인호 사외이사가 주이스라엘 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사회 내 관련 전문성은 오히려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보령의 우주사업이 시장에서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는 배경에는 본업의 실적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보령은 지난해 2월 김정균·장두현 각자대표 체제에서 김정균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이후, 매출 1조360억원과 영업이익 855억원(전년 대비 21.3% 증가)을 기록했다.
보령은 우주사업이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제약 연구의 범위와 효율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의학 시장 규모는 2023년 7억7000만달러(약 1조1290억원)에서 2030년 16억달러(약 2조35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김 대표 역시 제약은 ‘핵심 사업’, 우주는 ‘전략 사업’으로 구분하며, 우주사업이 제약을 대체하는 사업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김 대표는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우주의학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라고 강조했다.
보령 관계자는 “우주 사업은 제약을 대체하는 사업이 아니라, 제약을 중심에 둔 장기 전략의 일부”라며 “제약 사업을 통해 창출되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이어간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 성과를 전제로 한 사업이 아니라, 보령이 중장기적으로 어떤 기업으로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의 문제”라며 “우주 헬스케어는 그 연장선에서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주를 향한 보령의 선택이 중장기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향후 본업과의 접점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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