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앞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 분). 숫자는 엄마의 음식을 먹을수록 하나씩 줄어들고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 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하민의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뒤집힌다. 엄마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하민은 온갖 핑계를 대며 집밥을 피하기 시작하는데…
영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거인’ ‘여교사’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응시해 온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각색했다. ‘기생충’ 이후 다시 모자 관계로 만난 최우식과 장혜진, 그리고 공승연이 합류해 영화의 정서를 완성한다.
숫자는 보통 결과를 증명하는 도구다. 그러나 ‘넘버원’에서 숫자는 사랑의 유통기한이자 이별을 미루고 싶은 마음의 기록으로 기능한다.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 그것이 0이 되는 순간 죽음이 도래한다는 설정은 판타지에 가깝지만 영화가 향하는 지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숫자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하민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 된다. 먹을 것인가, 미룰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영화는 이 반복되는 질문 속에서 남겨질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묻는다. 사랑과 두려움이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의 복잡한 마음을 따라가며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에 닿는다.
결국 영화 속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줄어드는 시간이 아니라 미뤄온 마음이다. 끝을 알게 된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의 정직함은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횟수가 눈에 보인다면, 우리는 사랑을 미루는 데 조금은 덜 익숙해지지 않을까.
다만 소재의 힘에 비해 감정의 파고는 크지 않다.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감정이 정점에 이르기 전 멈춰 선다는 인상이 남는다. 이에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는 공감하게 되지만 감정적으로 깊게 잠기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민의 연인 려은 캐릭터의 활용도 아쉽다. 그저 이야기의 균형을 위해 배치된 존재처럼 느껴진다. 특히 관계의 변화가 반복되지만 감정의 축적보다 상황의 전환이 먼저 인식돼 감정의 맥락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
배우들은 제 몫을 해낸다. 최우식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로 하민을 설득력 있게 완성한다. 침묵과 망설임으로 감정을 눌러두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감정을 터뜨리며 하민의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장혜진은 친절하지 않은 삶, 고된 일상 속에서 그럼에도 웃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은실을 현실 속 존재하는 우리네 엄마의 얼굴로 빚어낸다. 과장 없이 쌓아 올린 감정은 먹먹한 울림으로 남는다. 사랑스럽고 아프다.
김태용 감독은 “각자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누군가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영화를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여태까지 만든 영화와는 다르게 밝고 따뜻하며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러닝타임 105분, 오는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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