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지난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 정상회담 기간에 젠슨 황이 1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삼성동 치킨집에서 국내 재계 수장과 만난 엔비디아 CEO의 방한은 단순한 친선 방문이 아니었다. 시가총액 5조달러(7362조원)를 넘긴 세계 최대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의 수장이 국내 기업과 조우한 까닭은 그들이 가진 핵심자원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 이론에서 핵심자원은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자산을 말한다. 공장 건물 같은 물리적 자산일 수도 있고, 특허나 브랜드 같은 무형자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고, 고객에게 분명한 가치를 주며, 대체할 방법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AI시대를 맞아 엔비디아가 선택한 핵심자원은 ‘에너지 효율’이다. 챗GPT에 질문 한 번 하는 데 드는 전기는 스마트폰 충전의 약 10배이며,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독일 전체가 1년 동안 쓰는 전력량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클라우드 기업에 전기료는 직원 월급 다음으로 큰 비용이 됐다.
극복을 위해 AI 칩의 에너지 효율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약 40%씩 개선됐다. 이 흐름 속에서 엔비디아는 2016년 칩과 비교해 2022년 칩의 에너지 효율을 16배 이상 향상시켰다. 같은 전기료로 16배 더 많은 AI 계산이 가능해진 셈이다.
클라우드 기업은 단순히 빠른 칩이 아니라 전기를 적게 쓰는 칩을 사야 수익이 난다. 2024년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용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92% 점유율을 차지하는 배경이다.
엔비디아 칩의 강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는 통합 구조에 있다. 수백만 명의 개발자가 이미 엔비디아 전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사용하는데, 이들이 작성한 프로그램을 다른 회사 칩에서 돌리려면 전부 다시 짜야 한다. 전환 비용이 너무 커서 경쟁사가 조금 싸거나 빨라도 고객은 바꾸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맞물려 만든 구조가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장벽을 쌓아 올린 셈이다.
또한 칩 내부에는 작업량에 따라 전력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기술이 탑재됐다. 복잡한 계산일 때는 전력을 최대로 올리고, 간단한 작업일 때는 자동으로 낮춘다.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에서 평균 전력 소비가 20~30% 감소한 배경이다. 2023년 출시한 칩은 CPU와 GPU를 하나로 합쳐 데이터 이동 시 낭비되는 전력을 없앴고, 같은 AI 작업을 30% 적은 전력으로 처리한다.
데이터센터 전기 40%는 냉각에 쓰인다. 서버가 뜨거워지면 에어컨으로 식혀야 하는데, 여기에 전기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엔비디아와 냉각 전문기업 버티브(Vertiv)의 공동 연구 결과, 물을 칩 바로 옆에 흘려보내 열을 식히는 방식으로 데이터센터의 75%를 전환하면 냉각 시설 전력을 27% 절약하고 전체 에너지를 15.5% 줄일 수 있다.
엔비디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사 칩 효율성을 넘어 고객 기업 전체의 에너지 비용과 탄소를 줄이는 도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AI 칩 시장이 포화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후 위기가 그 기회였다. 엔비디아 칩을 활용한 기업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독일 지멘스 에너지는 엔비디아 칩으로 가스터빈 설계를 시뮬레이션했다. 온도, 압력, 공기 흐름을 AI가 학습해 최적 설계를 찾아낸 덕분에 기존에 몇 달 걸리던 실물 테스트를 몇 주 만에 완료했고 터빈 효율을 개선했는데, 발전소 하나가 연간 수만 톤의 탄소를 덜 배출하는 효과다.
엔비디아가 2024년 공개한 기후 예측 플랫폼도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EU(유럽연합)가 2024년부터 기업에 10년 후 자사 시설의 기후 취약성 보고를 의무화하면서 태풍과 폭염 예측 도구가 필요해졌다. 엔비디아는 위성, 센서, 해양 부이 데이터를 결합해 기존 수치 모델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예측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대만 기상청은 이 플랫폼으로 태풍 경로를 미리 파악해 재난 피해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인다. AI 칩을 넘어 기후 솔루션 시장까지 확장한 셈이다.
에너지 효율 자체를 제품으로 만든 구조다. 칩을 팔면서 동시에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파는 방식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엔비디아 칩을 쓰면 전기료가 줄고, 탄소 배출 보고서 수치도 개선된다. 경쟁사가 조금 싼 칩을 내놔도 소용없다. 전환 비용이 크고, 전체 시스템 효율에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한국을 찾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칩에 들어가는 초고속 메모리 HBM을 공급한다.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메모리 전력 효율이 곧 엔비디아 칩의 경쟁력이다.
삼성전자도 차세대 HBM 공급을 준비 중이다. 반대로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엔비디아에 저전력 메모리를 공급함으로써 AI 시장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
국내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엔비디아 전략 그 자체다. 에너지 효율을 측정가능한 경쟁력으로 만들고, 그것을 고객 비용 절감과 직접 연결시키는 구조를 추구한다.
기업은 ESG가 착한 일의 개념이 아니라 핵심자원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에너지 효율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특허와 기술로 바꾸고, 고객에게 비용과 탄소 절감 효과를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사가 조금 싸거나 성능이 나아도 고객이 금세 갈아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젠슨 황이 한국을 찾은 건 국내 기업이 가진 핵심자원 때문이었고, 국내 기업도 ESG를 자사의 핵심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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